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핵에 대해 우리나라 만큼 의견이 분분한 나라는 없을 것이다. 발전용이든 무기든 반핵은 그동안 분단상황과 이데올로기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에서 함구되어 왔다. 관련학계에서 반핵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는 학자가 드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오늘(30일) 오전 11시 명동성당에서 경실련과 YMCA, 환경운동연합, 여성의전화연합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핵에너지 정책에 대해 처음으로 입장을 밝혔다. 물론 여느때처럼 이번 반핵기자회견에도 한 두명 이외에는 기자들이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기자회견은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이번 기자회견은 시민사회단체가 최초로 핵에너지 정책에 대해 입장을 밝히는 자리였다. 그동안 핵발전 위주의 에너지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이자, 분명한 반핵의 입장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특히 세계적인 탈핵에너지 분위기에 역행하는 우리나라의 핵에너지 정책을 강도높게 성토했다.
사실 독일과 스웨덴은 늦어도 2020년까지 현재 운전 중인 모든 핵발전소를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터키와 대만도 최근 핵발전소 건설계획을 취소했다. 특히 세계 최대의 핵발전소 보유국을 지향하던 중국조차도 위험성 때문에 핵발전소 건설을 유보하는 등 세계는 지금 탈핵·대안에너지정책으로 선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한전과 산업자원부는 울산 시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울주군 서생면을 추가건설 후보지로 지정 고시했고, 최근에는 부산광역시 기장군 효암지역에 신규 핵발전소 2기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때문에 기자회견장인 명동성당에는 울주군민 400여명이 이틀 전부터 투쟁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세계 주요 국가의 탈핵발전소 추세>
□ 중국
중국은 지난 3월에 신규 핵발전소 건설에 대해 적어도 4∼5년의 모라토리움을 선언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맺은 핵에너지에 대한 협력 약속은 미국의 핵산업체들에게 베이징의 문을 활짝 열 것처럼 보였지만, 지난 98년 7월 퀸샨에서 중국 최초의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한 이후 주룽지 총리는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중단하고 핵 대신 다른 에너지원에 중심을 두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동안 중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큰 핵에너지 국가가 되겠다는 언급을 공공연히 해왔다. 적어도 3년전에 중국은 신규 핵발전소 건설에 1조 달러를 투입할 것이라고 말했고, 이런 중국은 핵 산업의 구세주처럼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몇몇 중국 관리들은 상업용 핵발전소의 수입에 관해 비공식적인 금지령이 아마도 몇 년 정도 더 연장될 수도 있으리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만일 이런 분위기가 계속 된다면, 자국에서는 더 이상 시장을 찾을 수 없는 미국과 다른 서구 핵산업계들에게는 종말의 시작이 될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중국이 핵발전소 건설을 재개한다면 이는 핵 산업의 주요한 르네상스가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중국 최초로 국내에 건설된 핵발전소인 퀸샨은 원자로에서 기계적인 결함이 발견된 후 일년 이상 가동을 멈추었다. 볼트, 관측 튜브, 연료봉이 원자로의 건설 중 잘못 때문에 손상되었고 이 같은 퀸샨 핵발전소 사고는 중국이 핵발전소라는 것이 얼마나 복잡한 것인지를 알게 해 주었다.
□ 터키
터키는 국내 최초의 핵발전소 건설을 연기하기로 했다. 에세비트 수상은 7월 25일 지중해 연안의 아쿠유 근처에 건설하기로 되어 있던 핵발전소의 건설비용이 너무나 비싸기 때문에 건설을 연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수상은 기자에게 "우리가 핵발전소 건설을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일지 모르나 잠시동안 연기를 하고 새로운 기술을 기다리는 것은 옳은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터키는 10∼20년 후에 핵발전소 건설을 다시 고려할 것이라고 했다. 대신 터키는 증가하는 에너지 수요를 맞추기 위해 천연가스와 수력 발전, 에너지 낭비를 줄이는 데 투자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대만
대만은 논란이 많았던 4번째 핵발전소 건설계획을 철회하고 대신 새로운 에너지체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만의 새로운 총통인 천수이볜은 선거운동 당시 핵 정책을 철회하겠다는 공약을 했다. 그리고 지금 대만은 이를 실현하기 위해, 자연자원이 부족하고 에너지 안보를 걱정하기는 해야 하나 핵을 대신할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를 진지하게 찾고 있다.
□ 일본
작년 도카이무라 핵연료 공장의 임계사고로 두 명이 사망하고 도카이무라 전체가 방사능의 공포에 시달린 뒤로 일본의 핵정책은 점점 후퇴하고 있다. 동경전력은 핵발전소의 건설을 뒤로 미루고 있다. 싼 전력을 공급하는데는 핵발전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용지의 매수부터 건설까지 20∼30년, 운전까지는 40년, 여기에 폐로와 사용후핵연료의 처리까지 본다면 100년이나 걸린다. 또 작년의 임계사고를 보면, 사고가 일어났을 경우 배상액이 거액이 될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핵발전소 건설과 운영은 민간기업이 할 일이 아니고 정부도 더 이상 믿을 수 없고 일본 각지의 반핵운동 때문에 핵발전소 건설을 포기한 것이다.
원자력장기계획의 정책결정과정 중에서 이와 같은 내용들이 논의되었고 에너지도 자유시장에 맡겨야 하고 그 때 핵발전소는 불리하다는 의견 또한 나왔다. 사와 교토대학 교수는 합리적인 기업이 핵발전소를 신규로 건설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한국이 핵에너지의 모델로 삼고 있는 일본조차 변하고 있는 것이다.
□ 독일과 스웨덴
스웨덴은 지난 5월 2020년까지 핵에너지 프로그램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스웨덴의 수상 페르손은 11개의 핵발전소를 2020년까지 영구 폐쇄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2020년은 원자로가 운전을 중지하는 데드라인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은 결정은 핵에너지 계획을 중단하고 대신 천연가스와 수력, 풍력, 태양에너지와 같은 재생가능에너지에 집중하기로 한 스웨덴의 계획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독일 역시 지난 6월 15일에 모든 핵발전소를 늦어도 2021년까지는 영구 폐쇄하기로 결정하였다. 기업과 논란이 되었던 핵발전소의 수명은 19개의 핵발전소 각각에 대해 32년으로 결정을 하였다.
이미 유럽 각국은 1986년 체르노빌 사고 이후로 더 이상의 핵발전소를 건설하고 있지 않다. 점점 증가하는 핵발전소의 안전비용과 핵폐기물·폐로 처분 때문에 핵은 값싸고 안전한 에너지원이 더 이상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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