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편집자주 - 오마이뉴스는 한달 넘게 지속되고 있는 2차 의사폐업의 현황과 문제점, 해결책 등을 알아보기 위해 연쇄 인터뷰를 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김용익 서울대 의료관리학 교수, 김명일 전공의 비대위 위원장에 이은 세번째 입니다.)

지난 8월 27일 일요일. 100여 명의 의대생과 의사들이 서울대 보건대학원 강당에 모여 '국민과 함께하는 의료개혁을 위한 미래와 희망을 꿈꾸는 의사·의대생 연대'(이하 희망연대)를 출범시켰다.

이날 참석한 의대생과 의사들은 지난 6월 이후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의사폐업, 특히 2차 의사폐업에 대해 '이것은 아니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동안 이들은 의사사회에서 '왕따'였거나 '꿀먹은 벙어리'였다. 한숨만 내쉬며 흩어져 있던 개개인과 단체가 모여 하나의 단일한 연대조직을 꾸린 것이 희망연대다. 희망연대는 '희망'의 첫 발언에서 현재의 의사폐업 사태에 대해 정부와 의사사회 모두를 정면 비판했다. 그들의 첫 번째 목소리를 들어보자

1. 정부는 국민건강에 대한 책임성을 높이고, 지역의료보험 재정 국고지원 50% 법제화를 포함한 총체적 의료개혁 플랜을 제시함으로써 이 사태를 해결하라.
2. 정부는 의사들의 요구에 대한 사안별 미봉책이 아니라 국민적 합의를 얻어낼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고 이를 통해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라.
3. 현시기 의사들의 이른바 파업에 의한 의권쟁취투쟁은 국민을 배제한 배타적 전문주의 확립의 요구를 즉각 철회하고 국민과 함께하는 진정한 의료개혁투쟁에 나서야한다.
4. 전공의들은 자신들의 의료개혁이라는 슬로건과는 달리 구체적 요구조건 및 투쟁방법이 의료개혁적이지 못하며 국민적 설득력이 없음을 깨닫고 진정한 의료개혁에 동참하라.
(희망연대 신문 창간준비호 '의사파업과 의료개혁에 대한 우리의 입장' 중에서)


공식 출범후 일주일이 조금 지난 9월 4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이중규(고대병원 수련의) 희망연대 임시 대변인을 만났다. 희망연대 출범 후 언론과의 첫 인터뷰였다.


시작부터 잘못된 투쟁

자리에 앉자마자 인터뷰를 위해 이 대변인과 기자는 몇 가지 자료를 꺼냈다. 각자 꺼낸 자료중에서 공통된 것이 있었다. 지난 '비상공동대표 10인 소위원회(이하 10인소위)'에서 발표한 '대정부 요구안'. 자연스럽게 인터뷰는 이 요구안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됐다.

- 어떻습니까. 8월 31일 발표한 대정부 요구안을 평가를 하신다면요.

"이 안이 나오기까지 내부적으로 진통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고 한 달 이상 걸려 만든 것이라 상당히 많은 기대를 했었는데 사실 상당히 실망스럽습니다. 이 안에 의료개혁을 담으려고 노력한 흔적이 얼핏 보이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기조에서는 그렇지 못합니다."

"이 요구안에는 의료개혁의 동반자로서 국민이 빠져 있습니다. '의사만 저돌적으로 싸우겠다'는 안입니다." ⓒ 최승환
-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신다면?

"이 요구안에서는 의료개혁의 동반자로서 국민이 빠져 있습니다. 의료개혁을 하기 위해서는 의사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국가가 잘못한 부분을 바꿔야하는데 국가라는 권력은 옳든 그르든 워낙 강력한 공권력을 가지고 있어서 의사가 아무리 파업을 오래하고 자금력이 풍부하다고 해도 쉽지 않습니다.

97년도의 노동악법 철폐운동이나 87년 직선제 쟁취운동처럼 전국민이 들고 일어나도 하나 딸까 말까 할 정도로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번 요구안은 '의사만 저돌적으로 싸우겠다, 이거 안들어주면 절대로 안된다'하는 안입니다. 그래놓고서 국민을 위한 안이라고 하고 있어요."

- 이미 발표돼 버렸지만 이 안이 의료개혁적이 되려면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가장 중요하게는 지역의료보험재정 문제가 우선으로 나와야된다고 봐요. 또한 요구안을 아주 간략하게 집약해서 핵심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지역의료보험 재정 문제란 국고재정을 50%로 확충하라는 것 말입니까?

"예, 그렇죠. 사실 이 부분은 국가가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점점 보험료가 적자가 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운영상 문제라기보다는 절대적인 재정부족 때문이 큽니다. 지역의보재정 국고지원 50%는 정부가 전국민의료보험을 하면서 약속한 것입니다. 하지만 쉽지는 않죠. 이 부분을 위해서는 국방비를 건드리지 않을 수 없고, 그렇게 되면 보수세력을 건드리는 것이 되므로 판이 커집니다."

문제는 단지 요구안 내용 하나하나가 아니라 전체적인 흐름이었다. 이 대변인은 진정 국민과 함께하는 의료개혁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가 왜 잘못되었는가라는 근본부터 시작했어야 했는데 그것은 의약분업 자체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의약분업 전면 실시로 인해 터져나온 이번 의사폐업은 의료개혁을 표방하고 있기는 하지만 '시작부터 잘못된 투쟁'이 되는 셈이다.

ⓒ 권우성
"제가 보기에 '잘못된 약사법, 약사법' 하면서 의료개혁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정말 전공의들이 의료개혁을 위해 뛰쳐나왔다면 반성하는 자세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의사들은 이 이야기에 동의를 안합니다. '왜 우리가 반성해야 하는가' 라는 거죠. 실제로 정부가 잘못한 부분이 있는 반면 우리가 방기해왔던 부분이 있거든요. 불공정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똑바로 잡기 위한 노력을 사실 의사 내부에서는 전혀 하지 않았어요.

이제 의사내부의 노력이 없는 가운데 외부에서 개혁을 추진하려 하고 또 그것이 먹혀들어가니까 의사들은 충격을 받았고 '이래서는 안되겠다'하고 단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단결의 방향이 더불어 다같이 잘사는 방향이 아니라 의사들만 잘사는 방향으로 되고 있다는 거죠. 그 와중에 나름대로 개혁적이라는 전공의들마저도 그 주장에 편승되어 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

인터뷰 주제는 자연스럽게 외부에서 의사 내부로 옮겨갔다. 이 대변인은 의사들의 '파업권'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의사들도 노동자의 한사람으로서 파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어떤 성격의 파업이냐는 점이다. 이 대변인은 이번 의사폐업 사태의 기저에 흐르는 성격을 '배타적 전문주의'라고 말했다.

"나는 보건의료 정책에서 가장 중심적인 리더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의사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의료정책에 의사가 아닌 다른 단체가 개입하는 것에 대해 의사들은 '도대체 의료에 대해 뭘 알길래 끼어 드느냐'는 인식이 팽배해 있습니다.

그건 아닙니다. 되물어보면 우리는 정치전문가도 아닌데 정부의 잘못에 대해 비판을 하고, 경제전문가도 아닌데 재벌이 잘못하면 규탄합니다. 정부나 재벌이 사회속에서 혼자 따로 떨어져 있는 집단이 아니기 때문이죠. 한 집단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클수록 사회 구성원은 그 집단에 대해 발언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최승환
- 의대생들도 집단적으로 자퇴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자퇴서 제출 여부에 대해 투표를 붙여 다수결에 따라 집단 자퇴를 결정했더군요. 상식적으로 보면 자퇴서 제출 같은 것은 다수결에 따르기보다는 개인적인 결의에 따라야 하지 않습니까?

"의사 내부의 커뮤니케이션 구조에 문제가 있습니다. 항상 모든 일을 결정하는데 투표를 합니다. 굉장히 민주적으로 보이죠. 하지만 현재 교착상태에 빠진 원인중 하나가 거기에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중앙은 하나 하나 이것을 투표했을 때 찬성, 반대를 생각하며 대중을 굉장히 두려워합니다.

7만 의사들의 의견을 모은 단일한 요구안. 말로는 아주 좋죠. 하지만 모두를 만족시켜야 하다보니 결국은 대정부 요구안이 이제까지 요구의 '종합선물세트'가 되고 대표는 그 속에서 글자 하나 마음대로 고치지 못합니다. '내가 이래봤자 돌아가면 불신임될텐데' 하는 거죠."

- 사태가 이렇게 되기까지 정부도 잘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에서 군사정권 이후부터 '의료정책'이라는 것은 없었습니다. 단지 정권의 안위를 위한 하나의 도구였죠. 의료보험도 그 자체는 개혁적인 것이었지만 출발점은 다른 목적이 있었습니다. 또한 정부는 의료개혁에 대한 비전이나 강한 추진력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안타까운 것은 국민과 의사·약사가 같이 힘을 합쳐 싸워도, 같이 정부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도 정부가 움직일까 말까인데 지금 의사들은 점점 더 그부분을 무시하고 있다는 겁니다."

- 이번 의사 폐업이 어떻게 끝날 것 같습니까.

"글쎄요. 시작이 있으니까 끝이 있겠죠. 하지만 현재 상태로 보자면 전공의 비대위가 말하는 '승리적 관점'으로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결과를 예측한다기보다는 개인적으로 판단하기에 의사들의 요구안이 받아들여진다면 남한땅에 다시는 의료개혁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어진 다음 기사'에는 희망연대의 솔직한 고민이 있습니다. 클릭하세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