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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와 관련한 우리나라의 언론 보도 중에 반드시 들어가는 문구가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극심한 교통체증'이나 '시민의 불편' 따위가 들어간 문구이다. 이것은 마치 시위관련 기사의 불문율처럼 되어버렸다.

이번 제 111회 노동절 시위보도에도 이런 원칙(?)은 깨어지지 않았다. 거의 모든 언론매체들의 기사 서두나 말미에 이런 문구가 들어간 것이다. 물론 이것은 논조와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경향신문) "… 시위에 따른 교통통제로 서울 도심은 오후 들어 심한 교통체증을 빚었으며 도심으로 진출하려는 시위대와 이를 저지하려는 경찰 사이에 곳곳에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

(동아일보) "… 이날 노동단체의 가두시위로 인해 서울 도심 곳곳에서는 극심한 교통정체가 빚어졌다."

(조선일보) "… 한편 이날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집회와 행진으로 서울도심 교통이 극심한 혼잡을 빚었다."

(중앙일보) "… 이날 양대 노총의 집회와 행진으로 종로, 을지로, 동대문 등 도심 교통이 큰 혼잡을 빚었다."

(한국일보) "… 한편 이날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노동계 집회와 부처님 오신 날 연등축제 등이 잇따라 열려 서울 종로 등 도심일대 교통이 통제되는 바람에 주요 간선도로에서 차량 정체현상이 빚어지는 등 시민의 불편이 극심했다."

(한겨레) "… 이날 양대 노총의 도심집회와 거리행진으로 종로와 시청 일대와 서울역 주변 등이 심한 교통체증을 빚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많이 순화된 문구이다. 보통 집회나 시위 관련 기사는 사진으로 처리하거나 집회의 내용과 교통불편을 호소하는 시민들의 멘트가 비슷한 비중으로 다루어지는 게 관행처럼 굳어진 게 현실이다. "어디 어디 시위, 도심 교통마비", 혹은 "교통대란", "극심한 도심 혼란" 등등의 제목을 뽑지 않은 것만도 천만 다행이다.

이러한 현상은 과거 집회나 시위에 대해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사회질서를 교란하는 위법행위로 인식하는 경향의 연장선인 것 같다. 내용에는 관심을 두지 않은 채 형식과 현상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는 전형적인 '물타기' 보도이다.

집회나 시위에 교통체증은 당연한 것이다. 누구나 시위나 집회가 벌어진다는 소식을 들으면 차를 돌리거나 우회하기 마련이다. 이미 '시위'나 '집회'라는 단어 속에는 거리행진이나 대중운집이 떠오르기 때문에 '교통체증'이나 '혼잡'이 당연하게 연상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론은 왜 이처럼 당연한 원리나 현상을 빠지지 않고 보도하는 것일까? 시민의 불편을 먼저 생각하는 친절한 배려 때문일까. 물론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만약 그런 배려가 있었다면, 시위 전날에 다음날 어떠 어떠한 집회가 예상되니 교통수단은 전철을 이용하라든지 다른 길로 우회하라든지 하는 내용을 집회 예고 기사에 덧붙혔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일정한 사회적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형식적, 절차적 민주주의도 그렇거니와 참여민주주의는 더 더욱 그렇다. 누구나 자신의 요구와 의지를 형식과 절차를 거쳐 직접 참여하는 과정을 거치며 요구하는 것이고, 이 과정에는 사회적 불편이 따르게 마련이고 또 그런 불편은 사회적으로 반드시 배려해야 할 문제이다.

'시위'와 '교통체증' 문제는 소위 절대적인 모순관계이다. 서로가 양립할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이다. 때문에 교통체증이 우려되니 집회나 시위를 하지 말라는 주장은 불편하니까 민주주의를 하지 말라는 주장과 같다. 나의 불편에 타인의 권리까지 뭉개버리는 '극단적인' 이기주의를 언론이 더 더욱 '파쇼적인' 논조로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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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대 고양시의원을 지냈으며, 현재 <환경운동연합> 중앙사무처 전략홍보국장으로 일하다, <희망제작소> 뿌리센터장을 거쳐, 2010년 7월부터 경기도의원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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