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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이 누구길래

철학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종전까지만 해도 상당수 평민들은 철학을 점이나 관상을 보는 철학관과 동일시했다. 그러나 도올 김용옥 전 고려대 교수의 철학강의가 EBS-KBS 1TV 전파를 타고 안방으로 전달되자 시청자들은 듣도 보도 못했던 철학에 귀기울이기 시작했다.

역시 방송의 위력은 대단한 것 같다. 철학관련 기사가 신문에 나더라도 고리타분하게 여겨 그냥 스쳐지나 가던 독자도 매주 금요일밤 프라임 타임 9시 뉴스가 끝나면 두루마기에 까까머리를 하고 어김없이 KBS에 등장하는 독특한 인물에 시선을 집중한다.

도대체 도올이 어떤 사람이길래 공영방송에까지 나와 저렇게 목소리를 높일까. 별로 듣기 좋은 목소리는 아닌데... 그러면서 오늘은 도올이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스레 경청한다.

도올은 강의를 재미있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려운 외국어로 돼 있는 원전을 한국어로 쉽게 풀어 전달한다. 이것은 EBS 강의에 이어 장기간 도올강의가 인기를 끄는 비결이요, 도올의 탁월한 능력이다.

'진주가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논어에 아무리 좋은 내용이 있더라도 나의 철학적 언어로 이해되지 않으면 논어는 나에겐 고전(古典)이 아니라 '고전'(枯典:고사된 원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도올은 논어 '학이편'부터 기존 문구 위주의 주석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해석을 제시했다. 이는 한문 해석에 대한 깊은 지식이나 논어와 유교를 종합적으로 꿰뚫어 볼 수 있는 안목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철학이 어려운 이유

그러나 서점 등에 나와 있는 철학 서적을 한번 보자. 초보자는 물론 필자같이 철학을 전공한 사람도 무슨 말인지 쉽게 이해하기가 어려운 서적이 많다. 물론 철학자체의 애매하고 복잡한 논리적 속성 때문에 철학적 소양없이 철학을 이해하기란 힘들다.

그러나 저자 자신도 잘 모르는 황당한 철학적 내용을 저술했다고 생각해 보자. 독자는 엉터리 서적인 줄도 모르고 아무리 정독해도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몰라 결국 책을 덮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철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구나하고 철학과 담을 쌓을 것이 뻔하다.

동-서양의 아무리 어려운 철학이라도 한국적 문화양식으로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면 그 철학을 왜 쉽게 전달하지 못할까. 그렇지 못하는 것은 전달자가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언어와 문화가 완전히 다른 남의 철학을 쉬운 한국어로 표현할 수 없는 언어적 한계, 이 두 가지 중에 하나이다.

번역된 철학서적일 경우 이해가 더욱 어렵다. 외국어로 된 철학원전이나 주석서는 대다수 과학서적처럼 외국어 단어와 문법만 가지고 메시지를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같은 외국 철학서적을 문법과 자구에만 치중한 나머지 정작 저자의 의도나 철학적 의미를 간과한다면 차라리 번역하지 않는 게 나을 것이다.

그리고 국내 출판사들도 문제가 있다. 일부 번역서의 경우 방대한 철학원서를 대학원생들이 나눠 제멋대로 번역한 것인 줄도 모르고 그 대학 교수를 역자로 바꿔 출판되기도 한다. 필자는 K대학에서 원서강의를 들으면서 하도 번역이 이상해서 그 책 번역자인 교수에게 따져 그 교수에게 "실은 내가 번역한 게 아니고 대학원생들이 번역해서 그렇다"고 실토를 받은 적이 있다.

철학과 문학

필자는 단어와 문구에 상징적 의미와 비약이 숨어있는 문학이나 철학 서적은 적어도 그 방면에 정통한 권위 있는 학자만이 번역할 자격이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보자. '~in danger'란 문구는 의학이나 과학 원서의 경우 사전에 나오는대로 '위험(위독)한 상태에'라고 단순히 번역하면 되지만 문학에서는 때에 따라 '사랑에 빠져'라는 식으로 은유적 해석을 해야 독자들이 어려운 작품을 쉽게 간파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상상력의 산물인 문학이 애매모호한 은유와 상징으로 이뤄져 그래도 앞뒤 논리가 분명한 철학(필자는 철학을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자유의 논리'로 부르고 싶다)보다 오히려 난삽할지 모르겠다.

좌우간 철학과 문학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니이체의 무신론적 실존철학을 웅변처럼 말해주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독문학 서적으로도 널리 읽힌다. 필자가 보기에 "神(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니이체 이상으로 신을 배격한 공자의 논어도 마찬가지로 대학교 철학과는 물론 중어중문학과에서도 배운다.

논어는 예(藝)와 악(樂) 등을 바탕으로 총체적 유교의 '지식'과 동양철학적 '지혜'가 없으면 누구도 완벽히 해독할 수 없는 고전이다. 왜냐하면 철학은 수학공식처럼 외워서 되는 '지식'의 학문(science)이 아니고 지식을 초월하는 '지혜'의 학문(philosophy)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식은 남에게 빌려올 수 있지만 지혜는 절대로 남의 것을 모방하거나 차용할 수 없는 스스로의 깨달음(覺:불교의 부처는 覺者라는 뜻이다)이다.

동경-대만대학과 하버드대학에서 가혹하리 만큼 외국어 원전 강독 훈련을 받은 도올은 KBS 논어강의(도올의 논어이야기)에서 번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고전 가운데 우리말로 제대로 번역된 서적 하나 없는 것이 우리 학문의 현주소"라며 "나는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가 봐도 이해를 쉽게 할 수 있는 완벽한 번역서를 내는 게 꿈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이를 수행하는 번역가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논어에 대한 정확한 번역, 즉 공자가 말한 메시지를 그대로 전하는 것이 '도올이야기'의 목적이라고 했다. 요컨대 논어의 완벽한 번역과 주석이 논어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함께 공자의 의도를 그대로 전달될 수 있게 만든다는 게 도올 이야기의 핵심이다.  

이교수 '가장 쓰기 싫은 책' 왜 저술했나

최근 출판된 '도올 김용옥의 일본 베끼기'의 공동저자인 이기동 성균관대 교수 등 도올 비판자들은 이같은 '도올의 논어이야기'를 제대로 못 알아 들은 것 같다. 이교수는 이 저서에서 '도올 논어' 서문인 '공자의 생애와 사상'에 소개된 "공자가 무당의 아들이었다"는 내용(이는 KBS 도올 논어강의에서도 밝힘)은 일본의 시라카와 시즈카가 쓴 '공자전'을 베낀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도올 논어' 곳곳에 일본 에도(江戶)시대 고학(古學)의 대표 학자인 오기우 소라이 설에 입각한 해석이 있다고 이교수는 밝혔다.

그러나 도올은 KBS 논의강의시 난해한 문장이 나오면 언제나 주자 등의 해석은 이러한데 나는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고 분명히 밝혔다. 특히 '도올 논어' 본문에는 시라카와의 '공자전'이나 오기우의 '논어징'(論語徵) 등 주석서들을 참고했음을 솔직히 밝히고 있다.

따라서 이교수가 도올이 일본의 공자 설명을 베꼈다고 비판한 것은 일방적인 매도이고 '아전인수'(我田引水:제논에 물대기)식 자기공격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이교수가 '도올 김용옥의 일본 베끼기' 머리말에서 "가장 쓰기 싫은 책"이라고 밝힌 대로 차라리 "이 책을 쓰지 않는 게 더 좋을 뻔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도올에게 남의 책을 베꼈다고 매도당하는 것이 남의 책을 베끼기보다 더 큰 모욕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올은 자기에게 비난과 비판이 쏟아져도 '똥개는 짖어도 태양은 떠오른다'는 자세로 묵묵히 학자적 권위를 지켰다. 한번씩 결정적으로 격분하기는 했지만... 필자는 도올 예찬론자도 도올 신봉자도 아니다. 다만 무수한 세월을 학문에 파묻혀 보내면서 돈이 되지 않는 철학을 처절하게 공부하고도 교수직을 그만두고 후학 양성과 끊임없는 자기변혁에 몰두하는 모습이 존경스럽고 멋있을 뿐이다.

누가 감히 내 해석을 운운하는가

독일의 염세주의 철학자로 알려진 쇼펜하우어는 남의 사상의 일부분을 들춰 내어 잘못됐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은 막상 그 사상의 전체 체계는 설명하지는 못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남의 사상 전체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일부 논리가 잘못된 것처럼 설득력 있게 떠들어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계속 강조하다보면 비판자는 원래 사상가보다 더 똑똑하게 보일 수 있다.

성균관대 이교수의 '도올 일본베끼기'나 '도올의 논어이야기'가 공자사상의 진수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 서지문 고려대 교수 등의 쏟아지는 도올비판은 하나같이 '내가 도올보다 한수 위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물론 학문은 활발한 토론과 비판이 있어야 발전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비판을 하려면 적어도 상대의 지식수준 이상이 될 때 상대를 정확히 비판할 자격이 주어진다.우리는 학문뿐만 아니라 정치나 가까운 일상사에서도 이같이 잘못된 비판을 가하기 쉽다. 자기보다 훌륭해 보이는 상대를 죽이기 위해 약점을 억지로 도려내는 풍토는 야만인의 문화다.

도올 선생의 한문해석이 도올 말대로 "30~40년간 피눈물 흘려가며 쌓은 실력"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한국에서 누가 감히 도올의 한문해석을 두고 운운"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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