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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바꾸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오늘은 봉순이와 함께 산에 가는 날입니다.
세연정을 지나 농대 뒷길로 접어드는데 정석이 아버님이 밭에서 일하고 계시다 말을 걸어옵니다.
"개 띧기러 가냐?"
전남대 농대 연습림 관리인으로 근무하다 지난해 정년 퇴직하신 정석이 아버님은 내가 개들을 데리고 가는 것만 보면 개한테 풀먹이러 가냐고 농을 치십니다.
"그라요, 개 띧기러 산에 가는 중이구만이라우"
나는 아스팔트 길을 피해 인적 드문 비포장의 옛길로만 걷습니다.
돈방골을 지나 친구 정래 집에 잠시 들렀다가 남은사 길로 접어듭니다.
상수원 댐을 지나면 선창리 재까지 1킬로 넘게 나무터널 길이 계속됩니다.
해안도로가 뚫린 뒤 마을 사람들은 더 이상 이 아름다운 고갯길를 넘어 선창리에 가지 않습니다.
걸어서 30분이면 넘는 고개를 놔두고 굳이 해안도로를 따라 30분간 차를 타고서 선창리까지 갑니다.
선창리재 정상 조금 못미쳐 오른 편으로 남은사 가는 갈래 길이 나타납니다.
남은사는 산 정상 부근에 있는 조그만 개인 암잔데 지금은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 청정 도량이라기보다는 살림집 같은 느낌입니다.
그래서 나는 남은사보다는 산 정상에 오르기 위해 이곳에 자주 옵니다.
보길도에 온 사람들 중에서도 드물게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관광객들 대부분은 절에 가고 싶어 하면서도 남은사가 산 정상에 있다는 소리를 듣고는 이내 단념하고 맙니다. 걷고 땀흘리는 것이 귀찮은 때문이지요.
남은사 정상에 오르면 진도 해남, 완도, 노화도, 소안도, 흑일도, 백일도, 횡간도, 관매도, 넙도, 추자도, 점점이 떠 있는 다도해의 수많은 섬들이 그림처럼 펼쳐져 한 눈에 들어옵니다.
이곳에 온 다음에야 비로소 다른 세상에 온 것을 실감하게 되지요.
관광객들은 뭍에서 10시간도 넘게 차를 몰고 배를 타고 보길도란 이름을 쫓아 왔으면서도 불과 한 시간 거리를 걷는 것이 싫어 보길도의 실체는 놓치고 맙니다.
예전에는 높은 곳에 오르려는 사람들은 적어도 험한 길을 걷는 수고와 땀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요새 사람들은 높은 곳도 쉬운 방법이 아니면 잘 오르려 하지 않습니다.
산 정상까지도 자동차 길이나 케이블카가 있어야 겨우 올라갑니다.
길이야 변한 것이 없을 텐데 오늘은 산에 오르는 발길이 유난히 가볍군요.
한차례도 안 쉬고 단숨에 남은사까지 올랐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처음 남은사에 올랐을 때는 쉬다 걷다 헉헉대며 한시간도 넘게 걸려서 겨우 올랐고, 그후로 길이 익숙해졌을 때도 50분 이상은 족히 걸렸었는데 오늘은 15분도 채 걸리지 않았으니 말이지요.
거의 매일 산에 다녀서 산길에 익숙해지고 또 체력이 좋아진 것이 이유일까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다 설명되지가 않습니다.
보다 중요한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생각을 바꿨다는 것이지요.
전에는 산을 타는 것이 힘들지만 건강을 위한다는 의무감으로 올랐습니다.
하지만 오늘 나는 어떤 의무감도 목적도 없이 산을 타는 것 자체가 즐거워 산에 왔습니다.
그리고 1시간 걸리던 등산 시간을 4분의 1로 단축시켰습니다.
앞으로는 어쩌면 15분이 아니라 10분, 5분만에 정상에 오를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옛 사람들의 축지법이 이런 걸까요.
아주 작고 사소한 일이지만 나는 이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기적을 믿지 않았지만 오늘 몸소 체험했으니 이제 어떻게 기적을 믿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거대하고 불가사의한 것만이 기적이 아닙니다.
이제 나는 기적을 믿습니다.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처지가 고통스럽고 절망스러울 때 상황과 맞대면 하려 하지 않고 도피적으로 기적을 갈망합니다.
하지만 절망과 고통 속에서 힘겨워하며 일할 때 기적이 일어나는 법이란 없습니다.
절망적인 처지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생각을 바꾸는 일이지요.
삶이 신산스러울 때 기적을 찾아 먼길을 떠날 것이 아니라 지금 있는 자리에서 생각을 바꿔 보십시오. 기적이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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