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즈음은 봉순이네 식구(필자가 기르는 진도개 식구...편집자주)들과 산에 오르거나 고개를 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오늘은 꺽정이와 함께 숙구목재를 넘어 정자리 솔섬까지 다녀올 생각입니다.
어제는 봉순이와 적자산 줄기를 타고 선창리재를 넘어 갔다 왔지요.
꺽정이를 데리고 나서자 봉순이와 부용이의 질투가 하늘을 찌릅니다.
온동네가 떠나가라고 울부짖는 소리에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거나 말거나 오랜만에 산책 나온 꺽정이는 저 혼자 기분에 취해 지나치게 흥분해 있습니다.
내가 꺽정이를 데려 가는 것이 아니라 꺽정이가 나를 끌고 갑니다.
어찌나 힘이 좋은지 나는 속수무책으로 딸려갑니다.
씩씩거리며 돌진하다가도 녀석은 염소만 보면 덤벼들려고 야단입니다.
이래서 녀석들을 풀어줄 수가 없습니다.
부용이만 빼고 꺽정이나 봉순이는 둘다 전과가 있습니다.
봉순이는 이미 어린 시절에 저보다 덩치가 큰 염소 한 마리를 잡아왔고 나는 당연히 염소 값을 물어줘야 했지요.
꺽정이는 목줄이 잠시 풀린 틈에 들고양이 한 마리를 물어 죽였습니다.
꺽정이가 묶여 있다고 안심하고 매일같이 눈앞에서 얼쩡거리던 고양이는 줄이 풀린 꺽정이가 달려가 덥썩 물고 한번 흔들어 버리자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또 한번은 잠시 운동이나 하라고 내보냈더니 어디서 주둥이와 옆구리까지 뻘건 피를 잔뜩 묻히고 돌아와 나에게 된통 혼난 적도 있습니다.
보나마나 동네 염소나 고양이 한 마리 물고 들어온 것이 틀림없겠지요.
사람에 대해서는 그렇게 온순한 두 녀석이 다른 동물들에 대해서는 얼마나 호전적인지 끈으로 묶어서 나왔지만 나는 잠시도 한눈을 팔 수가 없습니다.
어제 봉순이는 심지어 황소한테까지 덤벼들었습니다.
참 기가 차서 말이 다 안나옵니다.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던 황소를 본 봉순이가 멈칫 하더니 이내 공격할 태세를 갖추고 으르렁거렸습니다.
봉순아, 끈을 당겨도 녀석은 막무가내였지요.
무시하고 있던 그 순한 황소도 약이 올랐는지 마침내 봉순이를 향해 돌진해옵니다.
봉순이는 잠깐 당황하는 듯 싶더니 이내 옆으로 돌아 황소의 옆구리를 공격하려 듭니다.
봉순아, 참어라 참어, 네 적수가 아니야.
나는 간신히 봉순이를 달래서 발길을 돌렸지요.
나는 충고하고, 못내 아쉬운 듯 봉순이는 황소를 돌아보며 씩씩거리고, 그렇게 둘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부용이는 어려서 풀어놓고 키운 영향도 있겠지만 심성이 워낙 온순한 탓에 여태껏 그런 사고를 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녀석 또한 풀어줄 수가 없습니다.
밭을 헤집고 다닌다고 동네 노인들이 개를 풀어놓고 키우지 못하게 하는 것도 이유긴 하지만 그보다는 잘못했다간 녀석이 실종 될까 두려운 것이 더 큰 원인이지요.
얼마전에 청별 강채 삼촌네 발바리 두 마리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종종 있는 일이지만 결코 섬 사람들 소행일리는 없습니다.
여기 사람들도 발바리 같은 애완견은 먹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이 좁은 바닥에서 몰래 데려다 키운다는 것 또한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니, 범인은 틀림없이 트럭을 끌고 다니며 '개나 염소 고양이'도 사가는 개장수거나 그도 아니면 심보 고약한 관광객일 것이 분명합니다.
여름철에는 심지어 마당에 심어둔 분재까지도 뽑아 가는 일이 드물지 않으니까요.
청둥골을 지나자 금세 숙구목재가 나옵니다.
해안도로가 뚫리기 전에는 이 재를 넘어야 정자리나 정동리에 갈 수 있었습니다.
나 또한 보길도에 다시 들어온 지 몇 년이 지났으나 어려서 넘어본 뒤로는 오늘이 처음입니다.
산길이어도 험하고 가파른 곳 한군데 없이 넓직한 길이 계속됩니다.
가볍게 넘을 수 있는 고갯길이지만 해안선을 따라 자동차길이 생긴 뒤로는 섬사람들 누구도 이 길을 이용하지 않습니다.
이삼백 미터 떨어진 거리도 자동차를 타야만 직성이 풀릴 정도로 이곳 사람들도 이제는 자동차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호젓한 산길을 꺽정이와 나 둘이서만 걷습니다.
이 길을 발견한 것이 보길도에 돌아와 내가 얻은 가장 큰 행운의 하나가 될 것 같습니다.
이 산길이 제발 아스팔트로 포장되는 따위의 불상사가 없어야 할텐데.
당장에야 그럴 이유가 없어 안심이지만 앞으로 일까지 누가 알겠습니까.
꺽정이는 처음보다 속도가 느려졌습니다.
집을 나선 지 한 시간 남짓 지나자 이제는 내가 뛰면 따라오지 못합니다.
오랫동안 묶여 있다보니 지구력이 많이 떨어진 까닭이겠지요.
이제부터는 내가 앞서 갑니다.
숙구목재를 넘어서 정자리 방면으로 들어서자 앞에 북바구가 불쑥 나타납니다.
조그만 산 정상에 솟아 있는 저 바위들은 여러 이름으로 불립니다.
점잖은 사람들은 그 형상이 글씨 쓰는 붓과 같다하여 문필봉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우리같이 점잖치 못한 사람들은 그냥 좆바위라 볼렀다지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셈인가요.
불룩 솟아 오른 품이 붓으로도 보이고 좆으로도 보일 만합니다.
뭍에서 배를 타고 들어오다 보면 아주 멀리서부터 그 형상이 뚜렷하지요.
각자 아는 만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좆바위 앞에 있는 큰 바위 때문에 통칭해서 그냥 북바구 산이라고들 많이 부릅니다.
옛날 지금의 북바구 곁에 북모양으로 생긴 바위가 하나 더 있었다고 합니다.
이 바위는 바람이 불면 북이 우는 소리를 냈는데 이 소리가 나면 꼭 건너 섬 넙도 처녀들이 바람이 나는 사단이 생겼다지요.
그러던 어느날 넙도 사람들이 몰려와 그 바위를 아래로 밀어뜨려 버렸고 그 뒤로는 넙도 처녀들의 바람기도 잦아들었다는군요.
하지만 나는 이 전설의 결말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 후로도 넙도 처녀들의 바람기가 사라졌다고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된 북소리처럼 처녀들의 정분도 더욱 은밀해지지 않았을까요.
사람 사는 곳에, 젊은 처녀 총각들 사는 곳에 바람 잘 날 있을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처녀들의 바람기가 북바구 때문이었다면 바람기의 원인은 전혀 제거되지 않았으니 더 더욱 믿을 수 없지요.
넙도 사람들은 북소리 때문에 처녀들이 바람난다고 생각해 바위 하나를 없애버렸지만 내가 보기에는 결코 북소리 때문이 아닙니다.
북소리는 전조에 불과한 것이고 진정한 원인은 저 북바구 뒤의 불쑥 솟은 남근 때문이었음이 틀림없습니다.
저 늠름하게 솟은 좆바위의 양기가 어디 넙도까지만 갔겠습니까.
적어도 해남 반도 어란진 넘어 영암 나주까지는 뻗치지 않았을까요.
저렇듯 좆바위가 건재한데 그깟 북바위 하나 사라졌다고 바람이 멎을 까닭이 없지요.
나는 좆바위를 뒤로 하고 산길을 내려갑니다.
정자리 초입에 보건 진료소 푯말이 나타납니다.
길을 내려서니 솔섬이 바로 코 앞입니다.
꺽정이와 나는 다시 나타난 자동차 도로 앞에 긴장하며 조심스레 솔섬으로 건너갑니다.
맑은 솔바람 한자락 불어오는 아침 나절입니다.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