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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말 중국에서 귀국한 오지여행가 한비야 씨는 이현주 목사의 시를 접하고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어 이현주 목사의 책 <물과 나눈 이야기>를 읽고 난 후에는 ‘열성팬’이 되어 버렸다.
“그 책을 읽으면 마음이 열리는 것 같아. 개안이 돼. 대개 세상은 인간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잖아. 그런데 이 책 읽으면 '아 사람만 사는 게 아니구나. 생물도 살고 무생물도 사는구나. 까치하고도 얘기하고 빨래줄하고 말하고 그처럼 모든 게 같이 사는 거구나' 하지. '마음을 열면 이런 소리가 들리는구나.' 이게 무척 충격적인 거야.”
‘열성팬’이 ‘스타’를 찾는 일은 당연지사.
한비야 씨는 공주에 사는 이현주 목사를 만나러 하루 여행을 떠났다. 좋은 사람을 알게 되면 그냥 아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꼭 만나러 간다는 한비야 씨가 그렇게 스타를 찾아나선 것이다.
“어떻게 쓰일 것인가에 안달하지 마라”
최근 발행된 <물과 나눈 이야기>는 우리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들과 나눈 이야기를 정리한 책이다. 책상, 의자, 안경, 나비, 그네, 나무젓가락 등등. 그 사물들은 사람의 입장이 아닌 그들의 입장에서 사람에게 말을 건다. 이를 테면 이렇다.
한쪽 줄이 끊어진 그네에게 이 목사는 “한쪽 줄이 끊어지니 다른 한 줄도 소용없게 되었구나?”라고 말을 건다. 그러나 그네는 “그넷줄이라고 해서 반드시 그네를 타는데 쓰여야 한다는 법은 없지 않은가?”하고 반문한다. 한참 대화가 오고가다 결국 이 목사는 그네에게 ‘훈계’를 듣는다.
“어떻게 쓰임을 받을 것인가에 대하여 안달하지 말아라. 너는 지금도 이렇게 쓰여지고 있지 않은가? 너와 나를 통하여 시방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가 누군지, 그것을 생각해 보아라.”
이 글의 진미는 마지막 부분이다.
이처럼 토론하듯 꾸짖듯 가르치듯 배우듯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먹잠자리 한 마리가 늘어진 그네줄에 가벼이 앉는 것이었다. 인간은 스스로 쓸모 있는 인간이 되려 안달하지만, 그네는 그렇게 존재함으로써 먹잠자리에게 앉을자리를 제공하는 것….
“안방에서 건넌방으로 가는 것도 이사라고 하나요?”
이현주 목사가 사는 마을은 계룡산 자락에서 흘러온 물이 개울을 이루는 곳이었다. 밖에서 보기에도 깔끔해 보인 집은 거실 역시 정갈한 맛이 풍겼다. 앉은뱅이 식탁이 놓인 거실은 마당 쪽 벽이 통유리이어서 멀리 산자락을 불러 들였다. 주방과 거실 사이엔 창호문짝이 놓여 자연스레 경계벽 구실을 하면서 고풍스런 맛까지를 더해주었다.
다른 벽의 왼쪽 구석에는 어른 팔뚝만한 부처상이 놓였고 그 위쪽으로 비스듬히 기독교 성화가 걸려 있었는데, 이 사물들은 오른쪽 구석에 놓인 성모마리아상과 함께 조화를 이뤄 이현주 목사의 종교이 폭넓음을 침묵으로 웅변하고 있었다.
언젠가 들었던 한 일화를 떠올렸다. 이현주 목사는 지난 99년 부처님 오신날에 서울시 서초구 정토법당에서 강연을 했다. 부처님 오신 날, 목사가 절에 가다니. 그 ‘기이한’ 일이 있은 후 언젠가 어느 기자가 “기독교에서 불교로 개종할 생각은 없으신가요?”라고 물었단다. 이에 이현주 목사 왈, “안방에서 건넌방으로 가는 것도 이사라고 하나요?”
이현주 목사의 부인이 내온 묵말이로 점심을 했다. 이목사는 물건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의 고충을 말하기도 했다. 호박줄기에게 얘기 한 마디 들으려 별 짓 다했는데 입을 꾹 다물고 있어서 애를 먹었다는 것이다.
“물과 대화를 조금 해보면서 얼마나 내가 사람으로서 편견 속에서 살아 왔는지를 느꼈어요. 어릴 때부터 사회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되라고 맨날 귀에 딱지 않도록 들었잖아요. 교회서도 축복하기를 너는 이 사회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라고. 그게 듣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가 될 거라 생각해요. 사물이 늘 얘기하는 게 쓸모 있고 없는 걸 왜 네가 판단하냐고 하잖아요. 우리가 그런 종류의 잘못된 가르침 때문에 쓸데없이 스트레스를 받는 거죠.”
‘내가 거짓말을 수미산처럼 많이 했다’
이어지는 두어 시간의 대화… 이 목사가 던지듯 흘리듯 쏟아놓듯 안겨주듯 내 놓은 말들을 요약한다.
“사랑과 자유는 같은 내용의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해요. 사랑은 완벽한 자유의 모양을 가지고 있죠. 그러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붙잡는다면 참다운 사랑과 다르다고 봐요. 언젠가 영화 은행나무침대를 보고 글을 썼어요. 그때 ‘참 명편이다, 정말 멋있다. 이게 국민들에게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어떤 식으로 보여주느냐면 ‘여러분 이건 사랑이 아닙니다.’ 천년동안의 그런 집착을 사랑이라 착각하니까. 그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아 나는 저런 남자가 없나. 그런 사랑 한 번 해보고 싶다’그래요. 생각만 해도 끔찍하잖아요. 천년동안 따라다닌다는 게.”
“언젠가 강원도의 어느 일간지 기자가 장일순 선생의 노자이야기를 한 꼭지 쓸라고 하는데 전화 인터뷰하재. ‘장선생의 노자 해석을 어떻게 평가하느냐’ 그래. ‘그것은 내 할 수 없다. 나는 그분의 노자 해석을 평가할 만한 사람이 못된다. 내가 제잔데. 제자가 어떻게 스승을 평가하냐. 그럼 선생이 아니지. 그런 의미에서 평가 못한다. 그러나 장 선생이 노자에 대해 해석한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대답하겠다.’ 그랬더니 ‘어떻게 생각하냐’고 해. 왜냐면 생각은 할 수 있거든. 내가 금강산 가면 금강산을 본 소감이 있을 것 아니오. ‘금강산이 이렇더라’고 말할 수는 있지. ‘금강산이 이렇다’고 얘기할 수는 없어도…. ”
“‘사람이 남의 말을 듣거나 할 때 귀로 듣고 눈으로 읽는 방법이 있고, 몸으로 듣거나 보려고 하는 방법이 있다. 장선생의 경우는 노자를 몸으로 읽으려고 했다.’ 그렇게 쉽게 얘기했는데 ‘거 뭔 소리요’ 그래. ‘나는 요리책을 볼 때는 눈요기로 본다. 그러나 집사람이 요리책을 볼 때는 눈요기가 아니라 직접 부엌에서 만들어 보는 거죠. 그런 차이다.’ ‘노자 선생이 뭔 얘길 하나 알아보자, 뭔 뜻이냐면 이런 뜻이다’하고 주고받는 것으로 끝낸다면 그건 내가 요리책을 보는 것과 같은 것이지만. 장선생은 ‘노자가 물처럼 산다’고 그랬다면 그처럼 살려고 했던 것이다. 그랬지.”
“삶이 가짜인데 진짜라고 착각하니까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힘들게 살아요. 인생 자체가 게임, 놀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인도사람들이 그렇게 하잖아. 삶이라는 게임이라고 생각하고 즐길 수 있으면 좋겠는데 게임인 줄 모르고 그게 무슨 목숨 걸고 하는 건 줄 알고. 가짜가 맞아요. ‘내가 진짜야’하는 것만큼 가짜가 없거든. 내가 거짓말 한 마디 하는데 사람들이 웃어버렸다면 그것은 거짓말인 줄 아는 거예요. 다 아는 거짓말은 상처도 안주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다들 고개 끄덕거리며 넘어가게 하는 거짓말이 큰일 나죠. 그런 거짓말이 사람을 아프게 하지.”
“그래서 옛날부터 ‘나 깨달았다’하면 다 가짜라고 했지. 정말 깨달은 사람은 깨달은 줄 모른다잖아. 성철스님이 입적할 때 ‘내가 거짓말을 수미산처럼 많이 했다’ 그랬는데 그 얘기가 와 닿아요. 입 뻥긋 했으면 거짓말이에요. 내가 거짓말을 그렇게 많이 했던가…. 그걸 모르고 또 어떤 목사는 ‘이 사람이 죽을 때 회개하누먼’그래.”
“왼손이 하는 일을 왼손도 모르게 하라”
애초 이날 이현주 목사는 막내딸과 함께 영화 ‘천국의 아이들’을 보러 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얘기가 자연스럽게 길어지면서 영화 관람은 포기되었다. 이에 한비야 님이 추천작을 내놓았다.
한비야 :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전 재미있게 봤어요. 직업으로서 하는 일을 그렇게 즐기면서 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 인생인가….”
이현주 : 그렇잖아도 ‘바람의 딸, 우리땅에 서다’를 보면서 ‘세상에 행복한 사람 또 하나 있구나’했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일하고 그걸로 유명해지고 그걸로 돈도 벌고 얼마나 좋아요. 전생이 많은 일을 하셨으니까.
한비야 : 후생에 갚아야 할 것 같아요 가불해 쓰는 것 같아서.
이현주 : 지금 이 행복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많은 사람에게 나눠주면 좋은 거죠. 그러면 후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죠. 대체적으로 전생에 복을 많이 쌓으면 이생에 복을 누린다고 하는데, 제일 잘 누리는 게 이게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 나눈다는 생각도 없겠죠. 원래 내 것이 아니니까. 옛 어른들이 그런 얘길 했어요. 제 얘기는 아니고.
한비야 : 어른들의 얘기를, 목사님 입을 빌어서, 제가, 들었습니다.
이현주 : 예수님이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고 그랬는데, 그 차원도 모자라죠. 한 걸음 더 나가 왼손이 하는 걸 오른손도 모르고 왼손도 몰라야 하죠. 우리가 나쁜 짓은 그렇게 잘 해요. 속이면서도 자기가 속이는지 모르죠. 역으로 착한 일은 자꾸 기억하죠. 나쁜 일을 하는지도 모르게 하는 게 경험이 많이 쌓여서 그런 것 아닌가. 그래서 좋은 일도 그러지 않겠는가. 자꾸 하다보면 하는 줄 모르니까. 좋은 일을 자꾸 해서 모르게 해야죠.
한비야 : 연습을 해야 하는 건가요?
이현주 : 아주 많이 연습을 하는 겁니다. 넘어지고 실패하거든요. 실수하고 넘어졌을 때는 대개 자기 자신에게 실망하죠. 그래서 포기하든지 아니면 시작하기 전보다 더 나빠지든지. 그런데 넘어지고 잘못되는 것을 태연하게 받아들여야지. 그것을 일깨워주는 선생이 있어서 격려도 있고 나무라기도 해야 하는데 혼자 하려면 힘들죠.
두어 시간의 만남이 끝나고 일어설 무렵, 긴급난민구호 홍보활동을 계획중인 한씨의 계획을 들은 이목사는 다시 한 마디 남겼다.
“바람의 딸이니까요. 바람은 자유롭게 다니니까. 그런데 바람이 못 가는 데가 한 군데 있죠. 인간이 밀폐한 곳엔 바람이 갈 수 없죠…. 하지만 진공 상태에서는 가능하죠.”
긴급난민구호 일에 있어서, 혹은 한비야의 남은 삶에 있어서 ‘인간이 밀폐한 곳’은 어떤 곳이며, ‘진공상태’로 만드는 일은 어떤 게 있을는지는 다시 시간이 흐른 후 물어볼 일이다.
이현주 목사를 만나고 올라오는 길, 한비야 씨는 첫 만남의 느낌을 다음과 같이 내놓았다.
“목사님을 만나고 받은 생각, 평가가 아니라. 원래 복이 많은 받아 높은 영혼의 소유자로 태어났다기보다는 부단히 노력을 하셔서 오늘날의 모습이 되고, 내일이 오늘보다 낫고 모레가 내일보다 나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러기 때문에 나도 연습하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덧붙이는 글 | 이현주 목사는 6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돼 동화 작가로 등단했습니다. 이 목사는 최근 10여년간 절필했다가 지난해부터 글쓰기를 시작했다. 번역문학가이기도 하며 동서양과 고금을 아우르는 글들을 쓰고 있다.
91년 무위당 장일순 선생이 암으로 원주기독병원에 입원했을 때 이현주 목사가 찾아가 노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이를 풀어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이야기’란 책을 엮었다. 필명은 이아무개.
한비야 씨는 6년간 전세계 65개국을 다니며 쓴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을 통해 일반인에게 알려진 오지여행가입니다. 네티즌이 뽑은 인기인 1위, 닮고 싶은 여성 2위, 여성특위가 뽑은 신지식인 5인 중 한 명으로 뽑힐 만큼 많은 대중성을 가진 이입니다. 최근엔 국제긴급구호 홍보요원으로 활동하기 위한 준비 작업에 한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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