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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소리와 물소리가 어우러지고 꽃내음이 만발한 '평화의 계곡'에서 종파와 교리를 떠나 고통받는 이웃들을 도와주기 위해 힘쓰는 스님과 수녀님이 20년만에 다시 만났다. 늙은 총각인 스님과 늙은 처녀인 수녀님은 환한 웃음 속에 서로의 손을 잡고 목련처럼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깊은 소망을 다시 한번 다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사랑의 향기가 스며들었다.

지난 7일 자비사 주지인 박삼중 스님과 삼중원 건립 추진회 불교 신도들 1백여명이 경북 성주군 초전면 용봉1리 평화의 계곡에 위치한 '요셉의 집'(원장 최 소피아 수녀)을 찾아 이곳에 있는 원생들에게 위문품 전달 및 공연 행사를 열었다.

이번 행사는 불우한 이웃을 돕는데 불교와 천주교라는 종파를 떠나 서로 힘을 합해 노력하는 화합의 자리였다는 의미도 크지만, 그 뒤에는 아름다운 인연의 모습이 담겨 있는 자리였다.

숨겨진 아름다운 이야기는 불교와 천주교의 두 종파를 떠나 불우한 이웃을 돕는데 헌신하고 있는 두 사람, 잿빛승복을 입은 박삼중 스님과 순백의 천사 최 소피아 수녀님의 20년 전 만남에서 시작된다.

지난 1981년 삼중스님은 거리의 탁발로 모은 정성어린 돈과 후원회의 성금을 가지고 포교당 청년회원들과 함께 대구 시립 희망원으로 최 소피아 수녀를 찾게 된다.

그때 서로 종파가 다른 성직자가 만난다는 것에 대해 논란이 있었지만 '좋은 일이라면 누가 하든가 가리지 말고 도와주고 함께 힘을 모은다'는 의견에 삼중 스님과 소피아 수녀는 마음이 일치했다. 서로 만난 자리에서 최 소피아 수녀는 삼중 스님의 손을 덥썩 잡았고 두 손을 마주잡은 두 사람은 "종파나 교리에 얽매이지 말고 고통받는 이웃의 구제에 힘을 모으자"고 서로 굳게 약속을 했다.

하지만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가 언론에 기사화되면서 문제가 발생하게 됐다. 많은 사람들에게 불우한 이웃들의 삶의 모습과 최 소피아 수녀의 아름다운 선행을 알려 후원이 이뤄지길 기대했던 삼중 스님의 생각과는 달리, 드러내지 않고 보이지 않게 불쌍한 사람과 어려운 이웃을 돕겠다고 다짐한 최 소피아 수녀님 사이의 오해가 생긴 것이었다. 화가 난 최 소피아 수녀는 단식을 하는 등 좀처럼 화가 풀리지 않았고 이들의 만남은 한동안 이뤄지지 않았다.

그 후 최 소피아 수녀가 경북 성주군에 정신 질환자와 알코올 중독자 등 버려진 사람들의 치료와 갱생을 위한 사회복지 시설을 운영하게 됐는데, 매우 어려운 사정 속에서 꾸려나가야만 했다.

마침 삼중스님이 전화를 최 소피아 수녀에게 전화를 하게 됐고, 처음으로 최 소피아 수녀가 삼중스님에게 도움을 청했다.

삼중스님은 "수녀님의 이야기가 신문에 실린 후에 만나거나 전화를 하면 질색을 하면서 화내시던 분이 갑자기 '돈'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스님은 유명하니 상패나 신문쪼가리 기사말고 다만 10만원이라는 돈을 마련해주면 어려운 친구들과 사는 집을 짓고 싶다'고 처음으로 도움을 청하더라구요"라면서 "저 역시 벌여놓은 일이 있어서 돈이 필요한 처지였지만 최 소피아 수녀라면 저보다 훨씬 값진 곳에 돈을 쓸 것만 같아서 마침 대한적십자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중간에 다리를 놓아줬다"고 그 당시 일을 설명했다.

삼중 스님도 넉넉한 처지가 아니었지만 참사랑을 실천하는 최 소피아 수녀를 위해 나서게 됐고, 그 일로 두 사람은 화해하게 됐다.

최 소피아 수녀는 삼중 스님의 보이지 않는 도움으로 지난 1994년 성주군 평화의 계곡에 '요셉의 집'을 세우고 현재 7명의 수녀님들과 50여명의 원생들과 함께 단란한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다.

2001년 4월의 봄날, 또 다시 삼중스님과 불교신도들은 참사랑을 실천하는 최 소피아 수녀님과 그 곳에 있는 원생들을 찾아 평화의 계곡을 방문했다. 이 곳에서는 종파를 떠나 사랑이 넘쳐 났으며, 웃음꽃이 피어났다. 수녀님이 손수 스님에게 밥을 떠주고, 요셉의 집 원생들이 찾아온 사람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면서 교리를 떠나 함께 어우러진 자리가 됐다.

아직도 기자와의 만남이나 사진을 찍히는 것을 싫어하시는 최 소피아 수녀님은 "처음에는 깨진 항아리 조각들을 모아 지붕을 얹고 굴을 파서 생활하다 추운 겨울이 다가오자 걱정이더라구요. 그때 삼중 스님이 전화를 했는데 신문에 기사낸 것이 보기 싫어(미워서) 돈을 구해달라고 했지만 설마 믿지 않았다"며 "이제는 따뜻한 방에만 들어가면 삼중스님이 생각나고 오늘 이 자리를 보고 계신 부처님과 예수님 모두가 함께 기뻐하실 것이다"고 환한 미소로 인사말을 통해 말했다.

삼중 스님은 "행사가 끝나고 나서 수녀님을 따로 불러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약이나 사잡수시고 개인적으로 쓰세요'하며 적은 돈을 드렸는데, 웃으면서 받더라구요"라면서 "그래서 이제는 보통 사람들처럼 수녀님도 나이가 들었나보다 생각했는데, 곧 다른 수녀님을 부르더니 제게 받은 돈을 주더라구요. 그런 수녀님의 투명한 마음이 아직도 수녀님을 짝사랑하게 하고 존경과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하나봅니다"고 말했다.

버려진 땅이 아닌 이제는 축복 받은 땅이 된 '요셉의 집'에서 20년만에 만난 삼중 스님과 최 소피아 수녀님의 모습에는 어느새 세월의 무게와 함께 얼굴에 주름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그들이 다시 손을 마주잡으며 웃는 모습에서는 첫사랑을 시작하는 젊은 남녀와 같은 순수함과 아름다움이 배어 나왔다.

덧붙이는 글 | 최소피아 수녀님은 20년전 마더 테레사 수녀님이 한국을 방문하고 기자들과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에 자신보다도 더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지고 봉사활동을 하는 성녀가 있다"고 지칭할 정도로 보이지 않은 참사랑을 전하는 분이다. 

또한 많은 상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았지만 상을 종이쪼가리로 여기는 분이며, '자랑스런 한국인'으로 선정되기도 했고 모 방송국의 '칭찬합시다'의 인물로 추천받으신 분이다. 

60이 넘으신 나이에도 자기 몸을 돌보기보다 불우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더욱 헌신적이신 한국의 성녀라고 칭해도 손색이 없으신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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