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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기


이미 고인들은 이승의 기억을 잊고 그들 스스로 저승에 머물며 나무가 되었거나
흙이 되었거나 무덤가 상사화로 피었거나 엉겅퀴로 피었거나 바람이 되었거나
새가 되었거나 벌 나비가 되었거나 뱀이 되었거나 노루가 되었거나 염소가 되어
한가롭게 풀이나 뜯고 있을 것을 나는 괜히 그들을 깨웠다
(졸시 '벌초' 全文)


1
오늘은 문중에서 선산 벌초하는 날입니다.
간 밤내 간간히 빗방울 후둑이더니 적자산 쪽에서 검은 구름이 밀려옵니다.
기어이 장대비가 쏟아지고 맙니다.
오늘 벌초하기는 틀렸습니다. 이발도 하고 장도 볼겸 노화도로 향합니다.
한때는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던 노화읍내도 예전같지 않습니다.
사람들과 고깃배로 출렁대던 어시장이며 소와 염소들로 북적대던 우시장, 그 옛날 장터의 활기는 간데 없고 선창가를 따라 잿빛 슬라브 건물들만 줄지어 서 있습니다.

예전에 노화도 이목리는 인근의 소안도 보길도 넙도, 횡간도, 당사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의 물류 중심지였고 제법 큰 5일장이 서던 곳이었습니다.
오죽하면 한참 고기가 잘잡히고 김발로 큰 돈 벌리던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 작은 섬 포구의 땅값이 목포 중심가보다 비쌀 거라는 말들이 돌았겠습니까.

5일장도 요새는 명목만 이어져 오고 있을 뿐 상설 상가에 손님들을 다 내 주고 아침에 잠깐 장이 서다가 바로 파장이 되니 늦게 가면 물건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약국에 들러 물파스를 산 뒤 학철이형님네 중앙건재를 지나는데 빗속에서 우비를 입은 젊은 여자 하나가 오토바이를 몰고 갑니다.
읍내에서 번창하는 곳은 다방뿐인 듯 합니다. 인구 7000의 이 소읍에 다방이 20여개나 됩니다. 주민들 350명당 하나의 다방을 가지고 있는 셈이지요.

김발 막고 파랫발 막아 어렵게 번 돈들이 주전자를 통해 뭍으로 새나가고 있지요.
다방 아가씨들이 뭍으로 송금하는 돈이 한달이면 족히 몇억은 될 거라 합니다.
철부선을 타고 보길도로 돌아오니 그새 비가 갰습니다.
사립을 들어서는데 꺽정이 짓는 소리가 요란합니다.

봉순이는 소리없이 꼬리만 흔들다가 뒤돌아서 꺽정이를 조용히 시킨 뒤 돌아와 다시 꼬리를 칩니다. 뜻밖에도 토지에는 집안 오춘님이 앉아 계십니다.
아차 싶었습니다. 빗방울이 가늘어지자 벌초를 시작한 것입나다.
나의 직계 조상님들 선산을 벌초하고 계신 집안 어른들이 내년부터는 벌초하러 오지 않겠다고 원망이 자자하니 어서 가자고 연로하신 오춘님의 성화가 대단합니다.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상점에 들러 소주 한되를 받고 맥주와 과자, 빵, 음료수를 한 보따리 싸들고 선산으로 향합니다. 선산 입구에 내 얼굴이 보이자 원망의 소리가 쏟아집니다.
죄송하다고 변명하며 들고온 샛거리를 쏟아 붇자 뭘 이렇게 많이 사왔느냐, 일이 있으면 늦게 올 수도 있지 괜찮다 괜찮다 하십니다. 우리가 다할란다 너는 바쁜데 어여 내려가라 등을 떠밉니다. 괜히 웃음이 나옵니다.

늦게온 벌충으로 부지런히 낫질을 하지만 젊은 사람은 나 혼자 뿐이고 다들 나이드신 노인들이라 왠지 죄송스럽기만 합니다.
어르신들과 남은 곳의 풀들을 마져 베어내고 산을 내려 오는데 산길 한모퉁이에 초분이 보입니다. 아직도 이곳에는 초분을 쓰는 풍습이 남아 있습니다.

풍장, 느닷 없는 초분의 등장이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기억 저편으로부터 불러옵니다. 할아버지는 평생 집 밖으로만 떠돌았습니다.
완도 일대에서 할아버지는 꽤 이름난 지관이셨지요. 하지만 나의 증조부님이신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묘자리를 못잡아 결국 초분을 쓰셨지요. 남의 명당은 잘도 잡아 내시더니. 증조부님은 그후로도 집안의 누구 결혼이다, 군입대다 해서 대소사때는 묘를 옮기지 않는 풍습에 따라 9년 동안이나 초분안에 계셔야 했습니다.

2
일찍 일어나 돈방골 산소 벌초를 하려고 했는데 늦잠을 자고 말았습니다.
아마도 지난밤의 뱀꿈 때문인 듯 싶습니다.
벌초를 가려고 낫을 들고 막 나서려다 깜짝 놀랐습니다.
관절염에 좋다해서 어제 잡아 담근 지네 술 병 속에 뱀 한 마리 들어가 있는게 아닙니까.
내가 잡아다 넣은 적은 없는데 저 스스로 기어들어 간 것일까, 아니면 누가 잡아다 넣었을까. 푸른 뱀 한 마리가 술 병 속에서 꿈틀대고 있었습니다.

뱀이 뚜껑을 밀고 나오려 해 나는 뚜껑을 꼭 눌렀습니다.
병 밖으로 뱀이 빠져 나오지 못하게 하느라 나 또한 잠속에서 쉽게 빠져 나올 수 없었던 것이지요.
자전거로 돈방골까지 왔습니다. 내가 태어나 자란 마을, 어린 날의 내 집 터 앞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개울을 건넙니다. 우리 식구들이 물을 길러다 먹던 샘에서는 여전히 맑은 물이 솟아나고 있습니다.

할머니는 수십년을 한결같이 새벽이면 동이 가득 물을 길러 나르셨지요. 새색시적 어머니도 물동이를 이고 개울을 건너셨을 테지요.
샘 곁을 지나다 말고 문득 뒤돌아 보니 머리에 물항아리를 인 할머니와 어머니가 웃고 서 계십니다.

돈방골 벌초를 마치고 텃골 작은 할아버지 산소까지 벌초를 끝냈습니다.
몇차례의 큰 비바람에 봉분들이 많이 패였습니다. 태풍의 위세 앞에는 저승이라도 별 수 없었던가 봅니다.
산길을 오르다 보니 조금 좋은 자리다 싶으면 묘가 들어서지 않은 곳이 없군요.
아직도 벌초 해야 할 산소가 더 있습니다.
명절이 가까워 지면서 벌초는 해도 해도 끝이 없습니다.

3
추석 지나기 전에 얼마 남지 않은 벌초를 끝낼 심산으로 오늘은 또 뽀리기로 향합니다.
경기도 양주 사시는 집안 친척 할아버님네 산소가 뽀리기 말고도 여항까지 두군데나 남아 있어 마음이 급합니다.
청별 사는 성일이 오춘에게 물어서 산소 위치를 알았는데 큰 바위 옆이라 어렵지 않게 찾았습니다.
두 기의 잘생긴 봉분 속의 주인들을 나는 알길이 없습니다. 같은 혈족 할아버지 할머니쯤 될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지요. 그들 또한 나를 모를 것입니다.

술 한잔 부어 놓고 낫질을 시작합니다.
생각보다 풀들이 많이 자라지 않아 쉽게 끝날 듯싶습니다.
벌써 다섯군데 산소를 돌며 벌초를 하다보니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습니다.
벌초라는 제의가 갖는 본래적 의미가 무엇일까.
땅에 묻어 주는 것 만으로도 망자에 대한 예의는 충분할텐데, 왜 굳이 벌초라는 풍습을 만들어 낸 것일까요.
아마도 그것은 망자들만을 위한 것은 아닐 것이며 그렇다고 산자들만을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산자와 죽은 자간의 소통, 이승과 저승간의 교류를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제사가 망자들의 영혼과의 교류라면 성묘는 죽은 자들의 육신과의 교류가 될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제사보다는 벌초가 더욱 육친적인 행위입니다.
따라서 벌초는 단지 풀을 베어내는 제초 행위가 아니며 그것은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이 서로에 대한 기억의 끈을 놓치지 않게 해주는 이승과 저승간의 따뜻한 연대의 행사일 것입니다.

그 뜻이 이러할 때 망자와 무관한 사람이 벌초를 하는 행위는 도데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결코 서로 대면한 적도 없고 망자를 기억할만한 어떠한 기회도 갖지 못했던 사람이 벌초를 하는 것은 무의미한 제초 행위가 아닐런지요.
그래선지 이 두 봉분의 벌초는 나에게 별다른 감동을 주지 않습니다.

이제 올해의 벌초 순례도 거반 끝나 갑니다.
마지막 남은 여항의 산소 위치를 알기 위해 성일이 오춘네를 다시 찾았습니다.
성일이 오춘은 그 넓은 산소의 벌초를 일찍 끝내고 온 것이 못내 의심스러운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묏등을 제대로 찾았는지 묻습니다.
기어코 헛수고를 하고 말았습니다.
다른집 산소 벌초를 해준 것이 해 될 것은 없지만 온몸의 기운이 쭉 빠져 나갑니다.

성일이 오춘과 뽀리기에 다시 왔습니다. 찾던 산소는 큰바위 왼쪽 무성한 풀숲에 묻혀 있습니다. 바위 오른쪽에는 내가 오전내 벌초를 해서 깔끔하게 단장된 봉분이 보기 좋습니다.
햇볕은 따가운데 두불 일 하는 것이 결코 즐겁지 않습니다.
즐겁게 일하지 않는데 사단이 나지 않을 턱이 없지요.
벌에 쏘이고 말았습니다.

그동안은 조심스럽게 벌초를 해서 무사했는데 오늘은 기어코 벌집을 건드리고 말았습니다. 몇 년 동안 손을 타지 않은 묏등이라 풀들이 무성해 숨겨져 있는 벌집을 발견하지 못했던 겁니다. 장대로 저어 보거나 돌을 던져 확인 했어야 했는데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이 불찰이지요.

두 방 씩이나 쏘인 머리에서 불이 나고 각각 한 방 씩 쏘인 양 손등이 화끈거려 옵니다. 나를 쏜 벌들은 모두 죽었고 아픔 속에서도 나는 벌들의 죽음에 대해 생각합니다.
사람만이 아니라 벌에게도 집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만큼 소중한 가치가 있었던 것일까요. 육신이 잠시 머물다가는 거처에 불과한 집에 대한 뭇 생명들의 이렇듯 원초적인 집착이 왠지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독오른 벌떼를 피해 나는 낫도 팽개치고 산소를 빠져 나옵니다.
보건소에 들러 주사를 한대 맞고 돌아와 마루에 앉았습니다.
통증이 쉽게 멈추지 않는 군요.
폭풍이 또 온다더니 바람이 거세집니다.
적자산 쪽에서 빗줄기가 몰려 옵니다.
보건소에서 타온 약을 먹고 방으로 들어가 다시 누웠지만 못다한 벌초 걱정에 잠이오지 않습니다. 날이 개면 뽀리기와 여항 두군데 벌초도 마져 끝내야겠다고 마음 먹습니다. 그제서야 나는 깊고 편안한 잠 속으로 빠져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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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섬 활동가입니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당신에게 섬><섬을 걷다><전라도 섬맛기행><바다의 황금시대 파시>저자입니다. 섬연구소 홈페이지. https://cafe.naver.com/isla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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