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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문제가 노동부 국정감사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20일 과천 정부종합청사에서 열린 노동부 국정감사에서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현행법률상의 문제점들을 지적하면서 비정규직의 확산을 막고 비정규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노동부의 무사안일한 행정을 질타했다.

그러나 다수 의원들이 지적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당초 노동계에 우호적인 것으로 알려진 김호진 노동부 장관이 성의 없는 답변으로 일관하자 의원들로부터 심한 빈축을 샀다.

"비정형 개념은 모학자 용어법 따른 것일 뿐"

첫 번째로 질의에 나선 박인상 의원(새천년 민주당)은 170여 페이지에 달하는 '비정규노동자 보호를 위한 정책과제'라는 제명의 정책보고서와 질의를 통해 "정부가 비정규직의 개념과 범위를 임시직 중심으로 협소하게 규정해 실효성 있는 대책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김호진 장관은 "근로계약기간만으로 비정규 노동자의 범위를 정하는 것은 잘못된 것 같다"고 인정하며 "비정규 근로자를 판단하는 기준을 노동경제학회에 연구용역을 의뢰한 상태"라고 답했다.

또 박 의원이 노동부의 비정형직 용어 사용에 대해 비판하면서 "노동부의 공식문서에도 비정규와 비정형 개념이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하자, 김 장관은 "정부가 비정형직이라고 한 것은 비정규직의 규모를 축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노동경제학회의 모학자가 비정형 근로자라는 개념을 쓰기에 사용한 것일 뿐"이라고 말해 실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박 의원은 이어 "비정규직 확산을 막는 데 앞장서야 할 노동부가 부서 내에 12%에 달하는 비정규직을 사용하고 있고, 임금도 9급 공무원의 60-80% 수준인 저임금으로 부리고 있다"고 지적하며 "모범을 보이기 위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의향이 있느냐"고 묻자 김호진 장관은 "임시직·단시간 근로자라 해도 자기가 원해서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무조건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답변해 의원들이 의아해 하기도.

여야 의원, 비정규공대위 요구 대부분 반영

이어 전재희 의원(한나라당)은 한국통신 계약직을 예로 들며 "단기계약직들이 고용불안과 열악한 근로조건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독일의 경우처럼 유기근로계약은 계절적·임시적 업무나 법으로 정한 업무로 한정하여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노동부의 법개정 의지를 물었다.

또한 "여성 노동자의 사회 참여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산전산후 휴가를 98일로 늘리고 유·사산 유급휴가 보장하는 등 모성보호를 위한 법개정과 국가의 재정적 부담이 필요하다"며 노동부의 입장을 물었다. 이에 대해 김 장관은 "재계와 노동계의 의견차가 커 협의중"이라는 답변으로 비켜갔다.

전 의원은 또 비정규직에 대한 균등처우 문제를 제기하며 "동일노동에 대해서는 동일임금을 원칙으로 확립해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을 없애야 비정규직의 확산을 막을 수 있다"며 주무부처의 법개정 의지를 물었다. 그러나 김 장관은 "원칙적으로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바람직하나 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할 사항"이라며 "관행을 정착시키고 행정 지도를 통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며 법개정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한명숙 의원(새천년 민주당)은 "파견근로자의 84.1%가 단순노무직에 종사하고 있어 전문적, 일시적 업무에 대해 파견근로를 허용한다는 입법취지가 왜곡되고 있다"며 파견대상 업무를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 장관은 "파견대상 업무의 확정은 정부 단독으로 결정한 사항이 아니라 노사정위에서 합의된 것이기 때문에 노동부의 정책 잘못은 아니"라고 변명했다.

한 의원은 "2년 초과시 직접 고용된 것으로 간주한다는 파견법 조항이 있지만, 노동부가 이를 해당 업무가 아닌 사람을 중심으로 해석해 교체파견 등 편법을 조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김 장관은 "현행 법 조항에 대한 해석을 놓고 변호사의 자문을 구했으나 사람 중심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이야기했다. 이에 대해 전재희 의원은 "노동부가 자문을 얻었다는 변호사가 겨우 2명인데다 주로 사용자쪽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되받았다.

한명숙 의원은 "비정규 근로자 문제에 대한 노동부의 원칙이 없다"며 ▲고용형태를 불문한 균등대우 ▲유기근로계약에 대한 엄격한 법적 제한 ▲노동법의 적용범위 확대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기본 원칙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호진 장관은 "훌륭한 생각"이라며 동의를 표시해 "향후 부처간 협의과정에서 노동부의 실행의지를 두고 보겠다"는 평을 들었다.

김호진 장관, 무성의한 답변에 의원들 고성

그러나 이날 오후 4시경 의원들의 질의가 모두 끝난 뒤 진행된 노동부의 답변에서 장관이 시종일관 "훌륭한 의견이니 잘 검토해 보겠다", "협의 중이다", "관행을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 중이다", "긴장해서 잘 듣지 못했다"는 등 무성의하고 원론적인 답변으로 일관하자 저녁 10시경에는 의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정우택 의원(자민련)은 "의원들의 질의 요지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엉뚱한 답변으로 일관하는 김 장관에겐 빵점도 줄 수 없을 것 같다"고 혹평했다. 여당 소속인 박인상 의원도 "노동부 장관이 국정감사를 받으러 온 게 아니라 코메디를 할려고 나온 것 같다"며 노동대학원장까지 지낸 장관에 대한 강한 실망감을 표시했다.

"그러니까 노동부를 물로 보는 것"

노동부 본부에 대한 국정감사가 있은 20일은 제3차 아셈회의의 개막일에 맞춰 서울역과 삼성동에서 수백명의 비정규 노동자들이 '차별철폐'와 '정규직화'을 요구하면서 국내외 NGO들의 '반ASEM' 행동계획에 따라 거리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국회의원들도 지적했다시피 노동부의 무사안일한 늑장행정과 '솜방망이' 근로감독으로 인해 비정규 노동자들의 고통은 끝없이 깊어만 가고 있다.

보험설계사들이 노조를 결성하고 설립신고를 낸지 십 수일이 지났다. 그러나 노동부는 수십 개 사업장에 대해 일일이 실사를 해봐야 신고필증을 내줄 수 있다며 딴청을 부리고 있다. 마치 정부의 법개정안이 최종 확정되기 전에는 설립신고를 반려하겠다는 태도다. 노동부의 이런 처사는 결국 사용자들의 시간을 벌어주면서 결과적으로 핵심 노조간부들에 대한 해고와 노조파괴를 도와주는 꼴이다. 그 사이에 거대 보험회사들은 쾌재를 부르며, 돈과 몽둥이를 들고 노조원들을 찾아다니고 있다.

올해 들어 노동부가 불법파견 혐의로 고발한 유일한 업체인 이랜드의 경우, 사용자는 아직까지도 아무런 시정조치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한술 더 떠서 다른 계열사에서 또다시 불법파견을 버젓이 행하는 배짱을 보이고 있다. 도대체 노동부가 얼마나 한심하고 '바보'같이 보이면,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파업 127일째를 맞은 이랜드 노조원들이 진정 '꽉 막힌' 이 세상을 저주하도록 만들고, 그러한 분노가 완전한 절망과 체념으로 바뀌어야만 '산업평화'가 찾아온다고 믿는 것인가. 수많은 노동자의 가슴에 생채기가 겹겹이 쌓이고 피멍이 들고 있다. 신속하고 단호한 판단이 필요하다.

김호진 장관은 고대 노동대학원을 세웠고 행정학을 전공한 학자이다. 어슬픈 '장관정치'를 포기하고 그가 가르친 바의 '노동행정'의 원칙과 정의가 무엇인지 그것을 보일 때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비정규노동센터(KCWC)가 운영하는 '비정규노동자를 위한 인터넷 - 워킹보이스(WorkingVoice)'에서 제공힙니다. Copyleft from http://www.workingvoic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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