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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이 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새로움? 창조? 혹은 충격?
그렇다면 현대인들이 미술을 통해 추구하고 싶어하는 것은 무엇일까.

1914년 마르쉘 뒤샹이 '샘'이라는 레디메이드 변기를 앙데팡당전에 발표한 이래 현대미술이 걸어온 길은 '비예술적인 것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다양한 관점의 세계.

장르는 다양해지고 한편으로는 파괴되었다. 그러나 미술의 대중화를 주장하면서도 정작 작가 중심적인 해석을 탈피하지 못한 현대미술은 20세기와 21세기를 거치면서 남이 하지 않은 것, 엽기적인 것 등을 추구해야 하는 새로움과 충격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적인 것, 재래적인 기법을 떠나 끊임없이 새로운 기법과 표현을 생산해야 하는 현대미술과 작가들은 스스로 일반 대중과의 이해 및 소통의 기회를 줄여가고 있다. 특히 디지털이라는 시대에 접어든 만큼 사람과 사람 사이, 시간과 시간 사이의 거리는 더욱 멀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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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
ⓒ 이수동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오히려 디지털 사고로 생활해야 하는 현대인들의 삭막한 가슴에 아련히 남아 있는 것은 아날로그의 감성이 아닐까.

이런 의미에서 인사동의 갤러리 사비나에서는 "향수 - 디지털적 사고에서 아날로그적 감성으로"전을 5월 5일부터 20일까지 전시한다. 갤러리 사비나에서는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접어든 현 시점에서 현대미술이 일반 대중 미술에 대한 갈증을 해소시키는 데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를 한번쯤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는 판단 아래 전시회를 기획했다.

이번 전시는 2000년 9월부터 2001년 3월까지 약 7개월 동안 전시장의 관람객(80%)과 인사동의 애호가(20%) 1000명을 대상으로 앙케이트를 받아 그 통계로 준비되었다. 결과를 보면 앙케이트에 참여한 다수의 사람들(46%)은 '고향, 풍경, 자연, 산수, 바다, 하늘, 어머니, 그리움, 사랑, 인간애' 등과 같은 향수를 느끼게 하고 평온한 마음을 가지게 하는 내용의 전시를 보고싶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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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화로
ⓒ 김봉준
이번 조사에 참여한 연령층으로는 10대에서 70대까지의 고른 층이었으며, 젊은 층을 대변하는 10대와 20대의 사람들이 고향이나 인간애에 대한 주제를 더 선호하고 있다는 결과가 주목할 만하다. 이 결과는 디지털 사고에 노출된 사람일수록 아날로그적 감성과 옛것에 대한 향수를 더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앙케이트 조사 결과를 토대로 이루어진 이번 전시에서는 현대인들의 심적 공허함을 자극하여 만족되지 않는 그리움의 향수를 예술작품을 통해 위안을 주고자 하는데 화두를 맞추어 시인 정지용의 시 '향수'를 부제로 끌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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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아란 하늘
ⓒ 오순환
시 '향수'는 전시장의 분위기를 다큐멘터리적 시점으로 형상화시켜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게 한다. '향수'에 등장하는 '넓은 벌, 실개천, 황소, 질화로, 뷔인 밭, 늙으신 아버지, 흙, 파아란 하늘 빛, 풀섶 이슬, 바다, 어린 누의....' 등의 소재들은 각 16인의 작가들에게 의뢰하여 시의 소재와 일치하는 작품으로 제작되었다.

관객들은 전시장에 들어오면서 옛 기억을 자극하는 감미로운 음악을 들으며, 정지용의 시 '향수'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16점의 작품들을 통해 내재되어 있던 그리움을 표출하고 사라져가는 이미지들을 떠올려보며 따뜻한 인간애를 느껴볼 수 있다.

일단, 건조한 디지털의 도시에서 촉촉한 아날로그적 향수에 젖어본다면, 그것이 차마 꿈엔들 잊힐까.

덧붙이는 글 | 향수(鄕愁)

-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에서 자란 내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의
아무렇지도 않고 여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안해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줏던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 두꺼운 글씨로 된 16개의 소재는 이번 전시회 작품의 소재로 기획되어 만들어졌음)

# 전시안내
- 일시 : 5월5일(토) ~ 20일(일)
- 장소 : 인사동 갤러리 사비나(수도약국 골목으로 10미터 안쪽으로), 736-43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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