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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날치기 사태를 지켜보며 나는 민주당의 당리당략적 폭거를 비판하였다. 느닷없는 날치기로 인해 국회가 마비되고 애궂게 추경예산안, 약사법 개정안 등 수많은 민생현안들만 처리되지 못한 책임은 당연히 집권당인 민주당에게 돌아가야 한다. 정말 집권당의 정국관리능력을 근본적으로 의심케하는 사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묘한 것은 이번 사태를 당한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야당에 대해 여론의 동정이나 성원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밤을 지새워 본회의장을 지키고 길거리에 주저앉아 자장면을 먹으면서까지 본회의 날치기를 막아냈건만, 한나라당은 피해자라기 보다는 또 다른 담합의 주역이라는 의혹이 확산되어 있는 상태이다. 갖은 고생을 하며 본회의 날치기를 막아낸 한나라당의 입장에서는 세간의 이러한 시선이 몹시 불만스러울지 모른다.

그러나 아니땐 굴뚝에 연기가 난 것은 아니었다. 날치기 직전에 있었던 이회창 총재와 JP의 골프장회동으로 양자간의 이면합의설은 불이 지펴졌다. 이 총재측에서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펄쩍 뛰지만, 국회법 개정안의 처리를 앞둔 시점에서 양자간의 회동이 그러한 추측을 불러일으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임시국회가 종료되자마자 한나라당에서는 '원내교섭단체 요건 완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다. 여야간 협상을 통해 자민련의 원내교섭단체 구성을 보장해주는 선에서 절충을 이룰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이 했던 철야농성의 의미는 무엇인지 정말 혼란스러워진다. 한나라당은 자민련의 교섭단체 구성에 정말로 반대하는 것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국민의 눈을 의식한 '정치 쇼'를 한 것인가.

어째서 이러한 혼란과 의혹이 생겨나는 것일까. 한나라당과 이회창 총재 스스로가 자민련 문제에 관한 원칙다운 원칙을 선명하게 제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자민련과 JP는 퇴출되어야 할 낡은 정치세력인가, 아니면 2002년 대권도전을 위해 손잡아야 할 동반자인가. 한나라당과 이회창 총재는 이에 관한 분명한 대답을 하지않은채 말꼬리를 흐리고 있을 뿐이다.

이미 한나라당 주변에서는 이회창 총재가 2002년 대선을 위해 JP를 껴안기로 했다는 이야기가 정설처럼 번지고 있다. 지난 97년 대통령선거에서 패한 것은 DJP연합을 막지못했기 때문이었다는 반성위에서, 2002년 대통령선거에서는 거꾸로 昌-JP연합을 통해 승리해야 한다는 인식에 도달했다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만약 그러한 이야기가 이회창 총재의 속내를 제대로 전달한 것이라면, 그동안 이 총재가 말했던 '새 정치' 약속을 수없이 들어왔던 사람들로서는 망연자실할 따름이다.

3김정치를 그토록 비난했고 DJP 연합의 부도덕성을 그렇게 비판해 온 사람이 다름아닌 이회창 총재가 아니었던가. 새 정치를 이루겠다고 약속하던 사람이 구(舊)정치의 상징적 인물인 JP에게 구애를 하는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이 총재 주변에서 말하는 이른바 '광폭의 정치'란 결국 대권을 잡기 위해서는 어느 누구와도 손잡을 수 있다는 발상일 뿐이었는가. 유권자들이 퇴출심판을 내린 JP가 정작 여야 사이에서는 몸값이 상한가로 뛰고있다는 사실앞에서 여야 지도자들은 마땅히 부끄러워 해야 한다.

물론 DJ는 97년 대선에서 JP와의 연합이 있었기에 대선에서 승리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정권을 잡으면 무엇하나. 집권 이후 초래된 국정난맥과 실정들은 바로 이념도 철학도 없는 DJP 공동정권이 낳은 업보였다. DJP 연합이 가져온 그 혼란과 난맥들에는 눈조차 가지않고, 오직 정권을 잡는데 성공했다는 사실 자체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닌가.

욕하면서 닮아간다는 말이 있다. DJ를 그토록 비판해왔던 이회창 총재가 바로 DJ가 사용했던 방식을 그대로 모방하여 그의 전철을 밟으려 한다면 그런 불행이 어디 있겠는가.

이제 21세기도 되고 그랬으면, 다소의 모험이 따르더라도 자기 철학대로, 자기 방식대로 조금은 다른 정치의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새 정치를 말했던 정치지도자가 구정치를 연장시켜주는 주역으로 변신할 때 어떻게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겠는가.

이번 날치기 소동이 집권당만의 반성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한나라당과 이회창 총재는 자민련을 위한 국회법 개정 담합행위를 포기해야 마땅하다. 그것만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신의를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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