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외국인들에게 우리의 노사분규 현장은 엄청난 충격이다. 그들은 다른 선진국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상한 일'들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중앙은행(한국은행)에 정말 노조가 있나요? 의사들이 파업을 한다는 게 사실입니까? 한국에는 시위에 관한 법률도 없나요?"


어느 일간지의 새 기획기사 시작글의 일부다. 이 일간지는 6월16일자 신문을 시작으로 '노사 새로 시작이다'라는 기획물을 시작했다. 이 신문은 이 기획기사를 위해 부국장을 팀장으로 하는 6명 규모의 기획취재팀을 꾸렸으며 1면과 3면, 35면 등 총 3페이지를 할애했다.

기획물의 첫 번째 기사는 '<상>외국인들의 충고'라는 주제를 다뤘다. 1면에 실린 기사의 제목은 "천막치고 꽹과리 치고... 한국 파업 처음보는 충격". <조선일보>가 기획한 이 기사를 감상해보자.


"천막치고 꽹과리 치고...한국파업 처음 보는 충격"

- "(노조가 1층에서 천막을 치고 꽹과리를 치는 모습을 보고)난생 처음 경험하는 충격"(월프레드 호리에 제일은행장)
- "노사문제에 관한 한 한국은 선진국의 20년전으로 돌아갔다"(ING 생명 요스트 케네만스 사장)
- "파업과 시위가 한국에 투자하려는 외국 기업인만 쫓아내는 게 아닙니다. 이를 교묘히 이용해 한국 투자조건을 유리하게 만드는 외국기업도 많습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세요."(션원옌 대만 경제부 수출진흥팀 고문)
- "정리해고, 무노동무임금 원칙은 '뇌사상태의 법률'이며, 복수, 산별노조, 제3자 개입허용은 OECD국가에서 이미 퇴출된 낡은 규정"(제프리 존스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소장)


기사는 우선 외국인들의 입을 빌어 한국의 노조파업에 문제가 있다고 전제했다. 이어 "외국인들에게 노사분규란 사전에나 남아 있는 잊혀진 단어"이며, "이미 휴렛 패커드, IBM, 텍사스 인스트로먼트(TI) 같은 유수의 기업들은 물론 체이스 맨해튼은행 같은 금융기관에서는 노조가 사라진 지 오래"라고 말한다.

"네덜란드, 호주, 미국 신문 등 어느 선진국 신문을 찾아봐도 총파업, 화염병 시위, 가두투쟁, 연좌농성이란 말들을 찾아볼 수 없다"는 말도 이어진다.

'한국의 노조파업 문제 있다"고 전제한 뒤, 기사는 '파업으로 인한 외국과의 인수합병 시 노조파업이 악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한다. 이어 <조선>은 노조파업 때문에 인수합병 차질을 빚었다며 여러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그렇다면 외국인들의 '한국 노사문화의 파행 원인 진단'은 어떨까.

"외국인들은 하나같이 한국의 노사문화가 파행으로 치닫는 제일 큰 책임을 정부의 리더십 부재와 국제관행을 벗어난 노동법에서 찾는다. 대처 영국총리, 레이건 대통령이 강력한 지도력으로 노사분규를 정면 돌파, 경제부흥의 기틀을 마련한 데 반해, 한국정부는 '노조에 끌려다니가다 사용자에 극히 불리한 노동관련법만 양산했다'는 지적이다."

"경영 투명성이 없다는 점이 과격 노사분규를 부추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엉터리 회계보고서에, 회사는 망해도 오너들은 호의호식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노조와 회사간에 신뢰가 싹틀 수 있느냐는 것이다... 경영진이 노조원을 파트너로 인식해야 한다"며 "회사는 주인, 근로자는 머슴으로 보는 시각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이상하게도 '한국노사문화의 파행원인 진단"은 기사의 끝에 가서야 비로소 국내 노동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는 듯하다. 노동자들의 문제로 시작한 기사가 결국엔 정부, 회사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끝을 맺으니 말이다. 참 독특한 편집방식이다.


35면 "우리(상인)들도 불법, 과격시위를 막는 시위를 벌이도록 허가해줘야 한다"

<조선> 기획취재팀은 외국인들에게 듣는 것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들이 또 다른 취재현장으로 택한 곳은 종로. "집회단골 종로, 가게 80% 내놔"라는 제하로 35면에 실린 기사에서는 종로상인들의 불만을 주로 담았다.

"종로구 낙원동에서 아구찜 식당을 운영하는 이상희 씨는 몇 달전부터 시위가 있으면 카메라를 들고 불법 시위를 감시한다. "시위하는 사람들이 신고한 대로 인도에서만 시위하는지, 공공시설물 파손은 하지 않는지 '참관'하고 불법이 있으면 증거로 남겨놓습니다."

"종로의 인도만은 보도블록대신 고무로 깔아주었으면 좋겠다"
"우리 상인들에게도 플래카드를 들고 불법, 과격 시위를 막는 시위를 벌이도록 허가해줘야 한다"


앞다퉈 시위대를 비판하는 상인들의 말을 담은 기사는 이어 상인들이 그후 '종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만들고 불법, 과격시위에 대응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조선이 새롭게 시작한 기획기사 '노사 새로 시작하자'. 조선이 앞으로 무엇을 새롭게 시작하려는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