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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철학은 1990년대 한국사회를 물결처럼 지나갔다. 그리고 21세기 초, 그 여운은 아직 길게 남아 있다. 20세기 프랑스 지적 혁명의 현장 한 가운데 있었던 자크 라캉. 그의 삶과 사상을 조명한 이 책은 '지식인은 과연 무엇으로 사는지'를 흥미롭게 탐색하고 있다.

프로이트의 무의식의 개념을 더욱 정교화시킴으로써 독특한 자신의 사상을 구축한 자크 라캉은 국내에서도 활발히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라캉은 정신분석학자로서 이에 대한 탁월한 업적으로 인해 국내에서 의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는 반면,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사람들, 문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도 라캉은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었다.

자크 라캉의 주저라고 할 수 있는 '에크리(Ecrits)'는 프랑스에서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 푸코의 '말과 사물'과 함께 '철학서가 빵처럼 팔려나간' 명성을 갖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번역되지 않은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이 사기는 했지만, 끝까지 읽지 않는 책으로도 유명하다. 그 만큼 난해하기 때문이다.

20세기 프랑스 지식인 사회 중심에 있었던 라캉

라캉은 20세기 프랑스의 지식인 사회에서 그 중심에 있었다. 라캉이 1980년 죽기까지 그는 15년 정도 말로 하는 세미나를 진행해 왔으며, 이 세미나에는 숱한 지식인들이 참여했다. 그리고 그의 세미나는 프랑스 지식인 사회에서 하나의 유행이자 실험실인 동시에 온갖 사유들의 만나는 공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라캉은 제도권에서 버림받은 이력을 가지고 있다. 미국식 정신분석에 철저하게 반대한 그를 국제정신분석학회에서 제명시켰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라캉은 재야에서 자기만의 학파와 자기만의 사상을 만들어냈다.

20세기의 지적 거인이기도 했지만, 그는 기인으로도 통한다. 제도에 맞서가면서 온갖 모험과 실험, 도전, 혁신으로 온몸으로 실천함으로써 그의 삶과 사유의 궤적에 대해서는 온갖 소문과 스캔들 그리고 풍문이 떠돌았다.

이번에 새물결에서 두 권으로 나온 자크 라캉의 전기는 한 지식인의 삶을 통해 '지식인은 과연 무엇으로 사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방대한 분량이 말해주듯 삶과 사상을 밀도 있게 고찰하고 있다. 라캉의 어떤 삶이 그의 사상을 낳게 했는지, 또 그의 사상은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의 지은이 엘리자베트 루디네스코가 라캉의 전기를 쓰는데 있어 최적격의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 책이 차지하는 가치를 짐작할 수 있겠다.

한 지적 거장의 내밀한 삶의 기록

루디네스코는 프랑스의 유명한 정신분석 역사가인 동시에 그의 어머니가 프랑스 정신분석 운동의 핵심인물이었다. 따라서 지은이는 초현실주의부터 시작해 20세기 지적 혁명의 현장에 대한 이해를 누구보다 잘 하고 있는 것이다.

라캉은 70세를 넘긴 1970년대에 정신분석을 수학화하기 위해 젊은 수학자 보로메오 매듭과 위상학을 새로 공부했고, 노자와 공자를 좀 더 이해하기 위해 중국어를 공부할 정도로 지적 호기심과 왕성한 탐구욕을 과시했다.

무엇보다 이 책은 라캉이 20세기 프랑스의 지적 흐름 한가운데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삶과 사상은 일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 프랑스 사상은 러시아와 독일, 오스트리아에서 발생한 세 가지 지적 혁명, 즉 러시아 형식주의와 독일의 프로이트와 후설, 그리고 오스트리아에서 발생한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 등이 합류하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20세기 지식인의 고뇌와 투쟁, 유혹, 욕망 등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또 사상가들의 뒷얘기를 흥미롭게 곁들이고 있어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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