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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써서 올린 「언론 개혁 운동의 아름다운 승화를 위하여」의 내용 중에 지역감정 문제를 언급한 부분이 있었다. 참으로 천부당만부당하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리고 오늘의 숭고한 언론 개혁 운동을 저급한 지역감정을 속에 깔고 줄기차게 오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기에 굳이 언급을 한 것이지만, 사실은 그런 언급 자체가 자꾸만 나를 곤혹스럽게 하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한결 교활하고 음흉하게 지역감정을 조장하여 이용하려 드는 사람들한테는 오늘의 언론 개혁 운동 역시 얼마든지 지역감정을 자극하고 그 효과를 확대재생산해 낼 수 있는― 좋은 빌미가 되리라는 '사실'은 나를 조금은 심란하게 만든다.

오늘에 있어서도 우리에게는 지역감정 문제가 참으로 완강한 숙명적인 덫이다. 언론사들에 대한 초유의 세무조사를 단행하여 언론 개혁의 분수령을 이루어가고 있는 현 민주당 정부가 일단은 그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탓이다. 김대중 정부에 걸려 있는 지역 성격이 결국 언론 개혁 운동이라는 오늘의 숭고한 민중적 에너지를 훼손시킬 수 있는 개연성마저 지닐지 모른다는 것은 거의 분명한 일이다.

무모하리만큼 대다수 국민 여론에 맞서며 계속적으로 족벌 신문권력들을 비호하고 있는 이회창 씨의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조악한 '셈법' 안에 그것은 분명한 항목으로 자리잡혀 있다. 언론 개혁을 막아내고 폄훼하는 일에 '색깔론'을 내세웠다가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함으로 써 이회창씨는 불가불 지역감정이라는 품목 쪽에 더욱 가치 비중을 두게 될지도 모른다.

영남쪽의 지지에 절대적으로 정치 명운을 걸고 있는 그로서는 영남의 지역 정서를 계속 자극하며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그가 지금 언론 개혁에 용감히 맞설 수 있는 것도 실은 영남의 변함 없는 지역감정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정치판의 이런 뼈아픈 구도와 조건 때문에 안티조선 운동으로부터 시작된 오늘의 언론 개혁 운동에 대항하는 보수 세력의 수구적 기류 속에 특히 영남쪽의 지역감정이 부분적으로나마 날카롭게 잠복해 있다는 것은 상당히 불행한 일이며, 우리가 반드시 유념해야 할 사항이다.

따라서 그것을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대응 방법도 모색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우선적으로 그것에 관련하는 사항들을 우리가 분명하고 냉철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것과 관련하여 소설가 이문열 씨의 이른바 '홍위병론'을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문열 씨가 오늘의 대한민국의 언론 개혁을 추동하고 있는 사람들을 일러 '홍위병'이라고 지칭한 것은 오래 오래 잊혀지지 않고 계속 회자될 얼토당토않은 요설이지만, 그가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일차적인 근거는 있었다.

즉 중국문화혁명의 주체이고 행동체였던 홍위병이 최고 권력자 모택동의 보위 세력이었다는 점이다. 그런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이문열은 오늘의 한국의 언론 개혁 세력―정부 편에 서서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를 추동하고 감시하고 있는 진보 세력을 홍위병과 연결시킨 것이다.

너무도 단순하고 자의적인 관점일 수밖에 없는 홍위병의 외형적인 성격 하나만을 가지고 이문열은 분별없는 비약과 확대로 망발을 서슴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그의 홍위병론은 언론 개혁을 열망하는 사람들과 현 민주당 정권을 한 통속으로 몰아가려는 저의를 내포하고 있어 더욱 심각하다.

'마지막으로 요즘의 이런 저런 시민운동에서 홍위병을 떠올리게 되는 까닭은 우연의 일치치고는 너무 자주 그들의 견해가 정부 혹은 정권의 그것과 일치한다는 점이다. 솔직히 말해서 정부가 이미 추구하고 있는 것이라면 따로 시민운동으로 옥상옥(屋上屋)을 세울 필요는 없다. 그런데도 태연스레 정부의 주장을 반복하고 있는 운동을 보게 되면 절로 어떤 이면적인 연계를 억측하게 된다'라고 한 그의 변설 속에 그의 고도의 정치적 술수가 잠복해 있다.

그는 현 민주당 정부가 국민 일반에게 인기가 없음을 잘 알고 있고, 그 점을 최대한 이용하려 들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신문 개혁 추진 세력을 한 통속으로 묶는다면, 효과적으로 묶으면 묶을수록 개혁 세력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계산인 것이다.

대선 시기에 즈음하여 영남의 위력적인 지역감정을 효과적으로 집약시키기만 한다면 보수 세력이 정권을 다시 탈환할 수 있다는 것은 이회창 씨뿐만 아니라 누구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 동안의 민주당의 실정과 인기 하락은 그것을 보장해 주는 일로 작용할 터이다.

게다가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등이 계속적으로 현 정부의 실정을 유도하고 부각시키고 하면 상황은 더욱 유리해질 터이다. 이인화가 "국민들에게 완벽한 '혐오상품'인 국내 정치"운운한 것도, 그것의 책임 안에는 당연히 이회창 씨도 포함되어야 하지만, 그런 정치 혐오증까지도 한나라당에 득이 되리라는 어떤 기대와 확신을 속에 깔고 한 말이다.

이처럼 그들은 정치 상황과 연관하는 보수 세력의 우위와 승리를 자신했다. 그런데 지난해 여름께부터 시작한 안티조선 운동이 처음에는 별볼일 없을 것 같더니 최근에 오면서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라는 강경 조처에 의한 큰 물살을 타면서 엄청난 민중적 에너지로 발전하게 되고 말았다.

당황하고 코너로 몰리게 된 그들은 한나라당을 붙잡고 늘어지면서 급기야 민주당 정부와 언론 개혁 세력을 한통속으로 묶는 카드를 선택하게 되었다. 언론 개혁 세력의 순수성을 계속적으로 훼손하고 흠집을 냄으로써 국민적 에너지로 화하는 것을 어떻게든지 막아보려는 술책이었다.

그런 고도의 계산과 의지로 이문열의 홍위병론이 던져진 것이었다. 순기능적인 위력보다는 부작용의 위력만 엄청나게 결과되고 말았지만….

수구 보수 세력이 인기 없는 현 민주당 정권과 언론 개혁 세력을 한통속으로 묶어 진보 진영의 순수성을 훼손하려고 하는 저의와 함께 우리는 현 민주당 정권의 약점도 잘 살펴야 한다. 우리는 당연히 민주당 정권에 대해서도 강한 비판 세력으로 존재해야 한다.

그동안 민주당 정권은 너무도 많은 실정을 저지르며 국민을 실망시켰다.

물론 상당 부분은 소수 정권의 극복하기 어려운 한계와 조건 탓임도 모르지는 않는다. 사사건건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떼거지 야당과, 이러면 이런다고 시비를 하고 저러면 저런다고 물고 찢고 씹어대는 수구 언론들 때문에 뭐 하나 제대로 추진하기 어려웠던 사정도 잘 알고 있다. 신문 권력이 정치 권력을 능가하는 현실을 확립하기 위해서 별의별 짓을 다하는 족벌신문들이 야당만을 편들고 조종하고 방해를 해대니 정말이지 뭐 하나 맘놓고 할 수 없었던 사정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현 정부의 경제 실정도 족벌 신문에 의해서 몇배로 뻥튀겨지고, 희망적인 경제 전망과 갖가지 지표들이 수구 언론의 호들갑과 무지에 의해서 축소되고 굴절되거나 왜곡된 사례도 많음을 아는 사람은 안다. 경제학자 최용식 선생이 <우리모두> 사이트에 발표한 경제 문제 관련글들은 놀라움과 함께 참으로 많은 사실들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일깨워 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정부의 명백한 실정들이 감추어지거나 용인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현 민주당 정부의 최대 실수로 김영삼 정권의 행태를 그대로 답습한 국회 '날치기 통과'와 자민련과의 공조를 위한 '위원 꿔주기'를 꼽는다.

그 졸렬하고도 야만적인 행투는 '깨어 있는' 민주 시민들에게 너무도 큰 실망과 상처를 주었다. 왜 그랬는지, 반드시 그래야만 했는지, 나는 지금도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민주당의 그런 어리석은 정치 행투는 결국 나를 포함하여 수많은 지지자들로 하여금 등을 돌리게 하고 말았다. 민주당 정권의 지지율 하락을 명시하는 그 그래프의 눈금 속에는 나의 뼈아픈 실망과 오뇌에 의한 지지 철회도 자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실정과 지지율 하락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을 수 있는 길은 1년 6개월 남은 그 짧은 임기 안에도 얼마든지 있다.

가장 큰 것 하나는 '남북 통일'에의 길을 좀더 확실하게 확장하는 일이다. 통일의 기초를 닦기 위한 일에 그는 더욱 열과 성을 다해야 한다.

또 한가지 일은 오늘의 언론 개혁을 더욱 강력하게, 확실하게 추진하여 결실을 이룩하는 일이다. 절대로 느슨하게 해서는 안되고, 김영삼처럼 족벌언론과 뒷거래를 해서는 더 더욱 안된다.

그리고 언론 개혁을 추진하는 일에 있어서, 그것의 의미와 가치를 단순히 언론 개혁의 범주 안에만 묶으려 들어서는 안된다. 오늘의 언론 개혁이라는 명제 속에는―진정한 삶의 가치관, 참다운 사회공동선, 올바른 국민정신―을 세워 나갈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어 있다. 지금의 언론 개혁 운동 속에는 엄청난, 참으로 성스러운 민중적 에너지가 결집되어 있고 충만해 있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오늘의 신문 개혁을―우리 사회를 참으로 좋은 세상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 기초를 닦는 계기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 튼실한 기초 위에서 국민의 통일 역량을 키워가며 민족 통일에의 길을 탐실하게 가꾸어갈 수 있는 것이다.

통일에의 기초를 닦는 일과 오늘의 언론 개혁―그것을 잘 추진하고 성과를 거둔다면, 그 업적만으로도 김대중 대통령은 능히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으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언론 개혁을 열망하고 추진하는 우리들은 이제 더욱 정신을 가다듬어야 한다. 개혁을 방해하는 수구 세력들의 준동에 초지일관 정정당당하게 대응하면서, 현 민주당 정부에 대한 감시의 눈도 부릅떠야 한다. 절대로 족벌언론과 뒷거래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감시하는 한편 탈세언론과 한나라당의 야합 전선을 역사의 이름으로 더욱 준엄히 꾸짖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오늘의 명확한 좌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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