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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근무하는 학교는 면단위에 있는 학교라 흔히 말하는 치마바람이나 촌지는 거의 없는 편입니다. 시골이라 학교에 학부모님들이 참석해야할 행사가 있을 때 교사는 곤혹스럽습니다.

왜냐 하면 이상하게 농사철에 그런 행사가 많아서 농사일에 매인 부모님들이 참석하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제가 볼 수 있는 자식들에 대한 관심은 비오는날 찢어진 우산을 들고 런닝셔츠('난닝구'라고 하죠. 시골노인들은 런닝셔츠를 외출복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더군요)바람으로 복도를 기웃거리다 창문으로 고개를 쑥내미는(그것도 수업중에) 노인들에게서 정도지요.

근데 우스운 것은 제가 "누구 부모님이세요?"라고 물으면 제가 어려서 그런지 반말로 대답합니다. "아 아무개 할배인대 아무개 아직 안마쳤어?"라구요.

전 그분들을 무례하다든지 기분 나쁘게는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 저희 할아버지 같으신 분이니까요.

그런 학교에서 전 부임 첫해에 고1담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물론 의욕이 대단 했지요.

근데 김영호(가명)라는 아주 농땡이 친구가 하나 있었습니다. 다른 학교에 다니다 문제를 많이 일으켜서 자퇴하고 다시 우리 학교에 입학해서 다른 녀석보다 나이가 한살 많았습니다.

덩치는 산 만했고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아주 남자 답게 생긴 놈이었지요.

전 학기 초에 한 살 어린 아이들하고 다니는 녀석이 어쩐지 애처로웠고 잘 보살펴주면 좋은 학생이 될 것 같아 여러모로 신경을 써 주었지요.

부반장도 시켜주고 많은 격려도 해주었습니다. 원래 녀석은 운동을 하고 싶었는데 아버지가 반대해서 문제아가 된 녀석입니다. 그런데 IQ가 아주 우수하더군요.

그럭저럭 몇달이 흘렀습니다. 녀석은 소풍때 술을 감추고 있다 들키는 사소한(?)일 외엔 특별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문제가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 녀석이 우리반 녀석의 새로 산 운동화를 수학여행 가는 한 학년 위의 친구에게 빌려주었던 겁니다. 물론 그 수학여행가는 놈이 부탁을 했겠지요.

아마 내 생각에 녀석은 그 녀석과 친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 운동화를 빌려가곤 한참이나 돌려주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마침 운동화를 빌려준 학생 부모의 친구가 우리학교 교무부장 선생님이었습니다.

그 부모는 교무부장님께 하소연 했고 열받은 교무부장님이 교무실에서 아주 심하게 녀석을 꾸짖었습니다. 그길로 녀석이 학교를 뛰쳐나가고 말았습니다.

그후로 몇주나 학교에 나오지 않았지요. 그동안 그 녀석 집에도 연락을 해봤지만 아버진 거의 폐인 수준이라 대화가 안됐고 어머니는 가출하고 없으며 할머니가 외로이 힘겹게 농사를 지으며 살림을 근근히 꾸려가고 있더군요.

그런 할머니께 여러번 그 녀석의 행방을 물었지만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 녀석집이 아주 벽촌이거든요.

그 녀석집에서 택시를 타면 요금이 7000원이며 눈이 올때 20000원,
눈이 좀 많이 오면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기사가 거부하는 아주 골짜기지요.

백방으로 녀석의 행방을 좇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며칠씩 그 녀석이 자주 출몰(?)한다는 곳을 잠복근무 해봤으나 헛수고였습니다.
그러는 사이 그 녀석이 전 학교에서 저지른 비행이 서서히 알려지고 얼마 지나니 학교에서 그녀석은 빨리 자퇴를 시켜야하는 아주 나쁜놈이 되어있더군요.

교장이 절 불러서 내일까지 자퇴서를 받아 오라고 하더군요. 전 당황했지요.

제가 생각하기에 신발하나 때문에 학생의 자퇴서를 받는다는 것은 납득이 되질 않았고 그 녀석이 불쌍했지요. 아무리 무단 결석을 오래하고 학교에 다닐 의사가 없다고 밝힌 녀석이지만요.

전 다급했었습니다. 어쨌든 전 그날 저녁 그 녀석 집을 방문해보기로 했습니다. 마침 한겨울이라 눈이 많이 내리더군요.

워낙 골짜기라 택시도 안 간다고 해서 제 차를 끌고 조금가다 걸어서 걸어서 그 녀석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그 녀석의 할머니는 제가 뭐 그렇게 반가운지 반겨주더군요.전 상황을 이야기하고 내일까지 어떻게 해서든 녀석을 등교시켜야 한다고 했지요.

그 할머니 왈, 녀석이 전화로 끊임없이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고 하더라는 겁니다. 어디 있다는 말도 없이.

방법이 있나요? 눈이 많이 와서 전 그 집에 꼼짝없이 갇혀서 그날밤을 녀석의 집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담임선생이라고 불을 얼마나 많이 땠는지 뜨거워서 잠을 이룰 수가 없더군요. 그녀석 집은 보일러가 아니고 아궁이가 있는 순 온돌이지요.

그 할머니는 절 위해서 오랫동안 불을 피웠던 거지요. 전 그 다음날 아침일찍 길을 나섰지요. 어떻게 해서든 찾아 보려구요.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그 할머니가 꼬깃꼬깃 꾸겨진 지폐하나를 제게 내밀었습니다. 차비나 하라고. 제가 그 돈을 어떻게 받겠습니까?

됐노라고 길을 재촉하는데 그 할머니가 뛰면서(?) 절 따라오면서 그 돈을 제게 던지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할 수 없이 그 돈을 주웠습니다. 5000원짜리 지폐 하나더군요.

아마 그 돈은 그 할머니 쌈지에서 오랫동안 지냈을 터였습니다. 그 돈으로 오랫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던 손자가 집에 오면 과자나 사주려고 오랫동안 간직했을지도 모르지요.

그돈을 보니 눈물이 나더군요. 그래 돌아보니 할머니가 눈물을 지으시고 있더군요. 순간 그 녀석이 정말 밉더군요. 어찌나 가슴이 아프던지...

아마 그 할머니는 평생을 고생을 지고 사셨을 겁니다. 이제는 편안히 노후를 즐기며 사실 때도 됐는데 손자놈 때문에 눈물을 지으시고 계셨던 겁니다.

결국 그 녀석은 전화를 통해서 학교에 다닐 생각이 없고 취직을 하겠다는 의사를 거듭 밝혀왔습니다. 제 아버지와 할머니께.

그래서 그 애는 자퇴 처리되었습니다. 제가 교사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자퇴한 우리반 아이였습니다.

그리고 그 할머니의 꼬깃꼬깃 꾸겨진 그 돈이 제가 5년동안 교사생활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은 촌지였습니다.

그돈 함부로 못쓰겠더군요. 전 그돈으로 책을 한권 샀습니다. 그 녀석이 학교로 돌아오면 주려구요.

끝내 전 그 책을 건네주지 못했습니다. 제 책임이 크지요. 지금도 생각하면 후회가 됩니다. 왜 내가 그때 좀더 현명하게 그 애를 지도하지 못했나 하고요. 그땐 너무 경험이 부족했습니다.

지금도 가끔 그 할머니의 눈물진 마지막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번 추석엔 그 할머니께 안부전화나 해야겠습니다.

<이 기사는 논쟁 중> 한 교사의 고민, 내가 너무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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