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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초입. 그 어느날 아침, 객사 직전에 놓여 있던 요크셔테리어를 주워온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근무하던 사무실에 함께 '출근'을 했었죠. 답니다. 애완견이었을 것이 분명한 그 녀석의 털은 윤기를 잃었고, 뱃가죽이 찰싹 붙어 온몸에 객사 직전의 살기가 느껴졌습니다.
신문지에 돌돌 말아 동물병원을 찾아갔고 내리 다섯 방의 주사로 더 힘겨워하던 녀석. 그 뒤, 둘 데가 없어 사무실에서 이틀을 제가 데려다 키웠습니다. 그런데 그 녀석이 지난 주 예쁜 새끼를 낳았습니다. 달마시안을 닮은 작은 땡땡이무늬의 점박이와 말 그대로 새까만 검둥이새끼였습니다.
새로운 탄생 스토리를 만들어낸 주인공은 '똘이'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애완견으로 호사스럽게 컸을 왕년세월을 마감하고 찬바람 부는 어느날, 황량한 시골농장에서 새 인생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농장에는 눈치코치 빠른 19살 검은털 발바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똘이는 바로 그 검은털 발바리 녀석의 영역 속으로 과감히 몸을 던진 것이죠. 감히 건드릴 수 없는 그 불침범의 영역에서 똘이는 어깨를 움추린 채 생존경쟁의 늪을 체험해야만 했습니다. 달콤한 우유가 아니라 조금 퍼진 듯한 사료죽을 먹고, 푹신한 잠자리 대신 신문 한 장 없는 찬바닥에서 잠을 자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똘이에게 변화가 생겼습니다. 바로 19살 먹은 늙은 발바리의 집을 탈취하려 덤벼든 것이죠. 으르렁 으르렁... 모처럼 똘이의 이빨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늙은 발바리는 19년간의 노하우로 똘이를 야무지게 나무랐습니다. 몇 차례의 심각한 부상이 있었지만, 똘이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유난히 추위에 약했고 먹는 것도 시원찮던 똘이었는데 말이죠. 귀찮아진 발바리가 체념하듯 판자집을 버리고 갔습니다. 며칠 전, 똘이는 그 허름한 개집에서 예쁜 새끼 두 마리를 낳았습니다. 그러니까 똘이의 그 힘든 싸움은 모두 자기의 새끼 때문이었던 겁니다.
똘이는 요크셔테리어 순종이라는 동물병원의 진단에도 불구하고 시골 동네 어느 녀석과 사랑을 했던 모양입니다. 난데없는 얼룩무늬 새끼를 낳은 걸 보면 말이죠. 하긴 아래 아래집의 활달한 바둑이가 기억납니다.
똘이는 요즘 잠시도 새끼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발바리의 발기척에는 유달리 예민합니다. 또 아무리 섬겼던 주인이라도 쉽게 새끼를 보여주지도 않습니다. 아주 조심스럽게 아기강아지를 보듬고 한숨 한숨 새끼와의 시간을 놓치지 않습니다.
보통 애완견들은 순산하기가 힘들다고 하던데, 겨울밤 혼자 새끼를 거두어낸 똘이가 새삼 자랑스러워졌습니다.
작년 12월 못먹어서 삐쩍 마르고 털에 윤기를 잃은 채로 발견된 똘이가 이제 어엿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시골 한켠을 지키고 있습니다.
생명... 그 단어만으로 풍요로워집니다. 넉넉해지고 따뜻해집니다.
길을 헤매던 똘이는 어느 대학 "수의학과에 기증"될 뻔한 운명이었는데... 이제 어엿한 산모로 생명탄생의 존엄까지 경험하게 해주었습니다.
볼품없을 땐 욕심없던 사람들이 '새끼' 소식에 흥분하는 걸 보며 우리들의 어쩔 수 없는 편리함도 확인하게 됩니다.
겨울 초입, 객사직전에 있던 요크셔테리어는 시골농장으로 흘러가 뭉클한 생명 두 덩어리를 낳았고 예전보다 따뜻해진 겨울을 보내고 있답니다.
여러분의 겨울은 따뜻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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