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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가에서는 악법도 지켜야하는가를 놓고 논란이 많다. 자기당 의원을 보호하기 위해 국회를 의도적으로 연기시키는 방탄국회, 날치기 통과, 민주당 의원의 기권으로 무산된 총리해임안 등이 '필요악법'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한나라당 안상수 의원은 지난달 26일 "특검제도 들어가지 않는 부패방지법 같은 알맹이 없는 '악법'에 우리가 왜 들러리를 서야 하느냐"며 의총에서 따졌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도 지난 2월 국회에서 열린 총재단 및 상임위 위원장-간사단 연석회의에서 "여권이 강한 정부,강력한 여당을 말하면서 '법과 원칙'이란 말을 함부로 쓰고 있는데 정의로운 법만이 법이며, 정의롭지 않은 법은 이미 법이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를 두고 각중앙언론들은 칼럼과 보도기사를 통해 "이 총재가 대법관 출신답게 나름의 주석을 달았다"며 "이 총재의 이같은 해석은 '악법도 법이다'고한 소크라테스의 말을 뒤집은 것이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란 말을 직접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 지금까지 교과서에서 그렇게 배워 왔고 언론-학계 등에서도 하나같이 이를 당연시해 온 것을 단번에 뒤집게 됐다.

서강대 정치 사상 전공의 강정인 교수는 한국정치학회 연례 학술 발표회에서 발표한 '소크라테스, 악법도 법인가?'라는 논문에서 이 사실을 오래전 이미 밝혔다. 그는 '변명', '크리톤' 등 플라톤이 쓴 '소크라테스의 대화' 원전 어디에도 소크라테스가 탈출을 거부한 내용은 있어도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한 적은 없다고 지적했다.

소크라테스는 직접 저술한 책이 한권도 없다. 모두 제자인 플라톤이 제자들과 대화를 나눈 내용을 체계적으로 저술했다. 제자는 원래 스승을 존경하는 마음에서 스승을 미화시키기 마련이다. 그리고 스승의 사상이 위대하게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좀더 발전된 상황에서 논리를 전개하기 쉽다. 필자는 강 교수의 주장대로 플라톤의 소크라테스 원전에 "악법도 법이다"고 말한 구석을 찾을 수 없다면 이는 침소봉대됐다고 본다.

소크라테스가 4대 성인인 것은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을 현혹시켜 나라를 망치게 했다는 이유로 투옥, 기원전 399년 사형선고를 받은 재판정에서 독약을 먹고 70세 생애를 마쳤다.재판정에서 서기는 "소크라테스는 시민들이 믿는 신들을 믿지 않은 죄와 젊은이들을 타락시킨 죄를 범해 사형을 제안한다"고 죄목을 낭독했다. 마치 예수가 지도층 유대인들의 신을 믿지 않고 자신이 곧 신이라고 해 결국 십자가 사형을 당한 것처럼 소크라테스도 독약 앞에 비굴하지 않고 이를 기꺼이 받아 예수, 석가, 공자 등과 함께 세계 4대 성인으로 길이 남게 됐다.

그러면 소크라테스가 따른 신, '다이모니온'(daimonion)은 어떤 신일까. 다이모니온은 '다이몬과 같은 것'이라는 뜻이며 다른 대화편에서 말하는 '다이몬의 신호'와 같다. 소크라테스는 태도 결정에서 이 신호, 즉 계시를 항상 받아 행동을 결정했다. 다이모니온의 계시는 대개 금지의 형태로 나타나는 내적인 신의 소리, 마음속으로부터의 경고를 의미한다.

소크라테스는 감옥에 있을 때 제자들이 도망가기를 권했고 도망갈 수도 있었지만 도망가서는 안된다는 다이모니온의 계시를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독약을 마시기전 그는 법정에서 "진리에 대한 정열이 인간에게는 최고의 법규"라고 당당히 말하고 그 쓰디쓴 잔을 받아 마셨다. 누구나 죽음앞에서 떨기 마련이다. 이는 인간의 본능이다. 예수도 십자가를 지기전 마지막 기도에서 "주여 할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 돌려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기독교에서는 이를 두고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온 예수의 인성을 솔직히 드러낸 기도라고 해석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도 예수처럼 인간인 이상 독배(죽음) 앞에서 불안이 엄습해 왔을 것이다. 그러나 독배를 마주하고도 그는 다이모니온의 계시로 이를 물리쳤을 것이다. 독배를 피하지 말라는 '금기의 신호'로 말이다. 소크라테스는 감옥에서 탈출, 독배를 피할 수도 있었지만 다이모니온이란 신의 세계에서 살았기에 독배, 죽음 등을 초월할 수 있었다.

평소 다이모니온과 교류하면서 그는 이승에 살면서도 이승을 넘어선 '죽음연습'을 철저히 해왔다고나 할까. 평소 죽는 연습을 많이 해온 소크라테스가 독배앞에서 삶의 미련을 갖고 추하게 변명하지 않고 기꺼이 그 잔을 마실 수 있었다. 그에게 이 잔은 이승에서 독배지만 다이모니온 세계에서는 영원을 사는 '부활의 잔'일런지 모른다.

그래서 그는 독배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의 이같은 실존적 삶이 플라톤을 비롯한 제자들 사이에 얼마나 강하게 어필됐겠는가. 과연 우리의 스승이다. 소크라테스 철학을 이해하는 제자들이 보기에 그가 젊은이들을 현혹하는 행위는 절대로 하지 않았는데 스승이 잘못된 악법으로 억울하게 독배를 마시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게 있을 수 없는 모순으로 다가왔다.

후세에 이같은 상황을 두고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한 것처럼 잘못 전해져 내려왔다고 보여진다. 하나 분명한 것은 소크라테스에 관한 저술 모두고 그 자신이 직접 쓴 것은 하나도 없고 제자인 플라톤이 모두 저술했기에 이같은 오해는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악법의 굴복이 아니라 지혜사랑의 잔을 든 것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고 말했기 때문에 유명해 진 것은 아니다. "너 자신을 알라"는 그의 말도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것 때문에 소크라테스가 철학사에서 인정받는 게 아니다. 그는 죽음앞에 비굴하지 않고 떳떳하게 잔을 받았기에 세계 4대 성인에 포함됐다.

우리는 어릴때 읽은 소크라테스 위인전과 도덕-사회 교과서, 언론 보도 등을 통해 그가 사형 선고를 받은 후 친구 크리톤으로부터 탈출을 권유받았지만 "악법도 법이다"라며 독배를 든 것으로 하나같이 잘못 알고 있다.

필자도 중학교 시절 "악법도 법이다"란 내용으로 수업을 받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악법인데 왜 우리가 지켜야하지. 법이란 모든 사람이 옳다고 인정하는 보편적 정당성을 지녀야지 도대체 이건 잘못됐다고 생각해 왔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 철학개론을 배우면서 다시 소크라테스의 이 말을 되새겨 보았다.

"악법도 법이다"는 "비록 법이 잘못 됐더라도 정당한 절차를 거쳐 개정되기 전까지 일단 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판단했다. 잘못된 악법이면 고쳐야한다. 필자는 이런 악법을 지킬 수 없고 이 법이 개정되기까지 악법과 싸워야한다고 결심하고 사회운동에 동참했다. 악법을 보고 침묵하는 것은 이를 방조하는 행위인 만큼 악법을 주창한 무리들과 똑같은 '악법유지' 책임이 있기에 말이다.

그러나 서강대 강 교수는 소크라테스가 죽음을 택한 이유를 다른 데서 찾고 있다. '변명'이란 책은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법관들이 철학을 포기하면 석방해 주겠다고 회유했으나 "지혜를 사랑하고 덕을 추구하며 이를 아테네 시민들에게 깨우치는 철학적 임무는 신이 내린 명령이기 때문에 철학을포기하느니 차라리 죽겠다"라고 말한 것으로 적고 있다.

즉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를 모범적으로 보여 주기 위해 독배를 기꺼기 마신 게 아니라 지혜를 사랑(철학)하라는 다이모니온의 계시를 받고 죽은 것으로 봐야한다. 이는 소크라테스 철학이 악법이든 정당한 법이든 현행법보다 위에 있는 다이모니온의 명령에 따라 이 법에 대한 복종을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 그는 "악법도 법이다"는 말과는 차원이 다른 세계에서 독배를 마신 것이다.

당대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죽음을 당해야 했던 위대한 소크라테스는 "비록 실수가 있을지라도 법은 소중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악법도 법이다"것을 일깨우기 위해 부당한 판결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철학적 순수성을 지키고 다이모니온의 명령에 충실하기 위해 '순교'를 선택했다.

이 시대에 소크라테스는?-'악법'의 정치적 이용은 이제 그만

강 교수는 중학교 도덕 교과서에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기록될 정도로 소크라테스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 지배적이었다며 소크라테스의 원전에 대한 치밀한 연구 저서 한편 없이 일부분만 가지고 단순, 해석하는 한국의 척박한 지적 풍토가 이와 같은 잘못된 해석을 낳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아마 최소한의 정당성도 없었던 우리나라의 역대 독재 정권들이 "악법도 법이다"를 국정 교과서에까지 왜곡-게재, 소크라테스의 권위를 빌려 자신들이 부당하게 찬탈한 정권과 이 정권을 유지시키는 악법을 국민들이 무조건 복종하도록 만들려는 의도에서 이같은 잘못된 해석이 생기지 않았을까?

강 교수 논리대로라면 "원래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잘못된 관행을 끊임없이 비판, 정치적 권위에 위협을 느낀 세력들에 의해 사형당했다." 우리의 역대 독재 정권들도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부당함과 악법을 지적하면 가차없이 그에 상응한 조처를 가하지 않았는가!

"정의롭지 않은 법은 이미 법이 아니다"라고 말한 이회창 총재의 말에 동의하는 정의파들의 '개악저지'는 물론 '악법철폐'가 절실한 요즘 소크라테스의 말이 새삼 절실하게 다가온다. "너자신을 알라"-"너자신이 알고 있는 악법이 무엇이고 모르고 있는 악법이 무엇인가 그 자체를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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