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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치료를 위해 한 달에 한 번은 서울에 가셔야 했던 아버지. 터미널에서 병원까지 지하철을 타면 교통체증 걱정 없이 15분이면 갈 수 있지만 몸이 불편한 아버지에게 지하철 정류장까지의 계단 길은 감히 엄두를 낼 수 없는 커다란 장애물이었다. 결국 비싼 요금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모범택시를 탈 수밖에 없다며 답답해 하시곤 했는데...

서울의 지하철은 8호선까지 완성되었고 이제는 공항을 연결하는 9호선 건설을 추진 중일 정도로 세계적인 규모를 자랑하지만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나 노약자에게는 여전히 그림의 떡일 뿐이다.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 등 장애인을 배려한 편의시설이 유럽의 대도시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대형 열차 위주로 노선을 건설하다 보니 점점 땅 속 깊숙히 들어가게 돼 노약자에게 불편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가 있었다.

장애인에게는 장애물에 불과한 서울의 지하철에 비해 샌프란시스코의 경전철 시스템인 MUNI는 독특한 설계로 눈길을 끈다. MUNI는 최대 4대까지 차량을 연결해 운행하는 지상/지하 겸용 경전철이다. 특이한 것은 각 열차의 중간 지점이 마치 아코디언처럼 상하좌우로 접히도록 설계되었다는 것. 이런 설계 덕에 지상구간에서는 어지간한 오르막도 오를 수 있고 사거리에서도 좌회전과 우회전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

따라서 마치 마을버스처럼 주택가 깊은 곳까지 전철이 진입할 수 있어 노약자나 장애인이 굳이 땅 밑까지 내려가지 않아도 정류장의 휠체어 램프를 통해 MUNI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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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F MUNI
MUNI는 주택가에서는 버스처럼 이곳 저곳 정차하며 저속으로 운행을 하지만 일단 지하구간이나 전용 철도에 들어서면 승하차용 계단을 접어넣어 고속 모드로 전환한 뒤 서울의 지하철이나 다름 없는 빠른 속도로 달린다. 결국 MUNI를 타면 버스나 지하철을 갈아타는 불편 없이 집 앞에서 업무시설이 밀집한 도심까지 약 20~30분이면 한 번에 갈 수 있는 것.

이미 대형 열차 중심으로 짜여진 서울의 지하철을 이제 와서 경전철로 바꾸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지방의 중소도시나 지하철이 닿지 않는 서울의 변두리 지역에는 MUNI같은 경전철을 도입하는 것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아직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이야 지하철을 타며 아무 불편도 못 느끼겠지만 한국도 이제 점점 노령사회로 접어들면서 언젠가 노인 인구가 청/장년 인구를 넘어서는 때가 분명히 온다.

그 때를 대비해서라도 장애인과 노약자가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 체계를 서서히 준비해야겠다. 당장 경전철을 건설할 수 없다면 런던의 지하철 처럼 지상에서 승강장을 바로 연결하는 엘리베이터라도 꼼꼼히 설치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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