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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용 IOC 위원의 위원장 진출의 무산으로 아쉬움을 남기는 요즈음 한국민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한 미국 올림픽 조직위원회 종신위원인 정존웅(미국명 John Woong Chung, 태권도 8단, 잭슨빌대학 교수역임) 전직교수를 소개한다.
미국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Group A, B, C, D 4개로 나뉘는데 A는 올림픽종목, B는 비올림픽 인기종목, C와 D는 비올림픽 비인기종목으로 분류된다. 1980년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Group A의 종신위원으로 당시 플로리다 잭슨빌대학의 체육교육학과의 교수로 제직중이던 정존웅 교수가 선임되었다.
이어 1986년부터 1998년까지 12년동안 역시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미국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위치한 미국올림픽선수촌의 훈련원장을 역임하면서 1988년 서울올림픽과 1992년 바로셀로나올림픽에 미국올림픽선수단을 이끌고 참가하였다.
정존웅 위원은 음력 1944년 4월 4일 전라북도 전주에서 보성전문을 나와 동경대에 유학한 부친 정교천과 이화여전을 나와 역시 동경대에 유학한 모친 김은덕과 사이의 5남 1녀중 4째로 태어나 전주초등학교 1학년때 부터 태권도 지도관 전북본관의 전일섭관장에게서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한다. 이어 전주북중을 거처 전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장학생으로 한양대 체육학과에 진학한다.
그러나 2학년말에 전라도라 놀리는 서울패거리들과 대판 싸움을 벌리고 낙향하여 전북대 체육교육학과로 편입하여 1967년 ROTC 4기로 졸업과 동시에 임관하여 부산초량에 있던 501 방첩대 수사장교로 배치되어 방첩대 태권도부를 창설하고 부산대 체육학과 대학원에 진학하여 "태권도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으로 1968년에 석사학위를 취득한다.
1970년 대위로 제대한후 전북대 체육교육학과 부교수로 자리를 잡음과 동시에 1973년 교환교수로 플로리다 잭슨빌대학 체육교육과로 교환교수로 도미하게 된다. 당시 동양무술에 대한 열기와 정열적인 강의로 교수평가에 우수한 성적을 보여 잭슨빌대학 총장으로부터 1974년에 정식교수제의를 받고 수락하게 되었다.
이어 미국대학 최초로 태권도학과를 개설하였고 부족한 영어실력을 보충하기위해 4년간 영문학과 학사과정을 이수하며 그 대학 동료교수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며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주류인사로 부상하여 1999년 퇴임때까지 25년간의 치열하고 화려한 교직을 마무리하였다.
정존웅 위원의 형들로는 서울사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전주고에서 수학을 가르쳤던 정상영 씨와 고려대 영문과를 졸업한 미8군 통역장교출신으로 1959년 태권도 정무관을 창설했고 UCLA의 심리학과 교수를 역임한바 있는 정완영 씨가 있다.
동생으로는 ROTC 7기로 전북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전방에서 근무중 북한의 게릴라전에 24살의 나이로 순국한 정기영 중위가 있다. 현재 슬하의 1남1녀는 모두 미국남부의 하바드라 불리우는 조지아 아틀란타에 위치한 에모리의대에 재학중이다.
정존웅 미국 올림픽 조직위원회 종신위원의 약력은 다음과 같다.
1944. 4. 4. 전북 전주 출생, 전주초등, 전주북중, 전주고졸
1966. 전북대 체육교육학과 학사, ROTC 4기 임관
1966, 1967, 1968. 전국 태권도 대회 연속우승
1968. 부산대 체육교육학과 석사
1970. 육군대위로 전역
1970-1973 전북대 체육교육학과 부교수
1973-1974 Jacksonville University 교환교수
1974-1999 Jacksonville University 교수
1974 플로리다 잭슨빌에 정스 무예스쿨(도장) 개설
1980. Group A 미국 올림픽 조직위원회 종신위원으로 선임
1986-1998 미국 올림픽 선수촌 훈련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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