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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 동안 <동아일보>를 구독해 왔다. 선친께서 중년 시절부터 동아일보와 인연을 맺으셨으니, 그 세월이 족히 40년은 된다.
여러 번 동아일보 구독을 끊고 싶은 마음을 가졌었으나 막상은 실행을 하기가 어려웠다. 마음과 달리 동아일보를 끊지 못한 내 나름의 확실한 이유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겠다.
1) 1975년 동아일보가 유신 정권으로부터 이른바 '광고 탄압'을 받을 때 수많은 독자들의 열화와 같은 '격려 광고' 대열에 나도 여러 번 참여했던 인연 때문이었다. 생각하면 너무도 허무 맹랑한 일이었다. 유신 정권에 어처구니없이 무릎을 꿇은 동아일보로부터 받은 그 지독했던 배신감과 실망감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그것 때문에 동아일보를 버릴 수가 없었다. 동아일보에 대한 연민과 일말의 기대와 희망을 정말이지 끝내 포기할 수가 없었다.
2) 동아일보 신춘문예 출신 작가라는 그 세속적 인연을 저버릴 수가 없었다.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극터듬기를 해서 문단에 올랐을 때 나는 매년 신춘문예를 실시하는 일간지들 중에서 유일하게 중편소설 부문을 운용하는 동아일보가 참으로 고맙기까지 했다. 작가 생활 20년 동안 자매지 <신동아>로부터 수필 청탁을 두 번 받은 것 말고는 동아일보 덕을 본 적이 거의 없지만, 그래도 동아일보 출신 작가라는 인연을 나름껏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런 마음 때문에 동아일보의 구독을 끊기가 어려웠다.
3) 동아일보가 그래도 <조선일보>와는 다른 점이 있다는 그 믿음과 기대를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동아일보 역시 조선일보처럼 '민족지'라는 말은 허무맹랑한 허상일 뿐이고, '정론지'라는 것도 의문 투성이지만, 그래도 조선일보보다는 낫다는, 조금은 다른 구석이 있다는 그 억지스러운 신념을 나는 끝까지 붙잡고 늘어지고 싶었다. 그것은 어쩌면 나의 간절한 갈망이었고 희원이었다.
4) 동아일보 지국장과의 사사로운 인연을 무시하기가 어려웠다. 지역에서 살다보면 인간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동아일보 지국장은 지역에서 과거 민주화 투쟁도 함께 해온 사람이고, 지금도 지역의 이런 저런 단체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동아일보를 그만 보겠다고 하기가 정말 어려웠다.
5) 배달 소년에 대한 미안한 마음 때문에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 새벽마다 집 앞 현관에다 신문을 배달해 주고 가는 배달 소년에게 우선은 죄를 짓는 것만 같은 심정이었다. 물론 배달 소년으로서는 오히려 수고를 더는 일일 수도 있고, 배달 가정이 하나 줄어든다고 해서 월급이 깎이는 것도 아닐 테지만, 어느 날부터 갑자기 그를 우리집에 오지 않게 한다는 것이 왠지 너무 야박한 소치 같게만 느껴지는 것이었다.
이런 사정들로 해서 나는 신문을 끊는다는 것이 담배를 끊는 것보다 어렵다는 사실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겨레>와 지방일간지인 <대전일보>, <한겨레 21>과 <가톨릭신문> <평화신문>, 그외 월간지 계간지 등을 구독하는 탓에 내 경제 문제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서 여러 번 동아일보 구독 중지를 결심했다가도 막상은 번번이 실행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동아일보 구독 중지를 결심하기 시작한 것은 언론 개혁 문제가 현실화된 시점부터이다. 구체적으로는 '언론 고시' 문제가 쟁점 사항이 된 때부터이다.
나는 언론 개혁 문제 앞에서는, 그리고 언론 고시 부분에서도 동아일보가 조선일보나 중앙일보와는 다른 태도를 취하기를 진심으로 소망했다. 물론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려는 짓일지 모르지만, 동아일보만큼은 족벌언론의 속성과 한계를 스스로 과감히 극복하는 모습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자기 극복의 과감하고도 의연한 모습만이 동아일보를 끝까지 살려낼 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다. 정말로 이 믿음과 기대를 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동아일보가 조선일보와는 다른 모습이기를 바란다는 것은 너무도 순진한 소치임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론 개혁이라는 이 시대의 가장 중대한 명제 앞에서 동아일보는 조선일보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유치하고도 천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언론 고시에 대한 왜곡 보도는 물론이고, 언론 개혁을 집요하게 거부하고 반대하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족벌언론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 주었다.
동아일보에서 언론의 정도를 확인하기는 이미 어렵게 되었다. 왜곡과 둔갑이 마구 자행되는 동아일보의 일련의 여러 가지 보도 태도는 독자들을 기만하는 짓이다. 더 나아가 '오도된 여론'을 만들어내는 짓이고, '타락한 여론'을 조장하려는 짓이다.
신문의 기본 원칙을 저버리고 사주나 신문사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전락해 버린 동아일보 또한 조선일보와 같은 운명의 길을 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 서글픈 사실을 동아일보 종사자들은 명심해야 한다.
오늘 동아일보 지국에 전화를 걸어 신문 배달을 중지할 것을 요청했다. 구독 중지 이유를 명명백백히 설명했다. 시원하면서도 서글픈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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