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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천에 살고 있는 김영춘(41. 청통면)씨는 7일 아침 일찍 트랙터를 타고 집을 나섰다. 겨울 추위가 매서워지고 있는데 웬 트랙터냐고? 글쎄...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벼농사도 짓고, 돼지도 먹이면서 살아 왔지. 근데 이젠 더 이상 살기 힘들어. 그놈의 빚 때문이지 딴 게 있나. 김영삼 정권 들어서고 나서 농업기계화다, 전업농 육성이다 뭐니 하는 바람에 농기계를 사고 나니 이제 빚더미에 깔려 버린 게 농민 실정이지 뭐요"

김씨는 오늘 아끼던 트랙터를 영천시청 주차장에 '버렸다'. 농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김씨의 절박한 심정이 그의 트랙터를 시청으로 향하게 했다.

"우리 청통면에만 해도 트랙터가 70대나 돼. 3, 4천만원씩 대출받아서 들여놓았더니 이제는 필요가 없어. 사실 우리나라 실정에 기계영농이다 뭐다 하는 것이 맞지가 않다는 거야. 돈 빌려서 산 농기계로 일년 농사지으며 뭐해. 이자 갚을 돈도 안 나오는데. 이러면 농사를 포기해야지"

김영춘씨와 같은 농민들이 모두 61대의 트랙터를 반납하는 바람에 이날 영천시청 주차장은 마치 농기계 전시장이 돼 버렸다.

7일 오후 2시 영천시장 앞 도로에서는 '농촌회생 촉구를 위한 2차 영천농민 총궐기 대회'가 열렸다. 지역 농민 300여명이 참가한 이 대회에서는 현정부의 농업 정책에 대한 비난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같은 시각 경북지역 20여개 지역에서도 농민들의 '반란'은 이어지고 있었다. 영천지역처럼 농기계를 반납한 곳은 부지기수이고, 안동, 상주 및 일부지역에서는 농민들이 일년동안 생산한 과수를 농협에 대출 이자 대신 현물로 상환하기도 했다.

지난달 21일, 그리고 지난 2일 두 차례에 걸친 대규모 농민집회 이후 전국 동시다발 '투쟁'이 다시 벌어진 것이다.

농민들은 이날 ▲농가부채특별법 제정 ▲농축산물 가격보장 ▲농업관련 4대 개혁입법 수용 ▲구속농민 석방 ▲수입개방 반대 등을 주장했다.

특히, 농민들은 그 동안 누적되고 있었던 농가부채에 대한 적절한 조처를 빠른 시일 내에 정부가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빚이 5천만원이나 된다는 박정태(45. 영천시 인고면)씨는 "원금은 고사하고 이자를 갚기에도 빠듯하다"고 토로하고 "토마토 농사지어보려고 대출 받아 하우스 지었더니 이제는 토마토 값이 X값이 됐다"며 답답해했다.

또 자신이 지고 있는 빚 외에도 연대보증으로 채무를 지게된 사연도 농민들의 가슴을 더욱 답답하게 하고 있다.

농민집회에서 만난 농민들 사이엔 이젠 '참을 만큼 참았다'는 정서가 팽배해지고 있었다. 수조원에 달하는 국고지원비를 기업체에 지원한다고 '난리'지만 농업은 천대하고 있는 것이 농민들이 바라보는 정부의 모습이다.

농번기 농사는 끝이 났다. 하지만 농민들의 '아스팔트 농사'는 이제부터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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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 오마이뉴스(dg.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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