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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9일부터 22일까지 인사동 '갤러리 사비나'에서 정복수 화백의 "몸의 공부"가 전시된다.

"몸의 공부"는 말 그대로 "몸의 공부".

몸 속에 진열된 내면 속 욕망, 즉 '권력, 폭력, 교활, 욕정, 성(性)'과의 대화를 말이 아닌 몸으로 하는 것이다.

몸에는 드러나지 않는 욕망이 분명히 존재한다. 어리석은 자에게도 두뇌가 있듯, 얌전한 자에게 폭력적 잠재의식이 있다. 정복수는 내재된 인간의 욕망을 남자의 성기로 표현했다. 성기는 몸 어느 곳에나 있다. 머리에 있으며 가슴에 있다. 식도의 끝자락에 달려있기도 하고 혀에 위치해 있기도 하다. 미끈한 여성의 다리를 따라 가보면 그것은 더 이상 여성의 다리가 아니다. 성의 이분법을 부정하는 그의 그림 속에서 어느 덧 몸은 성기가 되고, 몸은 그의 공부에 필요한 작업도구가 되어 버린다.

그가 그려낸 몸에는 머리와 팔, 다리의 일부분이 없다. 몸은 알몸이다. 알몸의 몸은 속 안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괴상망측한 그림들을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으면 투명과 불투명의 이분법도 사라진다. 망막에 맺히는 상은 이미 욕망이 되고, 눈을 감는 순간 그 욕망은 이미 거세된 뒤다. 조각난 몸을 바라보자니 백색의 욕정, 혹은 검은 교활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내 안에도 그러한 욕망이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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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복수 화백
ⓒ 배을선


그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먼저 그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는 원체 말이 없다. 그를 인터뷰한다고 하면 주변의 화가들이 매니저가 되어주기도 하고, 전시화랑의 큐레이터는 걱정이 되는 듯 초조해하기도 한다. 그의 대답은 길지 않다. 언제나 "예, 그렇지요"라고 끝나버리기 일수다.

정복수가 말이 없는 이유는 그가 입 대신 몸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20여 년간 '몸으로 세상을 보는' 공부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의 그림을 잘 모르는 이들은 "그림이 야하다"고 하지만, 그는 "뭐가 야해요?"라고 되묻는다. 뭐가 야한가. 몸은 세상의 음부와도 소통가능한 화가의 성기(成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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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중인 "몸의 공부"
ⓒ 배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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