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에 수도가 생겼어요."
옛부터 농사를 짓기 위해 밭과 들에 불을 놓고 경작을 하던 화전(火田)마을. 제주도 중산간 오지에 위치한 화전마을에 최근 '작은 혁명'이 일어났다.
마을이 생긴 이래 처음으로 식수(지하수)가 들어온 것이다. 그동안 빗물을 받아 식수로 사용해온 사람들. 아직도 가뭄때면 물을 얻기 위해 10km 떨어진 아랫마을을 찾아다녔던 화전마을 주민들에게는 한마디로 '물의 혁명'인 셈이다.
정월대보름 들불축제가 열렸던 새별오름(오름: 제주의 자그마한 기생화산을 일컫는 말)을 지나 한라산 남쪽으로 2.5km 들어가면 소박한 주민들이 오손도손 살고 있는 북제주군 애월읍 봉성리 화전동에 다다를 수 있다.
한때 50여 가구가 살았던 화전동은 이농 현상으로 점차 주민들이 마을을 떠나 현재 6가구에 13명만이 버섯을 재배하고 토종닭을 키우며 농업을 주업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주민 수가 워낙 적고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이유로 수십년 동안 상수도 행정의 사각지대로 방치돼 왔다. 북제주군은 "애월읍 지역의 상수도 보급률은 100%"라고 밝혀왔지만 그 동안 화전동 주민들은 철저히 소외당해왔던 것이다.
9년째 이 곳에 살고 있는 이성만(41, 애월읍 봉성리 산23-2) 씨는 4년 전부터 행정당국과 상수도 당국을 쫓아다니며 수돗물을 공급해 줄 것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하지만 행정당국에서 확인서 한 장 없이 "걱정말라"는 말만 되풀이 하며 미루기를 수년째. 주민들은 "수년 전부터 수돗물을 공급해 준다고 약속했지만 아직껏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우리는 세금을 내는 북제주군민이 아니냐"고 분개했다.
아직도 마을 입구에는 어도교 화전분교가 있었던 자리에 '배움의 옛터'라는 비명이 세워 있어 이곳을 지나는 발길을 붙잡고 있다.
"앞마당에서 물이 나오다니 신기하기만 하네요."
지난 7월 22일 주민들은 통수식을 가졌다. 하지만 이는 행정기관에서 알아서 시설해준 상수도 라인이 아니다. 주민 스스로 이뤄낸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행정기관에 하소연하다 지친 주민들은 인근에 들어서는 골프장 공사업체로부터 '굴착한 지하수를 마을로 연결해 무료로 물을 공급해주겠다'는 약속을 올해 4월에야 받았다.
지하수를 끌어오기 위해 6가구 주민들은 각 가구마다 20만원씩 십시일반의 정성을 모아 마련한 120만원으로 파이프 등 자재를 구입하고 집집마다 수도꼭지를 설치했다.
골프장쪽에서도 장비를 대여해주는 고마움을 베풀었다. 주민들은 "비록 제한 급수지만 설촌 이래 처음으로 수돗물이 들어온 것만도 역사적인 일"이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식수 문제가 완전 해결된 것은 아니다. 골프장쪽에서 2002년까지 물 공급을 해주기로 했지만 형편상 급수 시간을 오후 5시에서 6시까지 1시간으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심어놓은 잔디가 자라는 오는 9월부터 물을 사서 쓸 생각을 하고 있을 정도로 심각하게 물 부족을 겪고 있는 형편"이라는 골프장쪽은 "여건을 보면서 급수 시간을 늘려가도록 하겠다"며 이해를 구했다.
4년 동안의 투쟁. 결국 주민들은 행정당국으로 부터 "2001년까지 책임지고 상수도 시설을 완료하겠다"는 답변을 얻어냈다.
하지만 아직도 장담하기엔 이르다. 24시간 급수가 이뤄질 때까지 주민 스스로의 중단없는 노력과 요구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화전주민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통수식이 열리던 날. 주민들은 골프장 공사 관계자들을 초청하고 토종닭 10마리를 잡아 자축연을 열었다.
눈이 내릴 때가 더욱 장관이라는 화전동. 한라산 중턱 600고지에 위치한 바다 끝마을, 한라산 첫마을. 어느덧 6가구 13명 주민의 살고 있는 가장 작은 마을에 무한한 희망의 싹이 움트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오름에 둘러싸인 화전마을. 제주에 오면 한번 찾아보세요. 토종닭에 소주 한잔이 그만인 풍광 수려한 마을입니다. 심신 수양을 위한 도장(명상센터)도 있어 휴식처로도 안성맞춤입니다. (문의: 064-792-5350) 또는 이성만(016-661-53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