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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언이는 알고보니 이름이 세 개다.
집안에서 항렬을 맞춰 지어준 이름과 누군가의 실수로 항렬을 잘못하여 다시 이름을 지은 것, 그리고 내 어머니인 외할머니가 어렸을 적부터 엉덩이를 토닥거리며 불러주던 '쌀강아지', 그 이름에 걸맞는 녀석을 이제 말하려 한다. 녀석으로 인해 늘 웃을 수 있음으로.
서울로 옮겨와 살면서 매일매일 땀이 범벅인 채로 전철을 두어 차례 갈아타고 다니다보면 조용한 것이 그립고, 맑은 눈과 웃음을 지닌 아이들이 그리운데 그럴 때마다 비싼 손전화를 불사하고 전화를 하는 곳은 다름아닌 내 조카 태언이에게다.
"누구세요? 이모?"
"응~ 태언이 날 더운데 유치원 잘 다녀왔니?"
"(안보이지만 알 수 있는 건 전화기를 든 채로 땅에 머리가 닿도록 인사를 하며) 이모 안녕하세요?"
"그럼, 소영이랑 잘 놀지?"
이쯤하면 태언이는 시키지 않아도 "이모! 짜증을 내어서 할까요?"한다.
이제 다섯 살인 태언이는 유치원을 다니면서 더더욱 노래를 다양하게 부른다. 제 또래 아이들이 만화영화 주제가나 유명한 춤꾼 가수의 노래를 따라하는 것은 물론이고, 얼마 전부턴 민요까지 부른다.
"짜증을 내어서어 무엇하나 (숨 한번 쉬고) 성화는 부려서 무엇하나 아 인생 일장춘몽인데 아니나 노지는 못하리라......"
목청도 곱지만 높이 올라가는 부분에서 어른들도 흔들거는 음을 전화기에 대고 불러주는 녀석. 도무지 다섯 살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노래를 불러준다.
아마도 전철에서나 길가에서 전화기를 들고서 아무말 없이 삐식거리며 걸어가는 나를 본다면 사람들은 이 복더위에 미치지나 않았나 걱정할 지도 모른다.
웃음소리가 큰 나로선 그 기특한 노래소리를 듣고서 뭐라 적합한 말을 찾지 못하고서 "한번만 더해주라아~ 딱 한번만!"하면서 아이처럼 조르게 된다. 그러면 녀석은 "안돼~ 그럼 돼지 삼형제 불러줄까?"한다.
사실 녀석이 세 살부터 율동과 함께 곧잘 불러준 노래가 돼지 삼형제였는데, 이 민요를 배우고 나면서 1순위가 바뀐 것이다. 만약 제 여동생이 깨어 전화 옆에 있었다면 둘이서 율동을 하면서 돼지 삼형제를 불러줬을거다. 아니 부르지 않더라도 율동을 하면서 오만 재롱을 다 부리고 있을거다.
무엇이든 하겠다고 시키는 것은 곧잘 해보는 진취적 기운이 녀석을 더 잘하게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녀석의 외할머니가 늘 "어 잘한다 어 잘한다"하면서 늘 추켜준 것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태풍으로 인한 비바람이 시원스레 불어온다. 창틀로 어느 집에서 새어나오는 오래된 팝송이 있다. 우리의 추억이 묻어있지도 않았지만 그들의 문화 속에 잠겨 살았던 세대로서 마치 우리 문화처럼 여기며 락바나 칵테일바를 가서 몸을 흔들어대고 따라부르는 노래가 아니었는가. 다섯 살 난 조카 녀석으로부터 새삼 내 문화를 다시 돌아다보게 된다.
이제 조금씩 우리 것에 대한 감성을 쌓아가야 할 때가 아닐런지.
음반을 뒤적여 녀석에게 알려주면 좋을 민요를 찾아보지만 쉽사리 안된다. 고운 목소리의 녀석에게 알맞은 꼴의 민요를 또 하나 알아서 함께 불러봐야겠다. 녀석은 발음도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굳이 제가 부른 것이 맞다며 내가 부를 땐 콧방귀만 뀐다. 저와 같은 노랫말이 나올 때만 함께 불러준다.
줄곧 녀석의 노랫소리에 취해있다 전철 갈아타는 것을 잊고 버릇처럼 내린 적도 몇 번 있다. 낼 아침이 되면 또 나는 녀석을 괴롭힐 것이다. 안부 인사를 핑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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