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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매일 새벽마다 집 주변의 가로등과 방범등 끄는 일을 하고 있다. 언제부터 그 일을 하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거의 10년 가까이 됐지 싶다.

대개는 새벽 3∼4시쯤 일어나서 책을 읽거나 작업을 하다가 미명 무렵에 밖에 나가곤 하지만, 잠이 길어진 아침에도 날이 밝아올 무렵에는 꼭꼭 잠자리에서 일어나곤 한다. 술을 마시고 늦잠을 자더라도, 반불면증에 걸려 어리마리하게 밤을 새우는 경우에도, 그리고 꼭두새벽에 잠이 깨어 일어났다가 재벌 잠을 자더라도 어김없이 미명 무렵에는 기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사시사철 계속해 오고 있는 일이지만, 이 글의 첫머리에 '거의 매일'이라고 쓴 것은 더러 빠지는 날이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한 달에 두세 번씩 새벽에 덕산으로 온 가족이 목욕을 가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은, 올해 연세가 일흔여덟이신 어머니부터 온천 목욕을 좋아하시는데, 아내가 무리 없이 직장에 출근을 하고 또 아이들이 제 시간에 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새벽 4시에 덕산을 가야 한다.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엔 목욕탕이 너무 혼잡하기도 하거니와, 토요일 오후에는 아이들을 성당에 보내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어서, 그리고 일요일 새벽에는 우리 부부가 해미 '성지'로 열다섯 집과 나누어 먹을 물을 길러 가야 하기에 평일 새벽에 목욕을 하러 가곤 하는 것이다.

그런데 덕산에 가서 목욕을 하고 온 날도 내 손으로 불을 끄는 등이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니다. 목욕을 마치고 7시 30분쯤에는 집에 돌아오곤 하는데 해가 둥실 떠오른 그때까지도 두세 개의 등에는 불이 켜져 있곤 하니…. (내가 간혹 먼길 출타를 할 때는 어머니가 그 일을 대신 해주신다.)

지금은 등이 도합 아홉 개로 늘었지만, 이 글을 쓰기 위해 내 개인 홈피 <글나라>의 '가치관' 방에 올라 있는―1997년 1월 천주교 대전교구보에 쓴 「가로등 끄기」라는 글을 읽어보니 그때는 여섯 개의 등을 끄곤 했었다.

또 1998년 초등학교 5학년이던 딸아이가 <대전가톨릭문우회>의 문예작품 공모에서 최우수상을 차지한 「아빠의 아침」이라는 글에는 매일같이 여섯 개의 등을 끄면 일 년 동안 도합 2190개의 등을 끄는 셈이라는 얘기가 들어 있다.

나는 그때 2190이라는 숫자를 처음 접했는데, 딸아이가 그런 글을 쓸 수 있도록 내 삶을 통해 좋은 소재를 제공해 주었다는 사실에서 흐뭇한 보람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며칠 전의 일이다. 그날도 나는 새벽 4시 40분쯤에 밖으로 나가서 집 주변을 한바퀴 돌며 아홉 개의 가로등과 방범등을 차례로 껐다.

그런데 마지막 등을 끄고 <삼진골드마트> 앞을 지나올 때였다. <삼진골드마트> 2층에 있는 PC방에서 두 청년이 나왔다. 2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청년들이었다. 그들은 건물 앞의 자판기에 돈을 넣고 음료수 캔을 하나씩 꺼냈다. 목이 말랐는지 그들은 음료수를 벌컥벌컥 시원스럽게 마셨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들은 다음 순간 길바닥이 쓰레기통인 줄로 착각한 것 같았다. 빈 깡통들을 내가 보건 말건 호쾌하게(?) 동댕이치듯 버리는 것이었다.

길바닥에서 튕긴 깡통 하나가 살려달라는 듯이 내 쪽으로 굴러왔다. 나는 기가막힌 심정이었다. 청년들에게 뭐라고 한마디 해야 될 것 같았다. 꼭 그러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나는 겁이 났다. 섣불리 나섰다가는 청년들에게 봉변을 당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다음 순간, 깡통 하나가 내 앞으로 굴러온 것이 천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청년들이 내 옆을 스쳐 지나가기 직전이었다.

나는 허리를 구부리고 말없이 그 깡통을 집어들었다. 그 청년들의 시선을 느끼며 몇 걸음 움직여 또 하나의 깡통도 집어들었다. 쉰살이 훨씬 넘은 이때까지, 내 생전에 처음 해 보는 일이었다. 새벽길에 청년들이 던져버린 빈 깡통들을 그들이 보는 앞에서 주워보기는…. 정녕코 어떤 메시지가 담긴 일이었다.

그런데, 쓰레기 놓는 곳을 향해 가는 내 귀에 그 청년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에이, 새벽부터 오늘 재수 드러운 날이구만!"
"그런다구 이 길바닥이 깨끗해지나. 내 드러워서!"

그들은 필경 PC 방에서 밤새 격렬한 전투를 하고 나왔을 것이었다. 드넓은 정보의 바다를 유람하며 좋은 정보들을 얻기보다는, 계속 반복적으로 쳐부수고 죽이고 빼앗는 전투 놀이에만 탐닉하다가 나왔을 것이 거의 분명했다.

나는 아직도 샛별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는 하늘을 보며 가만히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새벽 하늘의 샛별을 본 것에 연유하여 곧 그들을 위해 마음 속으로 기도할 수 있었다.

―주님, 젊은 저들에게 각성의 기회를 베풀어 주소서. 새벽의 샛별을 보게 하시고, 샛별의 의미를 깨닫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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