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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강의를 하고 싶었다"

많은 학생들이 싫든 좋든 자본주의적 생존경쟁에 내몰려, 학점과 취직준비를 위한 출석이나 학점 잘 받는 데에만 관심이 가 있을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 대학현실에서, 그것도 '구시대의 유물'로나 취급받는 <자본론>을 강의해야 하는 역설 속의 대학강단이 새삼 떠올랐기 때문일까?

만화 <플란다스의 개>에 나오는 파트라슈를 연상시키는 개, '여린이'(실제 이 개는 파트라슈와 같은 종류의 그레이트 피레니즈라는 종이다)가 제일 먼저 손님을 맞이하는 문화카페 '부드러운직선(http://www.jicsun.com/)'에서 <자본론> 강좌를 하게 된 충남대 경제학과 류동민 교수는, 카페강의 요청을 흔쾌히 수락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짤막하게 대답했다.

의사라면 누구나 슈바이쳐나 노먼 베쑨이 된 자신의 모습을 꿈꾸어 보듯이, 교수라면 이런 모습을 꿈꾸는가 보다. 진정으로 배움을 원하는 곳이 있다면 어디라도 찾아가서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동료이자 이웃으로서 함께 토론하고 고민하면서 느끼는 학문적 성취감 같은 것 말이다.

5월 28일 첫 강좌를 시작으로 일주일에 한 번,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카페의 자본론 강좌'를 하게 될 류동민 교수는 '노동가치론'을 전공하였고, 99년부터 올 3월까지 한겨레신문에 '야! 한국사회'라는 칼럼을 쓰면서 '군필자 가산점 위헌 논란'으로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보다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경제학'을 연구하겠다는 포부를 가진, 김광석을 좋아하는 386세대다.

'... 그 시절 고시파 친구들을 한 수 접고 보던 때가 있었다. 그들에게 `저런 날라리 같으니라구'라는 독백을 날렸다. 폭압과 부정의의 시대에 고시공부는 캠퍼스 한복판에서 여학생의 뺨을 후려갈기던 백골단과 한패라고까지 생각한 적도 있었다. `오월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 아! 그 노래만 들으면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할 때도 있었다. 어느해 겨울 학교 앞 카페에서 그 `광주'의 주역에게 투표하겠다던 친구와 맥주잔을 날리며 싸우기도 했다.

그러나 바로 그 시절, 대책없이 과격한 운동권들을 보면서 이갈리도록 지겨운 적도 있었다. 사회주의는 역사의 필연이라 주장하는 선배에게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재벌회사 파업장에 빵 사들고 위문갔던 그 선배가 잡혀가고 구사대의 쇠파이프질에 피투성이가 된 그의 티셔츠만 학교로 돌아왔을 때, 나는 그 쇠파이프의 한쪽 끝을 내가 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에 몸을 떨었다.

<노동의 새벽>을 읽으며 속으로는 섬뜩해 하면서도 겉으로는 높이 평가하던 내가, 이제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읽으며 속으로는 감동하면서도 겉으로는 `박노해도 갔군'하며 빈정거린다. 이 지독한 이율배반...' (한겨레칼럼 '야! 한국사회 - 희극넘어 희망찾기' 중에서 1999. 7. 26)

이번 강좌는 류교수가 '대전지역통화 한밭레츠(http://www.tjlets.or.kr/)'의 회원가입을 계기로 마련되었다. 회원간에 물품이나 각종 서비스 등을 현금 없이‘두루’라는 무형의 공동체 화폐로 주고받는 녹색통화운동 모임인 한밭레츠의 세 번째 '품앗이 학교'인 것이다. 수강료의 30%는 '두루'로 받고, 강사료도 50% '두루'로 지급된다. 물론 이 '두루'는 또 다른 회원들과의 물품, 서비스 거래에 이용할 수 있는 공동체 화폐다.

국가나 은행이 발행한 화폐를 사용하지 않고 나눔과 연대의 정신에 기초해서 지역사회의 주민들끼리 물품과 서비스를 교환하는 자립적 생활방식을 만들어 가는 한밭레츠는, 회원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과 능력으로 누구나 서로 배우고 가르칠 수 있는 '품앗이 학교'란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진행하고 있는데, 홈페이지강좌, 목공예교실에 이어 자본론 강좌를 회원카페인 '부드러운직선'과 함께 준비했다고 한다.

한밭레츠 회원을 비롯해서 모두 20여 명이 참여한 이날 강좌는 두 시간의 강좌와 두 시간의 뒷풀이로 이어졌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자본론강좌를 들으러 왔을까?

맑시즘이 종교적이라기보다는 성경이 혁명적이라는 믿음을 가진 신학대학원생, 신자유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가장 첨예할 수밖에 없는 실업자 자활지원센터 활동가, 민주노동당원, 자본의 논리에 맞서 대안의 경제공동체를 지향하는 한밭레츠 회원들, 그리고 대학 내에서 레츠를 준비하는 학생들.

과학기술의 발전은 과연 사람을 자유롭게 해줄 것인가에 의문을 가진 과기대학생, 맑스의 휴머니즘과 환경, 생태문제에 의문을 제기하는 환경운동가. 안티조선에 대한 류교수의 태도를 집요하게 따져 묻던, <인물과사상> 토론모임을 하고 있다는 학생.

개인적으로 철학을 공부하는데 경제학을 들어두면 좋을 것 같아서 왔다는 사람, 심지어는 선배의 노동가치론을 제대로 반박해보고 싶어서 왔다는 여학생도 있다.

류교수는 첫 강의는 '<자본론>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자본론이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선동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자본론에는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거의 없으며, 자본주의에 대한 과학적 분석에 집중한 저작이다."

"자본론에서 공산주의는 '자유로운 개인의 연합체' 정도로 표현되어 있으며, 공산당 선언에서조차도 '개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든 사람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한 조건'이 되는 사회라는 추상적 표현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회주의에 대한 생각이나 개념은 러시아 혁명이후의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에 대한, 그것도 자본주의에 의해 왜곡된 정보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다."

"또 개개인의 의식이나 행위가 구조나 환경에 의존한다는 유물론적 관점이 비인간적이라고 비판하지만, 기본적으로 자본론이 인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휴머니즘에 닿아 있다."

<자본론>과 맑스에 대한 소개를 주제로 한 첫 강좌가 끝날 무렵,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와 더불어 맑시즘, 자본론의 폐기를 말하기도 하는 지금, <자본론>강좌의 의미를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물었다.

"소련이나 사회주의가 실패했다고 맑스의 자본주의 비판이 틀렸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 세계가 자본화되어 있는 현재의 상황은 오히려 맑스의 자본주의 비판을 검토해야 할 적절한 시점이다. <자본론>은 맑스의 19세기 중엽보다 지금이 더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90년대 초,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의 해체가 막을 수 없는 대세로 세계를 휩쓸 무렵에 이런 이야기는 <자본론>을 들고 밥벌이를 해야 하는 교수의 궁색한 항변에 불과하다는 소릴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에 대한 혁명적 비판의 무기였던 <자본론>이 더 이상 무기가 되지 못한다고들 하지만, 누구도 신자유주의니 세계화니 하면서 극단으로 치닫는 현실 자본주의의 문제를 극복하고 대체할 뾰족한 실천적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지금, 분명 그 울림은 다르다.

결국, "노동하는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자본주의의 과학적 분석을 통해 자본주의 극복을 얘기한 <자본론>의 가치"에 대한 판단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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