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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전 제가 사는 아파트의 현관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가다 픽하고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평소 조심스럽지 못한 저는 갓난아이가 있는데도 초인종을 몇 번 눌러서 집사람의 눈총을 받은 터라, 제 딴엔 조심을 한다고 초인종을 누르지 않고 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갔는데 더 이상 딸아이가 집에 있지 않다는 것을 문득 깨달은 거지요.
맞벌이를 하는 저희 부부는 아이들을 저희들 손으로 키울 수가 없어서 우여곡절 끝에, 아침에 맡기고 저녁에 데려올 수 없을 정도로 먼 곳에 사는 누나에게 맡겨 키우고 있습니다.
남에게 맡기는 것보다 혈육이 좀더 믿음직스러웠던 것이지요. 딸아이를 누나에게 맡기기 며칠 전부터, 며칠만 지나면 더 이상 딸아이를 매일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남의 식구가 되는 것처럼 아쉽고 섭섭했습니다.
딸아이를 누나 집에 맡기고 돌아오는 날, 전 왜 그렇게 일찍 가려고 하느냐하는 눈총을 받을 만큼 서둘러 아내와 함께 저희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차피 헤어져야 하는데 머뭇거리면 더 섭섭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딸아이가 없는 저희 집은 딸아이에게 필요한 물건이 없어져서 무척 단출해졌고, 그 만큼이나 따뜻함이나 생기가 사라진 것 같아 무척 썰렁해 보였습니다. 어쩌면 자식을 모두 출가시키고 단 둘이서 생활을 하는 노부부의 심정이 이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쓸쓸하더군요.
그래서 냉장고와 안방의 거울에다 딸아이의 사진을 여러 장 붙이고, 딸아이의 사진을 여러 장씩 가지고 다니지만 그 섭섭하고 보고 싶은 마음을 지워주진 않습니다. 그리고 문득문득 딸아이가 그립습니다.
딸아이가 집에 있을 때의 버릇처럼, 텔레비전을 켜면 반사적으로 볼륨을 줄이다 문득 딸아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안방의 문을 살며시 열다가도 딸아이의 "부재"를 깨닫고 다시금 슬퍼집니다.
더구나 이제는 딸아이와 함께 살게 된 초등학생인 조카녀석은 어린 갓난아기가 에취하고 기침하는 것이 신기했는지 저희에게 전화를 해서 딸아이를 떼어놓은 저희들을 더욱 가슴아프게(?) 합니다.
그러고 보면 딸아이 때문에 잠을 설치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다독거리며 잠을 재우는 것은 세상에 둘도 없는 행복이었습니다. '이제 겨우 생후 일 개월을 갓 넘은 아이를 가진 아버지가 할 수 있는 말인가?'하는 의문은 들지만, '자식은 키울 때 효도를 다한 것이다'라는 말이 실감이 됩니다.
그렇게 보고 싶었던 딸아이를 오늘 만나러 갑니다. 며칠 전부터 아내는 딸아이를 보러 간다는 생각에 무척 가슴 설레고 있더군요. 물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그 어떤 미인과 데이트를 한다고 해도 딸아이를 만나는 것만큼 가슴 설레진 않을 것입니다. 오늘은 길이 아무리 막혀도 짜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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