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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근리' 양민학살이 세인의 주목을 받은 후 전국 각지에서는 한국전쟁 당시 양민학살에 대한 증언과 증거들이 봇물처럼 제기되고 있다.

대전「산내학살」, 대구「경산코발트광산학살」, 마산 「곡안마을학살」 등이 그 예이다. 하지만 아직도 피학살 지역과 인원은 정확히 셈할 수 없을 만큼 산재되어 있고 사건의 진상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있다.

이즈음 오는 7월 22∼23일 양일간, 대구에서는 의미 있는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미군에 의한 학살만행 진상규명과 주한미군철수를 위한 국민대회」(이하 국민대회)

이 행사를 지역에서 준비하고 있는 『전민특위대구경북본부 이영기 집행위원장(아래 사진, 대경연합 집행위원장)을 지난 17일 영남대 총학생회실에서 만나「국민대회」에 대해 들어봤다.

▲오늘 영남대를 찾은 이유는?
- 「국민대회」때 사용될 음향설비 때문에 영대 총학생회와 협의하기 위해 방문했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많은 사람들이 『전민특위』에 대해 아직은 이해가 적은 것 같은데 결성과정에 대해 설명하신다면?
-『전민특위』는 '미군에 의한 양민학살 진상규명 전민족특별조사위원회'의 준말입니다. 『전민특위』는 지난 1월 이북 6개 단체가 남쪽 6개 단체로 개별적인 제안을 해와 결성 논의가 시작 됐습니다. 조선민주전선은 전국연합으로, 직업총동맹은 민주노총으로 여성동맹은 여성단체연합 등으로 사회 각 계층별로 제안했었습니다.
남과 북의 '비극의 역사'를 민족적 차원에서 해결해보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었습니다. 그 후 남측에선 여성단체연합을 제외한 5개 단체가 『전민특위』남측본부 결성에 합의하고 지난달 24일 남측본부가 결성 됐습니다.

▲중국 베이징에서 북측과 실무회담을 한 것으로 아는데...
- 지난 5월 9일 베이징에서 남측의 이덕준 대표가 북측 관계자들과 협의를 했었습니다. 당시 각 단체별로 북측과 논의하려고 했지만 정부당국에서 북측과의 접촉을 불허하는 바람에 이 대표 단독으로 회담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이 대표도 귀국 후에 구속되는 결과를 낳기도 했지만... 하여튼 실무회담을 통해 남, 북, 해외 삼자가 함께 『전민특위』를 결성하자고 합의했죠.

▲지금『전민특위』결성의 '의의'를 따져보신다면...?
-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의한 '양민학살'문제는 단지 남쪽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남과 북, 해외 즉 민족모두의 문제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해방이후 7천만 겨레가 함께 '자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조직을 만들었다는데 의의가 있지 않을까요. 한반도에서 전쟁당시 일어났던 '양민학살'의 진상을 파악하고 분명히 책임소재를 가려내 민족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의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전민특위』결성 이후 성과를 묻지 않을 수 없는데...
- 아직 성과는 미흡합니다. 여러 가지 진상규명에 대한 난관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나마 성과라 말한다면, 첫째는 국제사회, 민주단체, 비정부기구(NGO)등에서 한국전쟁에 대한 기존의 시각을 바꾸고 있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국민들 사이에서 한국전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민족의 비극 차원에서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전쟁으로 인식하고 미군에 대해서도 기존의 시각과는 다르게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얼마 전 미국을 양민학살의 주범으로 '국제전범재판소'에 회부하자는 서명엔 전쟁을 경험한 세대도 흔쾌히 서명해주시더군요. 마지막 성과로는 피학살 유족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연좌제 등을 두려워하고 있던 유족들이 각 지역별 유족회를 결성하는데 하나 둘 참여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큰 성과라 할 수 있죠.

▲전쟁 전쟁당시 '양민학살'에 배후에 미국이 있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하시는데 근거가 있습니까?
- 피학살자들이 가장 많이 연루된「보도연맹」사건의 경우 미국의 조직적 개입을 반증하는 좋은 사례입니다. 당시 「보도연맹」 관련 양민학살은 50년 7월 20일에서 8월 10일을 전후해 집중적으로 시작됐습니다. 근데 이 당시는 맥아더가 '군사작전권'을 넘겨 받는 시기와 근접합니다. 결국 48년 미군정 하에서 제정된 「예비검속법」이 인권침해소지로 폐지된 후 전쟁 발발이후 미군이 작전권을 이양 받은 후 다시 부활한 거죠. 결국 미국의 '배후설'을 무시하지 못하게 하는 증거가 되는 거죠. 또 모든 지휘권을 미군이 가지고 있었던 시기에 공개적, 암묵적인 동의가 없었다면 '양민학살'은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미 국방부 어느 깊숙한 지하문서보관소에서 잠자고 있을 문서가 언젠가 답을 주지 않겠습니까.

▲「국민대회」와 관련해서 몇 가지 묻겠습니다. 며칠 후엔 대구에서 행사가 열릴 예정인데 간략히 행사일정을 소개해 주시죠?
- 22일 전야제가 있습니다. 영남대에서 밤10시경부터 모이기 시작할 전국의 순례단과 함께 「국민대회」전야제를 가질 것입니다. 전야제를 하는 가운데 순례단을 나누어 「경산코발트광산」순례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23일엔 오전 10시에 영남대와 경산폐코발트광산에서 각각 합동위령제가 있을 것입니다. 전국각지에서 모이는 순례단이 전국 각지에서 희생된 피학살 양민들을 위한 추모제를 지내는 거죠. 경산에서는 40여년 만에 두 번째 제대로 된 위령제를 유족들과 순례단이 함께 지내게 됩니다. 그 후 오후 2시엔 대구시내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서 국제방한대표와 매향리 전국대책위분들이 함께 「국민대회」본 행사를 가질 계획입니다.

▲ 지금까지 준비하면서 힘든 점이 있다면...
- 물론 재정의 어려움은 기본적인 것이지만 다른 어려움은 별로 없습니다. 다만 어려움보다는 분노가 앞서고 있습니다. 얼마 전 독극물을 무단으로 방류하고도 뻔뻔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미군의 작태나 SOFA(한미주둔군지위협정) 협상에 3년형 이하 피의자는 관할권을 미군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등 나날이 갈수록 미국의 작태는 도를 지나치고 있습니다.

▲ 대구지역에선 어떤 단체가 함께 하고 있지요?
- 대경연합, 민주노총 대구본부, 전농 경북도연맹 등 지역 제 사회단체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청년연석회의, 추모단체연대회의 등도 빼놓을 수 없죠.

▲ 시민단체의 결합은 어떻습니까?
- 아직 내부적인 논의가 필요한 모양입니다만, 희망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얼마 전 '용산기지 포름알데히드 방출'로 빚어진 미군반대시위에 환경단체 등도 적극 참여하면서 힘을 보태고 있더군요. 결국 시민단체 등도 참여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 「국민대회」행사 중 눈여겨볼 만한 것을 소개해주신다면?
- 물론 40 여년 만에 다시 개최되는 '경산코발트광산 위령제'가 아닐까요. 국민대회자체도 순례와 추모를 중심에 놓고 있으니까. 그리고 문화공연도 민중운동 진영의 문예역량이 총집중 될 것입니다. 문예행사에 주목해 참가하셔도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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