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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미사일방어체제 구축 강행을 선언한지 사흘 후, 영국 리즈에서는 21개국에서 200여명의 평화운동가들과 학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NMD/TMD 및 우주의 군사화를 반대하는 국제대회'가 열렸다. 부시 행정부가 미사일방어체제를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된 일이었으나, 이번 대회 참가자들은 "올 것이 왔다"며 "전지구적인 강력한 저항운동을 벌여나갈 때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거대한 골프장(?) 멘위드 힐

5월 4일부터 6일까지 사흘간 열린 이번 대회는 4일 오전 리즈에 도착한 참가자들이 요크셔 북부 지역에 있는 멘위드 힐(Menwith Hill) 미국 공군 레이더 기지를 항의 방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1996년 건설된 이 레이더 기지는 미국이 보유한 세계 최대 레이더 기지 가운데 하나로서 전세계를 감시하는 주요 거점이다. 이 레이더 기지는 영국은 물론 유럽 전역과, 중동, 북아프리카, 러시아 등에서 오가는 전화, 팩스, 이메일을 도청, 감청할 수 있는 막강한 장비이다.

즉 미국이 전세계에 대한 정보통제를 가능케 하는 에셜론의 핵심 레이더 기지가 바로 이 곳에 있는 것이다. 특히 올해부터 이 기지는 세계 곳곳에서 오는 정보를 모아 미국 군대에 보내 지구는 물론 우주 목표물까지 공격이 가능토록 운영될 예정이다. 미국의 지구-우주 통합 지배 전략의 첫발이라고 할 수 있는 미사일방어망에서도 이 곳 기지는 목표물의 식별과 추적이 가능한 우주적외선시스템과 상호운용성을 높일 계획이라고 이 곳 주민들은 말하고 있다.

이 곳 주민들은 "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땅을 미국의 세계 지배를 위해 빼앗겼다"며 1996년부터 강력한 저항 운동을 벌이고 있다. 4일 오후 레이더 기지를 찾았을 때도 20여명의 지역 주민들이 정문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지역 운동이 갈수록 커지자 1999년부터 미군은 레이더 기지 주변에 철조망을 치고 영국 경찰들을 배치해 지역 주민들의 접근을 막고 있다.

레이더 건설이 추진된 90년대 중반부터 이 지역 운동을 이끌고 있는 린디스 퍼시씨는 "이 레이더 기지는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와 우주 지배에 이용될 예정"이라며, "빼앗긴 땅을 되찾기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말해 기염을 토했다. 그녀는 "한국도 미군이 주둔함으로써 큰 고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한국 평화운동가들을 만나 그 곳 사정을 듣고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모색하고 싶다"며 한국에 돌아가면 꼭 연락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마치 거대한 골프장을 연상시키는 이 곳 레이더 기지는 골프공 모양의 크고 작은 레이더 29개가 광활한 요크셔 평야를 차지하고 있다. 가축을 기르고 농사를 지으며 대대손손 이 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온 요크셔 주민들에게는 또 다른 '엔클로져'인 것이다. 수 백년 전에는 토지에서 쫓겨난 주민들이 도시로 흘러 들어가 하층 노동자로 전락했다면, 오늘날 미군에게 삶의 터전을 빼앗긴 요크셔 주민들은 투철한 반미투사가 되고 있었다.

한국의 매향리 주민들이 반세기 동안 미군의 밤낮을 가리지 않는 폭격훈련에 대한 분노를 폭발시키고 있듯이 이 곳 레이더 기지 주민들 역시 너무나도 평온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미국의 군사적 폭력에 맞서 서서히 일어서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미군 기지 반환운동이 국경을 넘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어 나갈 것이라는 연대의 씨앗을 발견하게 된다.

리즈시 중심부에서 집회 가져

멘위드 힐 레이더 기지를 방문하고 국제대회가 열리는 리즈 대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참가자들은 리즈시 중심가에 있는 중앙광장에 모여 소규모 집회를 가졌다. 지역 가수들의 흥겨운 음악이 곁들여진 이날 집회에서는 각국의 참가자들이 이구동성으로 'No Star Wars'를 외치며 분위기를 돋구어 나갔다.

일본 릿츠메이칸 대학 경제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글로벌 네트워크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야수시 후지오카씨는 "나는 전쟁 경제학자가 아니라 평화 경제학자"라며 "같은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이 곳 주민들의 투쟁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에 돌아가면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 구상에 대한 문제점을 널리 알리고 일본의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이를 저지하기 위해 나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캘리포니아에서 미국의 핵무기 개발 감시 운동을 20여년동안 벌여온 제키 카바소씨는 "이 아름다운 도시에 미국의 세계 지배를 위한 레이더 기지가 있다는 점에 유감을 표한다"며 "그래도 나처럼 미국의 스타워즈 구상을 저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미국인이 많으니 미국인을 너무 미워하지 말아 달라"고 말해 폭소를 자아내기고 했다. 그녀는 이어 "전세계가 한 목소리로 'No Star Wars'를 외쳐 부디 부시를 멈추게 해달라"며 분위기를 한껏 돋았다.

인구 30만의 소도시 리즈에서 열린 첫날 행사는 집회를 마치고 리즈 대학교까지 거리 행진을 벌이는 것으로 끝났다. 자신들이 직접 만든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거리에 나선 활동가들은 각종 유인물을 리즈 시민들에게 건네며 참여를 호소했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리즈 시민들은 박수와 환호성을 보내며 호응하기도 했다. 비록 피부색과 언어는 다르지만 부시 행정부가 막가파식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미사일방어체제는 이렇듯 많은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다음에 이어질 기사 : [인터뷰] 브루스 가그넌 글로벌네트워크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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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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