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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전선의 북상으로 구름이 잔뜩 낀 6월 22일 이른 아침 삼천포 항구에는 수산시장 경매에 참여하기 위해 정박한 크고 작은 배들로 북적였다.

7시쯤 경매사의 외침도 사라지고, 고기를 가득 실은 '물차'들만 분주하게 경매장을 들락거렸다. 어민들이 파도와 싸우며 잡은 고기들은 전국 각지의 횟집과 시장으로 떠났다.

경매가 끝나면 다음 출어를 위해 생필품을 사고, 배의 선창에 얼음을 채우는 일로 다시 시장의 분위기는 바빠진다.

어민들뿐만 아니라 싱싱한 횟감이나 반찬을 마련하기 위해 진주나 하동, 산청 등 인근지역 주민들도 삼천포 수산시장을 찾는다. 전국에서 가장 횟값이 싸다는 삼천포는 3만원이면 친구 대여섯이 모여 우럭과 광어회를 실컷 먹을 수 있다.

직접 시장 안 골목에서 횟거리를 구해 플라스틱 광주리에 담고, 인근 매운탕 집에서 상추와 고추장, 쌈장, 소주를 사서 짙푸른 남해가 훤히 보이는 '노산공원'에서 둘러앉아 먹는 회맛은 일품이다.

하지만 이런 즐거움만 생각하기엔 어민들의 시름은 너무나 깊다. 통계청이 지난해 1년간 연안지역에서 가족중심의 어업활동을 하는 684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12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어가 부채는 가구당 1363만5천원으로 99년말에 비해 18% 증가했다.

그리고 순수한 어업소득은 어업생산량 감소와 어업경영비 증가로 인해 2.4%(24만5천원)감소한 1007만8천원을 기록했다. 어업 외 소득을 합한 한 가구당 평균소득은 연간 1887만5천원이다.

'잡는 어업'에서 '기르는 어업'으로 어업의 패턴이 달라지면서 '양식시설'이나 '수산물 가공시설'에 대한 투자 때문에 어민들의 부채가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어민들의 깊게 패인 주름살을 보면 정부의 어업정책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항상 일본에게 끌려다니는 어업협정과 우리 어민들의 배를 약탈하는 중국어선들의 틈바구니 속에 정부는 기름 값까지 올려버리니 어민들로선 힘든 나날이다.

통영 근해로 조업을 나간다는 한 어민은 일주일 동안 바다에서 꼬박 조업을 해봤자 기름 값 빼기도 힘들다며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숨을 쉬었다.

얼마 전 우리나라 꽁치잡이 어선에 대해 남쿠릴열도 주변수역의 조업을 일본이 금지하고 나서자 정부는 강력하게 대응한다고 언론 플레이를 했다.

하지만 정부의 그 강력한 대응책은 '외교적 교섭을 통해 원만한 사태해결을 추진하며, 일본측의 반응을 지켜본다'는 지극히 미적지근한 것이었다.

일본이 조업불허 조치를 철회하지 않을 경우 우리 어민들의 피해를 조사해 대응책을 마련한다고 하지만 어민들이 피해를 보고 난 후 그 대응책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삼천포 수산시장에서 닥쳐올 장마와 태풍 '제비'보다 더 어민들을 괴롭히는 건 정부의 잘못된 어업정책이 아닌가 의구심이 생긴다. 하지만 고기잡이를 위해 오늘도 배에 오르는 어부의 뒷모습에서 고달프지만 바다와 더불어 사는 이의 생명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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