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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냐의 갈리시아 지방 오렌세에는 벤포스타라는 아이들의 나라가 있다. 1956년 실바 신부와 열 다섯 명의 아이들이 세운 이 나라는 올해로 마흔네 돌을 맞은 진짜 아이들의 나라다. 이 책은 독일의 연극인 뫼비우스가 1972년 한 달 동안 벤포스타를 방문한 여행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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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에 나와 있는 '어린이 공화국'이라는 말이 한낱 수사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지 모르겠다. 그러나 어린이 공화국은 현실에 실존하는 분명한 나라다.

이 어린이 공화국 벤포스타에 가려면 국경 초소에서 24시간 동안 쓸 수 있는 입국 비자를 사야 한다. 비록 어린이지만 대통령이 있고, 장관이 있으며, 공장도 있고, 학교도 있고, 은행도 있고, 그곳에서만 통용되는 화폐도 있다. 물론 어른들의 나라의 연합체인 UN에서는 정식으로 인정하지 않지만, 그들은 의식주를 비롯해 모든 생활을 자치로 꾸려가고 있다.

이 책은 독일의 연극인 에버하르트 뫼비우스가 어린이 공화국이 펼치는 '무차초스 서크스단'의 공연을 보고, 벤포스타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해 한 달 동안 이 나라를 방문하고 쓴 여행기이자, 벤포스타의 역사서이다.

유토피아, 인간의 내재적 본능

혼자 힘으로는 제 몸도 가누지 못하는 아이들이 어떻게 나라를 만들어서 살고 있는지 궁금한 점이 많을 줄 안다. 그리고 왜 아이들만의 나라가 필요한 지에 대해서도.

이 책의 '추천하는 말'에 나와 있는 윤구병 변산공동체학교 교장의 말을 들어보자.
"먼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행복한 꿈 속의 나라를 그려 왔다. 노자의 '도덕경'에서 작은 마을 나라의 꿈을 마주했을 때, 플라톤의 '국가'에서 이상 사회의 설계도를 보았을 때,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나 토마소 캄파넬라의 '해의 나라'를 읽었을 때, 우리 가슴은 얼마나 두근거렸던가."

공동체, 유토피아라는 낱말을 그 자체로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려는 인간의 내재된 본능이 아닐까.
실재로 많은 사람들과 단체가 이러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고, 지금도 진행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벤포스타는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꿈같은 현실임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벤포스타는 1956년 에스파냐의 한 지방에서 실바 신부와 열 다섯 명의 아이들로부터 시작되었다. 헤수스 실바 멘데스는 아홉 살 때 아이들을 위해 도시를 건설한 에드워드라는 신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소년들의 마을>을 보고 감동 받아, 신부가 되어 에스파냐에 어린이를 위한 도시를 세우겠다는 생각을 품는다.

유토피아는 완성품 아닌 함께 만들어가는 것

벤포스타는 이렇게 아이였던 실바의 꿈으로 수태되어 지금 44년의 역사를 갖게 되었다. 벤 포스타(Ben Posta)는 '위치가 좋다'는 뜻의 낱말로 어린이 공화국의 터전인 포도농장의 별명에서 유래했다.

그렇다면 어린이 공화국은 왜 필요한가. 그리고 이를 만든 실바는 과연 현실주의자인가, 몽상가인가. 이에 대해 실바는 단호하게 "현실이 꿈보다 아름답다"며 이는 "현실이 꿈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어린이 공화국에서 펼치는 실바의 교육철학을 뫼비우스는 이렇게 전한다.
"실바는 세상과 사회의 현재 모습 때문에 괴로워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굳이 나서서 이 고통을 체험하고 나누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자기들이 동참해야 하는 까닭을 이해하기 바란다. 아이들에게 세상의 잘못된 모습을 보여 주되, 미래의 가능성을 위해 희망을 갖고 노력하는 것, 이것이 실바의 교육 방침이다."

이제 어린이의 나라 벤포스타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세기 가까운 역사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또 다른 무언가를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실바는 '완성된' 벤포스타는 상상할 수도 없고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고 한다. 실바는 벤포스타가 완성될까봐 걱정한다. 완성이란 움직임이 멈추는 것이며 틀 속에 갇히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어린이 나라는 완성된 상태로 다음 세대에 넘겨 줄 수 있는 건물이 아니다!"

여기서 벤포스타는 유토피아에 대한 인간의 내재적 본능이 단지 꿈에 불과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지를 똑똑히 보여준다. 바로 '만들어 간다는 것, 그리고 변화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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