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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118일째인 2001년 1월 4일, 서울관객 동원 245만명으로 99년 <쉬리>가 세운 서울244만8399명의 기록을 경신했다. <쉬리>가 세운 112일 흥행기록에 6일 늦은 기록이지만, 99년 이후 5년간 깨어지지 않을 기록이라던 영화계 예상을 뛰어넘은 놀라움이다.
더욱이 <쉬리>가 평단의 부정적인 평가와 대기업 자본, 반공이데올로기의 새로운 포장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면 <공동경비구역 JSA>는 비평과 관객으로 엄청난 사랑을 받은 2000년 한국 영화의 자랑이다.
<공동경비구역 JSA>가 경신한 한국영화 최고의 기록들을 보면, 한국 영화 최고 예매 기록(서울 6개 극장 예매 5만장), 최다 스크린 개봉(서울 55, 전국 125개관), 일일 최다 관객동원(서울 9만명), 추석 연휴 5일간 최다 관객동원(서울 21만5000, 전국 41만 5000명), 최단기간 전국 100만 돌파(2000. 9. 15), 최단기간 서울 100만명 돌파(2000. 9. 24), 최단기간 서울 150만 돌파(2000. 10. 3), 최단기간 전국 400만명 돌파(2000. 10. 15), 서울 주말 박스오피스 연속 9주 1위, 최고가 해외배급(미니멈 개런티 200만불), 서울 최다 관객수 돌파(서울 245만명) 등 신기록의 연속이다.
<공동경비구역 JSA>가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여정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시작부터가 시련이었다. "된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던 영화는 당시 '명필름' 대표이자 <파업전야> 제작자였던 이은 씨의 '영화철학'과 <결혼이야기>, <접속> 등으로 천부적인 마케팅 감각을 보여왔던 심재명 '명필름' 대표이사의 '현실감각'이 빗어낸 한 편의 드라마가 되었다. 6.15 정상회담이 성사되자 영화계에선 "<공동경비구역 JSA> 흥행을 위해서 고사를 지낸다"라고 시기어린 부러움이 여기 저기에서 들려왔다.
10월 부산영화제라는 한국 영화 특유의 영화흥행 공백 기간까지 1위로 줄달음치던 흥행전선은 준비된 복병 <단적비연수>와 <리베라 메>의 협공을 당한다. '명필름'의 초조함과는 달리, <쉬리>와 <공동경비구역 JSA>, <단적비연수>의 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는 행복한 고민의 시기이기도 했다. <쉬리>의 영광을 이어가기 위한 <강제규필름>의 야심은 뚜껑을 열어본 <단적비연수>의 미진함에 빛을 바랬고, 'CJ엔터테인먼트'의 선택은 다시 <공동경비구역 JSA>의 연장상영으로 이어졌다. 물론 이때의 어려움이 최단기간 흥행기록 경신에 실패한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최고 흥행에는 여러 가지 영화계 안팎의 파장이 담겨져 있다. 개봉 전 진보적 인사를 모시고 시사회를 열어야 할 만큼, 진보적인 대북관을 담은 영화 소재는 영상물등급위원회의 '18세 이상 관람가'와 '판문점 전우회'의 '명필름' 난입소동이라는 진통을 겪어야 했지만, "청소년에게 잘못된 대북관을 심어준다"는 논리는 진보적 관객에게 밀려나갈 수밖에 없었다.
한국 사회의 보수우익의 시각은 적어도 극장내에서 만큼은 조금 약발이 부족한 모양새였다. 신자유주의의 최대 자랑인 수출에도 <쉬리>의 150만달러를 제치고 미니멈 200만달러에 팔려감으로써 청계천 수족관에 반사 이익을 남긴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제압했다.
영화 속 '키싱 구라미'의 키스가 사실, 암수의 사랑이 아닌 남남, 여여의 동물적 행위라는 특종(?)을 낳았던 <쉬리>보단 북한 병사에게 남한 최대의 전쟁물자(?), '쵸코파이'를 먹이는 것이 '청소년 대북관'에 훨씬 건강하리라는 것을 증명한 영화이기에, 우리는 <공동경비구역 JSA>의 기록경신에 주저없이 축배를 들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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