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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에 동백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뭍의 크고 작은 산들, 설악산, 내장산, 지리산의 나무들이 노랗고 붉은 단풍으로 온 산을 물들이고 스러져 갈 때 비로소 보길도의 동백은 그 붉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합니다.
나는 보길도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두 그루의 동백 나무를 알고 있습니다. 부용리 마을 회관 앞, 동백나무와 선창리 새터 망뫼봉 아래 양지짝의 늙은 나무가 바로 그들입니다.
마음 급한 두 나무는 올해도 어김없이 어느 나무보다 먼저 꽃을 피웠습니다. 이미 지난 10월 중순부터 꽃 피우기 시작한 두 나무는 벌써 모든 봉우리의 꽃을 다 피워 올렸습니다.
이 두 그루를 시작으로 11월부터 보길도의 동백나무들은 하나 둘 꽃을 피우기 시작하여 12월에 이르러 만개합니다.
만개한 보길도의 동백은 한 번 피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듬해 4월까지 몇차례 피고 지기를 거듭하며 그 마지막에 피우는 꽃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예전에는 동백열매로 기름을 짜 여인네들이 머리에 바르곤 했었지만 이제 더 이상 머릿기름으로 쓰기 위해 동백기름을 찾는 사람은 없습니다.
겨울의 보길도는 섬 전체가 동백의 화원이라 이를 수 있을 정도로 산과 들, 마을 길과 시냇가, 해변까지 동백나무들이 그 선홍빛 꽃봉우리를 무수히 피워냅니다. 동백나무들은 대부분 수백년 된 고목들이며 이 오래된 나무들이 구실잣밤나무와 녹나무, 후박나무, 우묵사스레피나무들과 함께 수백년 동안 바닷 바람을 막아 주어 보길도의 집과 사람과 염소들, 논과 밭의 곡식들이 모두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보길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백나무 길은 부황리 세연정에서 시작되어 텃골, 우대미를 지나, 부용리 돈방골, 차낭골까지 3킬로에 걸쳐 이어져 있는데 이 동백나무들이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는 겨울 한철 동안은 피었다 지는 붉은 목숨들의 열기로 숨이 다 막힐 지경입니다.
동백꽃받침에 고인 꿀은 또 얼마나 달콤하고 많은지요. 어린 날 동백꽃 열송이쯤 따서 꿀로 배를 채우면 허기를 면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지요. 하지만 동백이라 불리워도 겨울, 혹한의 시간을 견디고 꽃피우는 동백이 아니면 그것은 진정한 동백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고창 선운사의 동백이 이름 높지만 4월이 지나서야 따뜻한 봄볕을 받으며 시련없이 피는 꽃을 어찌 동백이라 이름할 수 있겠습니까.
그 꽃은 미당과 추종자들, 호사가들이 문학으로 피운 꽃일 뿐이지 현실의 동백꽃은 아닙니다. 그것은 봄에 피어나니 춘백(春栢)이라 해야 옳겠지요. 그런 점에서 겨울의 눈보라와 칼바람을 온몸으로 막아내며 피어오르는 보길도의 동백이야말로 올곧은 동백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동백이 질 때 온몸을 던져 떨어지는 비장한 절명의 정신을 경탄하지만 나는 붉게 피어나 변함없이 붉게 지는 그 단심(丹心)을 더욱 사랑합니다.
아, 나는 여전히 붉은 색을 편애합니다.
그렇다고 보길도에 붉은 동백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흔하지 않으나 순백의 동백도 꽃을 피워 붉게 지는 묵숨들의 순결한 영혼 앞에 조의를 표합니다. 나는 또 그 처연한 소복의 흰 동백나무에 기대서 잃어버린 사랑을 노래하며 잔혹한 겨울의 시련을 견디어 냅니다.
배는 떠나고
흰 동백 피었다 지네
배는 떠나고
사랑은 가고 오지 않네
바람아 불어라
폭풍우 몰아쳐라
배는 떠나고
한 번간 내 사랑 돌아 오지 않네
배는 떠나고
흰 동백 피었다 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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