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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6일로 예정되었던 달라이 라마 방한이 결국 무산되었다. 하지만 방한준비위원회는 방한을 성사시키기 위한 운동을 계속 펴 나가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위원회 공동 상임집행위원장인 서강대 박광서 교수에게 서면 질의를 했다. 다음은 서면 질의에 대한 답변을 정리한 것이다.

먼저 중국 대사의 발언과 관련해서 과연 라마와 미국 사이에 모종의 협약이 있는가?

"미국과의 관계는 라마의 자서전 '유배된 자유'에서 언급한 바 있다. 먼저 1959년 무장 독립투쟁을 주도한 이들이 미국의 무기를 지원 받았다. 허나 구식무기였고 상당수 공중투하 과정에서 파손되었다. 60년대 초반 라마의 동생을 비롯한 수 백명의 티베트인들이 미국에서 군사 훈련을 받고 히말라야에서 무장 투쟁을 벌였다.

독립을 위해 지원하는 곳은 어디든 마다않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당시 미국의 지원을 받은 것은 국민의 20%가 학살된 상황에서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면서 모든 지원이 끊어졌다. 이러한 일들은 이미 공개된 것들이다. 이후 티베트는 라마의 주도로 비폭력 운동을 벌이고 있다.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 인들은 솔직히 우리보다 훨씬 단호하고 원칙을 지켜왔다. 아무의 도움이나 받지 않으려 하고,(이를테면 노동자들을 착취한 기업, 중생의 피땀을 가로챈 돈인 줄 알면 받지 않으신다고 들었다) 환경, 정의, 평화, 인권과 같은 확실한 연대가 가능한 단체와 연대하려 한다. 또한 라마는 항상 미국의 패권주의를 우려하는 연설을 미국에 가서도 공공연하게 한다."

미국, 프랑스, 대만, 일본 등이 정치적인 의도로 라마에게 우호적인 것은 아닌가?

"일본도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의도가 강하다. 그들은 정부의 지원으로 달라이 라마의 대표부를 동경에 두고 재정지원을 하고 있다. 유럽은 굉장히 자발적이고 민간단체들의 지원이 많다.

미국, 일본, 유럽이 달라이 라마에 대해 호의적인 배경에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의도가 일정부분은 있다. 허나 요즘처럼 피도 눈물도 없는 게임의 법칙이 지배하는 국제사회에서 티베트 문제를 붙잡고 있다해서 당사국도 아닌 나라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는가? 망명인 12만여명을 거느린 일개 승려를 대접한다고 중국이 무너지는가?

물론 정치적으로 활용하려고 하는 세력들도 나라마다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한다.

서구의 지식인들이 달라이 라마에 귀의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존경하니까, 귀찮은 남의 나라 문제를 관심있게 보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의 독립뿐만 아니라 인류와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공통의 과제를 해결하는 데 더 큰 힘을 쏟고 있다는 것이다. 환경문제, 빈부격차 문제, 전쟁문제와 같은 보편적인 문제에 대해 분명한 자기 답변을 제시해주고 있는 그분은 이미 세계의 가장 중요한 정신적 지도자이다.

정치적 활용 운운은 이미 국제사회에선 나올 수도 없을 정도로 유명한데 한국에는 최근에야 알려지면서 이런 의구심들이 있는 것 같다."

왜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라마가 우리나라를 방문해야 하는가?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가

"우선 달라이 라마가 한국에 오셔야 하는 이유와 의미로 다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먼저, 우리사회는 정신공황 상태이다.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하고 삶의 목표를 잃고 표류하는 현대인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개탄하지만 구체적인 해결책의 제시나 솔선수범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이런 때 종교가 스스로의 이익만을 위해 세속화·권력화되는 대신 사회로 향해 열려 그 역할을 충분히 하도록 해야 한다.

특히 한국처럼 종교의 힘이 막강한 곳에서 종교가 그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평생 행복한 마음, 평안한 마음, 자비와 비폭력을 수행·실천해오신 달라이 라마의 솔직하고 신뢰감 있는 가르침이 필요하다. 게다가 티베트 불교 및 문화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문화를 좀더 깊이 있고 성숙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거라는 기대도 있다.

다음으로, 한국사회는 여러 측면에서 갈등구조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지구상 유일하게 남아있는 분단국가이고, 수십 년을 지역갈등으로 서로 고통을 겪고 있다. 종교적으로도 우리나라만큼 대등한 세력으로 분할되어 복합구조를 갖고 있는 나라도 없어 종교갈등 또한 심각할 뿐 아니라, 급격한 서구문물의 유입으로 전통가치와의 충돌도 염려된다.

그리고 지정학적으로 강요된 이념구조 때문에도 오랜 동안 갈등과 고통을 겪어왔다. 공동체 정신은 사라지고 극단의 이기주의와 거친 폭력이 사회 곳곳에 상존하고 있다. 이제 우리 세대가 이 모든 갈등구조를 녹여낼 새로운 철학을 세우고 구현해야 할 의무가 있고 또 그래야만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다. 이와 같은 갈등의 해소에 격동의 반세기를 한 치의 흔들림 없이 화해와 관용, 그리고 상생의 철학을 호소해온 달라이 라마의 가르침이 시의적절 하다고 보여진다.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의 합의된 이념인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체성과 주권국가로서의 위상을 위해서도 달라이 라마의 방한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50여 개국을 아무런 문제없이 여행하는 한 세계지도자가 왜 올 수 없는지 이해할 수 없다. 라마 개인의 인권문제이기도 하고 한국시민의 문화주권이 박탈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더구나 중국대사의 말 한마디에, 그것도 비정치적인 순수 종교 문화적인 교류에 대해서마저 우리 정부가 무릎을 꿇는 모습은 이해하기 어렵다. 중국의 한국 길들이기 냄새가 물씬 나는 굴욕적인 행태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면 나머지도 다 그르치게 된다. 우리민족의 먼 앞날을 위해서도 반드시 넘어야 할 만리장성이라는 생각이다."

예정되었던 방한이 좌절된 것에 대한 달라이 라마의 반응은 어떠한지.

"10월30일 최초로 알려드렸는데 '유감'이란 말만 짤막하게 하셨다고 한다. 물론 그 전에도 한국측 준비위에게 "한국정부를 너무 곤란하게 만들지 말라"고 부탁을 하셨다."

달라이 라마와 우리나라 불교계와의 관련성은.(종파, 이념, 체계 등) 우리 불교계의 반응이 미진한 것 같은데.

"우리 불교계는 티베트 불교와 달라이 라마를 잘 모르는 편이다. 조계종에서는 특히 티베트 불교를 교학불교, 밀교니 해서 폄하하는 경향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티베트에서는 한국불교에 대한 굉장한 동질감을 갖고 있다. 달라이 라마는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말하곤 하는데, 이것은 대승불교, 즉 깨달음의 목적을 중생을 위한 헌신으로 여기는 대승불교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다. 지구상에서 대승불교의 전통이 가장 온존한 곳이 바로 티베트와 한국이다."

현재 서명운동 동참자 수와 성향(지역, 종교)은

"서명운동은 현재 20만 명 정도 동참하였고, 부산, 대구, 광주, 전주 등에서 자발적으로 하는 분들이 많다. 불자들이 중심이긴 하지만, 다른 종교인들도-기독교, 천주교, 원불교 등- 많이 동참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 전기 영화 '쿤둔'에 대한 반응은 어떠한지. 더불어 티베트인들이 달라이 라마를 신성시 여기는 것은 어떻게 바라 봐야하는지.

"'쿤둔' 은 앞서 말했던 '유배된 자유'란 자서전을 아주 사실적으로 기술해 놓은 것이다. 티베트인들의 심리나 사실묘사에 굉장히 신경을 썼다. 왜 마틴 스콜세지란 감독을 거장이라 하는지 이해가 가는 영화이다. 보신 분들은 굉장히 감동을 많이 받으신 것 같다.

달라이 라마를 신성시 여기는 문제는 우리가 좀 거부감을 갖고 볼 수는 있는데, 우리식으로 편견을 갖고 보면 당연히 그렇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티베트란 곳을 조금만 이해하면, 영화에서 그리는 라마에 대한 존경심이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40년 동안 중국의 지배하에 있으면서, 한번도 라마를 뵙지 못한 분들이 지금도 라마가 계시는 다람살라로 가기 위해 히말라야를 넘어 온다.

티베트 본토에서도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해 라마 사진을 다 갖고 있다고 한다. 영화는 자서전을 옮기다보니, 오히려 그런 티베트인들의 마음을 제대로 옮기지는 못한 셈이다. 티베트인들이 달라이 라마를 살아있는 관세음보살로 여기는 것을 우리 주관으로 보면 안 된다. 달라이 라마를 신이되 신이 아니고, 보살이되 보살이 아닌 존재로 이해하는 티베트인들의 종교적 심성을 봐야 한다."

최근 동향과 앞으로의 운동 방향에 대해서

"11월16일로 예정돼 있던 방한은 결국 무산되었다. 앞으로는 서명운동을 포함해서 보다 많은 국민적 공감대를 확보하기 위한 일을 중심으로 할 생각이다.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 불교를 알리기 위한 다양한 홍보, 강연회, 토론회 등을 준비하고 있고, 한편으로는 내년 방한 성사를 위하여 국제적 압력을 강화하는 방안도 추진 중에 있다."

방한 좌절의 가장 큰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는지. 추진위원회 내부의 문제(운영, 홍보)는 없었나.

"일단 중국의 오만무례한 압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외부조건이고 결국은 우리 문제라고 봐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의 무원칙과 무능때문이다. 동티모르와 아웅산 수지의 인권은 말하면서도 북한과 티베트의 인권은 말할 수 없는 인권대통령의 두 얼굴, 그리고 할 말은 하고 주권국가로서의 체면은 지켜 가는 외교적 능력의 부재, 그리고 국민과 불교계를 헷갈리게 한 방한허용과 관련된 일관성의 결여 등이 주원인이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진의 중심이었던 불교계와 준비위원회의 문제 또한 결코 적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만일 1천만 불교계가 정말 똘똘 뭉쳐 힘있게 밀고 나갔어도 이렇게 허무하게 끝났을까 하는 생각을 지금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솔직히 강원룡 목사같이 강한 모습을 보인 불교계 지도자는 없었다. 오히려 국익에 해가 된다느니, 중국불교와의 교류에 신경 써야 된다느니, 국내엔 고승이 없느냐느니, 방한사업은 승가의 어느 파가 하는 일이라느니 등 비본질적이고 비자주적인 모습마저 보이기도 했다. 이러하기에 1천만의 힘이 모일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외교적으로 밀리고 있는 정부로서도 중국의 벽을 넘을 지렛대로 사용하기에는 불교계의 모습이 힘있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또 정부 일각에서 불교계에 대해 그렇게 작업한 흔적도 있다. 그런 와중에 별도의 특별한 조직도 재정도 없는 준비위원회가 외부에서 기대했던 만큼 철저하고 치밀하게 전방위 작업을 제대로 할 수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주어진 여건 하에서 준비위로서는 최선을 다한 일이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제는 달라이 라마라는 한 인물이 한국에 오느냐 마느냐의 문제에서, 오히려 달라이 라마는 정말 누구인지, 티베트라는 나라는 어떤 나라이며 그 문화는 인류사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것으로까지 확대되었다. 그리고 한국의 문화수준과 주권국가로서의 위상은 어떤 것인지, 우리 불교계의 사회적 의식의 지평은 어디쯤인지 등에 대해서 다시금 스스로의 현주소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이번 방한의 무산이 어떻게 보면 준비 안된 채로 달라이 라마를 모셔와서 피상적인 행사를 치르는 것보다 충분히 그 의미를 소화하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성숙한 국제시민으로 깨어나게 하는 전화위복의 사건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동안 방한이 불확실한 상황 하에서도 성원을 보내주신 국민과 언론에게 다시 한번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그리고 내년의 방한 성사를 위해서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 부탁드리고 저희 역시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을 약속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대학생 인터네 신문 모난돌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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