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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가 넘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정했다. 이번 남측 생사확인 의뢰자 중 제주에서 유일하게 선정된 강인홍(102.여.제주시 봉개동 2499의1번지) 씨는 아들 강익수(70) 씨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에 들떠 있었다.

강 할머니는 둘째아들 익수 씨가 4.3 때 형무소로 끌려간 이후 다시는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강 할머니는 “이후 대전형무소로 끌려갔다는 소식이 들려 한때 책도 보내곤 했다”며, “금방 나올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바로 6.25가 터지는 바람에 소식이 완전히 끊겼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당시 헤어진 아들의 나이는 20세. 3남 1녀를 둔 강 할머니는 두 아들을 4.3때 잃은 데 이어 둘째아들마저 50년의 세월 속에 묻어야만 했다.

이후 50평생 동안 강 할머니는 아들을 볼 수 있다는 신념 하나로 함께 살았던 집터를 떠나지 않은 채 홀로 지켜 오고 있다.

주변 친척들이 편하게 모시겠다는 요청에도 “이곳을 떠나면 아들이 어떻게 찾아오겠느냐”며, “한사코 떠나기를 마다했다”고 친척들은 전했다.

최근 일본에 있는 친척을 통해 “(익수 씨가) 북에 확실히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은 할머니는 정신이 더욱 또렷해졌다.

지금도 강 할머니는 홀로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 들 정도로 건강한 편이다. 오로지 아들을 만날 수 있다는 신념 하나로 반세기를 버텨 오고 있는 셈이다.

생사 의뢰를 대신 신청한 외손자 허병오 씨(44.제주시 화북1동)는 “지금도 부엌 안에는 아들이 돌아올 그 날을 위해 불을 밝혀두고 있다”며, “몇 년 전까지는 아들을 맞이하기 위해 솥단지를 깨끗이 정돈해 둘 정도로 정성이 지극했다”고 말했다.

“아들만 볼 수 있다면 가다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북에 가고 싶습니다.”강 할머니는 행여 둘째아들이 찾아올까 이따금씩 물끄러미 대문을 쳐다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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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대자(大者)는 그의 어린마음을 잃지않는 者이다' 프리랜서를 꿈꾸며 12년 동안 걸었던 언론노동자의 길. 앞으로도 변치않을 꿈, 자유로운 영혼...불혹 즈음 제2인생을 위한 방점을 찍고 제주땅에서 느릿~느릿~~. 하지만 뚜벅뚜벅 걸어가는 세 아이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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