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서울 광화문 근처의 A여고 앞.
하교시간이 되자 흰색 블라우스에 검정색 스커트의 교복을 입은 여고생들이 둘, 셋, 많게는 넷, 다섯으로 무리를 지어 교문을 빠져나온다.

허걱! 아니 이런...
여고생들이 거의 대부분 명품 가방을 둘러메고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실제로 열 명이 지나가면 아홉 명은 명품 배낭을 멨다. 여학생들이 가장 흔하게 멘 명품은 이태리 브랜드인 '프라다'와 'MCM', 그리고 요즘 한창 유행하는 '나라야'.

'프라다'는 강남의 청담동 및 고급백화점에만 입점하는 브랜드로 배낭 하나의 가격이 80만원에서 100만원을 훌쩍 넘는다. 'MCM'은 디자인을 수입, 우리나라에서 제조하지만 가방 가격이 평균 30~40만원 대에 이른다. '나라야'는 몇 년 전부터 홍콩과 싱가폴 등 동남아시아에서 유행하던 공주풍의 가방브랜드로 최근 명동과 압구정동에 상점이 들어서고 있다.

그렇다면 여고생들이 어떻게 이런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닐 수 있는 것일까?

대답은 어렵지 않다. 여고생들은 대부분 소위 '짝퉁'이라고 불리는 모조품, 가짜명품을 들고 다니는 것이다.

prada4
▲ '프라다'가방을 메고 지나가는 학생들
ⓒ 배을선
고등학교 1학년 유미진(가명) 양은 "우리 학교 애들이 가지고 다니는 가방은 다 짝퉁이에요"라고 말문을 연다. 진품을 가지고 다니는 학생이 없을까라는 질문에는 더 황당한 대답이 나오고 만다. "진품이요? A급이면 몰라도..."

동대문 시장과 명동일대에서 가방을 구입한다는 학생들은 동대문 시장의 상인들처럼 가방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데, 진품처럼 완벽한 모조품이면 A급, 그보다 좀 떨어지면 B급, 상표만 붙어 있는 정도면 C급이라고 설명까지 해준다.

학생들이 들고 다니는 가방은 대부분 C급으로 단돈 만원이면 '프라다 짝퉁' 가방을 구입할 수 있다. 만약 4~5만원을 주고 A급 가방을 가지고 다니는 학생이 있다면 적어도 친구들 사이에서는 '부티'를 낼 수 있으며, 한마디로 '폼'나는 것이다.

왜 이 같은 현상이 일어난 것일까? 아니 왜 명품 가방이 여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것일까?

고등학교 3학년이라면서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학생은 명품이고 뭐고 할 것 없이 오직 '프라다'라고 대답한다. 자신이 다니는 학교의 교복이 검정색인데, 검정색 교복에는 검정색 가방이 어울리고, 이왕이면 명품 브랜드인 '프라다'가 가장 폼난다는 것이다. 1년 전부터 조금 논다는 학생들이 메고 다니던 '프라다' 배낭이 이제는 이 학교의 유행이 되어버렸고, 이웃 여자중학교와 고등학교에도 유행이 되었다는 것이다.

prada5
▲ '프라다'가방과 함께 한 유행하는 'MCM'가방(오른쪽)
ⓒ 배을선
진품도 아닌 모조품을 들고 다니면서도 폼이 날까? 기자의 대답에 한 학생은 "어쨌든 프라다잖아요"라며 일축한다.

'프라다' 배낭에는 어깨보호대가 없어서 학생 가방으로 적당치가 않다. 책이라도 몇 권 넣을라치면 어깨가 꽤 아플텐데, 걱정이 되어 한 학생이 멘 배낭을 슬쩍 들어보니 가방이 너무 가볍다. 두 번째 허걱! 책을 몇 권 넣었냐는 질문에 너무나도 태연한 대답을 듣는다.
"책, 안 갖고 다녀요."

어차피 프라다 가방에는 책이 몇 권 들어가지 않는데다가 요즘 유행하는 방식인 '밑으로 처지게' 가방을 메려면 책을 넣지 않아야 예쁘게 멜 수 있단다. 정 책을 들고 다녀야 한다면 학생들은 보조가방식으로 가방을 하나 더 가지고 다니는데, 그런 용도로는 '나라야' 가방이 제일이라고 한다. 물론 '나라야' 가방도 동대문과 명동 일대에서 만원 정도의 가격에 구입하는 짝퉁이다.

prada6
▲ '프라다' 배낭을 메고 노란색 '나라야'가방까지 멘 학생
ⓒ 배을선
학생들의 이러한 유행현상에 대해서 A여고의 생활지도부 조00 교사는 "아이들의 유행은 어쩔 수 없다"라고 말한다. 가정환경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지금 가지고 다니는 짝퉁 가방을 놔두고 새 가방을 사라고 할 수도 없으며, 공부 안하는 학생들은 어떤 가방을 가지고 다니든 어차피 책을 안 넣고 다닌다는 것이다.

교복치마는 짧게, 블라우스는 꽉 끼게 수선하고 가방은 명품 짝퉁을 가지고 다니면서 나름대로의 유행과 폼을 즐기는 아이들. 아무 거리낌없이 유행을 받아들이고, 아무런 의식없이 짝퉁 가방을 사는 아이들의 획일적인 사고방식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어른들이 강요하는 경쟁적인 틀에 갇혀 유아시절부터 영어학원, 피아노학원, 무슨무슨 학원 등 '내 아이는 최고로', '내 아이는 다르게' 그러나 '남들이 하는 것은 똑같이 따라해야 하는'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어른들의 경쟁적인 사고를 답습하며 훌쩍 커버린 것이다.

알란 파커 감독의 영화 <벽(더 월, The Wall)>에서 사회가 찍어내는 정육점의 소세지처럼 획일적인 사고방식과 교육에 의해 점령된 아이들은 오늘도 단 돈 만원으로 명품 짝퉁 가방을 사고 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