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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한라산은 11월 단풍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성급하게 하얀 눈꽃을 피워버렸고 서서히 하얀 꽃가루는 한라산 계곡을 타고 호시탐탐 내려올 기회를 엿보고 있다. 그 길목에 조랑말들이 막바지 군무를 펼치며 겨울의 입성을 알린다.

고매장에서 말을 풀어 기르는 평화스런 풍경을 두고 영주 제6경인 고수목마(古數牧馬)라고 했다. 오래전부터 목장으로 이름난 제주도.

한라산 중턱의 일도동 남쪽, 풀을 뜯고 자유롭게 뛰노는 조랑말 떼의 장관. 몽고가 세계적인 목장의 하나로 직할했던 자취가 지금껏 명맥을 이어왔다. 백여년간 고려를 붙잡아두었던 몽고가 물러가고도 한참동안 몽고 '목호군'이 제주를 수탈했던 아픈 기억을 더욱 단단하게 묻어버리려는 듯 말들은 힘차게 땅을 밟는다. 당시 몽고가 말을 키우던 곳은 개간되어 대부분 농경지로 변해버렸는데...

그 어디보다 먼저 봄이 와서 따스하고 훈훈한 기운이 서리고 파릇파릇한 새싹을 뜯으며 콧김을 풀풀 날리며 달리는 목장의 풍경은 5·16도로를 타고 제주산업대를 지나 4분여를 더 올라간 일명 조랑말 목장이라는 금산목장에서 다시금 만끽할 수 있다.

몸집이 작고 강한 반면 성질이 온순하고, 험한 곳을 오르는 강인한 발굽과 지구력에 외국 학자도 감탄한 조랑말은 천연기념물 제347호다.

예전엔 농사의 수단으로 집집마다 한두 마리씩 키워, 새풀이 돋아날 쯤 마을마다 조랑말을 한데 모아 수백 마리씩 풀어놓으면 겨우내 움츠렸던 말들이 드넓은 목장에서 서로 발길질하며 소리를 질러대 잠든 대지를 깨우고 한라산의 잔설을 툭툭 털어 내던 그 모습.

도로를 사이에 두고 양편으로 비스듬히 한라산을 끼고 펼쳐진 목장. 순간 쭈욱 뻗은 일직선 도로에 과속하는 차도 있지만 이곳이 생경한 이들은 저절로 차를 멈추고 목장의 풍경에 휘둘린다.

군데군데 햇살을 걸치고 우아하게 뻗은 소나무의 자태를 흔들며 한무리의 말들이 후두둑 달려간다. 퍼뜩 놀란 꿩들은 쪼르륵 달려 도망치다 버거워 날아오르고 갈기세운 말들의 기세가 등등하다.

인물이 나면 한양 보내고 망아지 나면 제주 섬으로 보내라던 옛말은 언뜻 들어보았을 텐데 제주 어딜 가보더라도 중산간쯤이면 너무도 쉽게 너무도 많은 말을 볼 수가 있다.

몽고가 물러간 뒤에도 조선시대 숙종 때엔 열 개의 목장이 설치되고 감목관, 마감, 목자들을 두어 말을 검사하고 관리하는 등 한때 2만마리 이상 방목되기도 했다. 제주 곳곳에 있는 승마장에서 조랑말을 타볼 기회가 있겠지만 저녁놀을 등지고 말들의 군무가 펼쳐지는 장면을 감상한다는 건 또 다른 감흥을 불러 일으킨다.

입동도 지나고 초한도 지나가는 무렵 요즘 조랑말들은 서서히 은둔할 장소를 물색하는데 새벽녘에서 오전 10시경 사이 풀밭 위로 하얗게 내려 앉은 서리가 자리를 잡고 마지막 말울음의 여운까지도 덮어버리는 금산목장지대.

말들의 발길질에 패인 땅 위로 감추듯 은색의 비단을 깔아놓은 서리. 5-16횡단도로와 산굼부리로 가는 길을 아침마다 온통 덮어있는데... 길 가에 숨은 보물이다.

덧붙이는 글 | 제주도는 가지가지 섞어놓는 메뉴보다는 하나의 주메뉴로 식단을 주름잡습니다. 그중 기호에 따라서 드시겠지만... 말을 요리해서 내오는 곳이 있습니다. 말육회를 비롯 찜, 탕, 조림 등 여러가지가 있으니 호감가는 분은 馬食도 해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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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학신문기자, 전 제주언론기자, 전 공무원, 현 공공기관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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