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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을 다한 7시간 토론회'와 '토론이 없는 15분 총회'. 12년의 시차를 두고 진행된 조선일보 기자들의 두 모임의 간극에서 우리가 찾아내야 할 진실은 무엇일까.

조선일보 기자들은 지난 6월 27일 오후 6시 30분 태평로 1가 사옥 편집국에서 긴급 총회를 열고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언론탄압으로 규정한 뒤 정부와 맞서 싸우겠다고 결의했다.

이날 총회는 '언론자유'와 관련된 사안의 중요성과 민감성에도 불구하고 찬반논쟁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됐으며, 15분만에 '대정부 투쟁 성명'만 채택한 채 싱겁게(?) 막을 내렸다.

적어도 젊은 기자들은 기자의 양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기에 고뇌에 찬 의견 개진과 열띤 논쟁이 전개될 것이라던 평범한 시민들의 기대는 여지없이 깨졌다.

'할말은 하는 신문'을 표방한 언론사 기자들의 행위라고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었다. 오죽하면 총회 소식을 접한 언론개혁시민연대 김주언 사무총장이 "기자들이 언론인으로서의 기능을 포기했다"고 평했을까.

그러나 조선일보 기자들이 사실은 토론과 논쟁을 전혀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며, 실제로 다른 주제와 관련해선 '격렬하고 진지하게' 7시간 동안 마라톤 토론회를 진행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 월간 <말>지 기자가 조선일보 노동조합 기관지인 <조선노보>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확인됐다. (조선일보 노동조합은 다른 언론사와 달리 주로 기자들로 구성돼 있다. 실제로 12년 전의 토론회를 주도한 것도 기자들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인 89년 1월 29일 오전 9시 50분부터 7시간 동안 경기도 포천군 산정호수의 한 산장에서 조선일보 노동조합 주최로 열린 '7시간 산상(山上) 대토론회'를 상세히 보도한 <조선노보> 15호(89년 2월 1일자)는, 토론주제와 관련 '격렬한 찬반논쟁'이 벌어졌으며 참석자들은 '할말을 다했다'고 이날의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특히 <조선노보>는 "이날 토론이 예상보다 길어졌기 때문에 당초 1박2일의 수련회 일정으로 계획했던 그 동안의 조합활동에 대한 평가와 앞으로의 활동방침에 대한 논의는 취소됐을 정도"라고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토론주제가 무엇이었길래 노조 활동에 대한 평가와 전망에 대한 논의를 취소하면서까지 토론회가 하루종일 진행된 것일까?

이날 대토론회의 주제는 다름 아닌 '임금인상(賃金引上)을 비롯한 급여체계 검토와 임투(賃鬪) 매진 결의'였다.

<조선노보>에 따르면, 노조 간부 58명과 일반 조합원 27명 등 모두 85명이 참석한 가운데 시작된 토론회는 조합 간부들간의 연대의식을 높이고 회사측과의 임금교섭을 앞두고 조합 내부의 입장정립과 의견수렴을 위해 마련된 것이라고 한다.

다음은 12년 전 명성산(鳴聲山) 자락에서 열린 산상 토론회에서 쏟아진 조선일보 기자들을 비롯한 사원들의 명(鳴)과 성(聲)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그 밑에 현 상황과 관련해 필자의 주석을 달았다.)

● "오늘날 언론계의 전체적인 급여수준은 전 업계를 통틀어 '톱클라스'라 해도 좋을 만큼 급상승해 있다. 기자직군이 급여인상을 선도하면서 다른 직군도 하루가 다르게 급여가 뛰고 있다. 이런 상황은 언론계의 임금협약을 상당히 제약하는 조건으로 작용한다.

다른 업계에 비해 엄청나게 높은 급여를 받으면서 임금협약에 잡음이 뒤따른다면 사회여론의 지탄을 사서 받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표적인 고급여 업종인 단자사나 증권사가 노조 출범 후 임금과 관련된 단체행동을 벌여 사회의 질타를 받았던 선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 당시에 이들이 언론사의 고임금에 대한 사회적 비판 여론에 상당히 신경을 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 그들이 지금에 와서는 탈세사주를 비호한다는 국민적 여론을 무시하고 강경하게 나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 "단일호봉 체계에선 무엇보다 연야수당과 직무수당의 개편이 불가피하다. 연야수당 중 일부는 본봉 쪽에 흡수될지 모르지만 어떤 경우건 시간외수당과 야간수당, 그리고 직군별수당의 지급기준을 새로 세워야 한다. 이를 위해 전문가의 도움 아래 직무분석도를 실시, '부서별 기준 근로시간표'를 처음으로 만들어야 한다. (중략) 그래서 경우에 따라 별도 수당을 신설하는 '꾀'를 내야 할지도 모른다. (임금인상은) 한마디로 지난하고 험난한 과정이다."
(--> 조선일보 사원들이 자신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고뇌하고 토론하는 것 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노동자의 정당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노력과 '꾀'를 '생존권 보장을 위한 노동자들의 지난한 투쟁'과 '언론개혁을 향한 국민의 험난한 투쟁'에 조금만 기울인다면 세상은 좀더 아름답게 변하지 않을까?)

● "임금교섭에서는 회사측과의 협상 못지않게 조합 내부의 의견조정이 관건이다. 모든 직급-부서 소속 조합원들이 자신의 이해관계에만 집착하는 자세에서 벗어나 한 발짝씩 물러나 생각하는 호혜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조합은 토론회에서 제기된 다양한 의견들을 임금협약실무위원회를 통해 수렴, 조정해 나가는 한편 회사측과의 임금교섭과 투쟁에 조합의 열망을 총결집해야 한다."
(--> 하물며 임금문제와 관련해서도 직급과 부서 등에 따라 의견이 다양한 것이 현실이고, 그래서 이를 수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건만, 사주의 탈세비호에 대해서만은 아무런 이견도 일사불란하게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임금인상을 위해서는 자신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하고, 회사측과의 투쟁도 불사해야 한다고 했으면서도, 이번에는 거꾸로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 "발송부는 타 부서와 비교할 때 같은 고졸자의 경우 임금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 작년엔가 임금인상이 있었을 때 봉급봉투를 받아들고는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힘이 빠져 20-30분간 작업을 중단한 적이 있다. 5판 나올 시간이었는데, 그 일로 2명이 해고됐다. 그래도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일해왔다.

오늘 보니 직무수당에서도 상당히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았다. 앞으로 이런 격차가 줄어들었으면 좋겠다."
"공무국도 마찬가지다. 조선일보사엔 계층간에 너무 큰 차이가 있다. 우선 많이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일부에서 '그렇다'고 호응) 작은 빵을 나누지 말고 큰 빵을 얻어내자."
"임금교섭을 앞두고 조합원들간에 오해와 개념의 혼란이 상당하다(특히 편집국에 대한 타 부서의 불만). 이런 혼란은 해소돼야 한다. 불만의 대상은 조합도, 편집국도 아니다. 그 대상은 회사이어야 한다."
(--> 참으로 탁월한 해명이다. 맞다. 회사가, 즉 족벌사주가 문제의 핵심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세무조사도 그 대상은 족벌사주이지 사원이나 기자가 아니다. 여러분의 불만의 대상은 정부도, 시민단체도 아닌 탈세를 저지른 회사와 경영진이어야 한다.)

● "인력난은 거의 전 부서가 겪고 있는 문제로 보인다. 야근 부서도 많고 각자의 사정이 다양해 원칙을 세우는데 어려움이 많다고 본다. 지금까지 회사가 무원칙으로 해왔기 때문에 조합이 떠맡아 원칙을 세우는 격이 되고 말았다."
(--> 이 기자의 말도 맞다. 그렇다면 그런 탁월한 안목을 왜 탈세문제에는 적용하지 않는가. 지금까지 무원칙으로 해온 회사를 옹호할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라도 조합이나 기자들이 원칙을 새로 세우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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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환 기자는 월간 말 취재차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언론, 지역, 에너지, 식량 문제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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