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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7월 23일, 호남정유(현 LG칼텍스정유) 부두에 접안해 원유를 하역하던 14만여톤급 유조선 씨프린스(sea prince)호가 제 3호 태풍 '페이'를 피하기 위해 출항해 피할 항구를 찾던 중, 여수시 남면 연도 남방 암초에 걸려 좌초되었다.
당시 씨프린스호 침몰이란 비보를 전해 들은 어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으며 이 사고로 인해 얼마나 오랜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을 것인가에 넋을 잃고 말았다. 그 후 우리는 남해바다의 생태계가 급속히 황폐화된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 사고가 일어난 지 지난 23일로 6년째를 맞았다. 이에 따라 호남매일, 전광일보, 여수신문, 여수시민신문, 여수투데이, 시민뉴스로 구성된 여수열린언론인협의회는 공동취재단을 구성, 지난 20일 현장에 파견해 사고지점의 생태계와 기름 잔재 등에 대해 집중 취재했다.
이날 현장에는 여수시의회 환경특위 최채곤(문수동) 의원과 그린훼밀리운동연합 여수지부 박종언 지부장, 여수시 해양오염방지 담당자가 동행했다.
6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엄청난 양의 기름퇴적층 발견
취재단이 찾은 씨프린스호 좌초 지점인 소리도 덕포마을은 그 날의 재앙을 세월에 묻은 채, 천혜의 자연경관 속에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이번 여수열린언론인협의회의 탐사 취재는 갯벌 지하에 스며든 엄청난 양의 기름이 아직도 잔존하고 있다는 제보에 따라 현지 취재를 통해 사실을 밝혀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20일 오전, 좌초지점에서 약 1km 정도 떨어진 덕포 해안에 도착한 공동취재단은 간조시간에 맞춰 준비해간 포크레인 등의 장비를 이용해 300m 정도의 해안선을 약 50m 간격으로 파들어갔다. 약 0.7∼1m 정도의 깊이를 파자 시커먼 기름과 뒤섞인 기름덩어리들이 퇴적층을 이루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이 같은 기름퇴적층은 거의 모든 해안에서 발견됐으며 구덩이를 판 자리에는 기름과 범벅이된 시커먼 유진이 솟구쳤다.
도착 당시 느꼈던 평온은 취재 몇 분만에 경악을 금치 못하는 분노로 변해 버렸다. 사고회사인 호유해운(현 LG 칼텍스정유)이 그 동안 줄곧 강조해온 해양오염방지 노력이 주민들과 전 시민을 우롱하는 거짓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탐사에 나서기 전 LG칼텍스정유 관계자가 "사고 당시 철저한 방제작업 이후에는 (기름잔존분이) 전혀 없다"고 자신 있게 했던 말이 무색하게 된 순간이었다.
특히 이러한 기름잔존분들은 해상 사고지점과 가까울수록 더 얕은 곳에서 검출돼 바다 속에 있는 기름잔존분들이 갯벌의 상층부를 덮고 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였다.
이번에 발견한 기름잔존분 층은 해양생물들에게 보금자리를 제공하는 해초류 등이 자라날 수 없게 하며 패류 또한 성장할 수 없게 하는 심각한 오염원이다.
| | ▲여수 열린언론인협의회 회원들이 사고 현장인 덕포리 해역에서 현장 취재를 벌이고 있다. ⓒ 김종호 | 이 같은 퇴적층의 발견은 사고 발생 후 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해양오염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으로 씨프린스호의 재앙은 종결형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셈이다.
여수환경연합 조환익 사무국장은 "육안으로 확인된 부분은 물론이고 지속적인 생태 모델링이 실시돼야 한다"며 "이번에 유진이 발견된 만큼 정부나 사고회사측은 방제작업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기름 잔존물 퇴적지역 광범위
덕포 해안선에서 기름잔존분이 발견됨에 따라 주변지역으로 취재를 확대했다. 인근 마을인 연도에서 취재진은 기름잔존분이 광범위하게 해안선 지하와 바다 밑바닥에 분포되어 있다는 것을 마을 사람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사고 당시 5개월간 방제반장을 맡았던 이 마을 손덕원(71세) 씨는 "방제작업 당시에 사용했던 흡착포가 기름을 흡입한 채로 바다속에 가라앉아 썩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유화제가 가라앉아 바다밑이 기름으로 완전히 뒤덮혀 있는 상태다"고 말하며 "사실 제거된 기름이 얼마나 되겠냐. 솔직한 얘기로 기름은 파도가 다 닦았다. 제거된 게 아니라 가라앉은 것이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동네 앞 갯벌에도 기름잔존분이 퇴적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이로 인해 바지락 양식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주민들의 주장은 '여수여천 유류오염지역 환경현황' 공개발표 당시, 서울대 이종협 교수와 인제대 황인영 교수가 "(이 지역)갯벌 조개류의 체내에도 기름성분이 농축돼 있고, 일부 농도는 위험수위"라고 밝혔던 것에 비춰봤을 때, 기름잔존분이 아직도 분해되지 않고, 패류 등에 많은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죽음의 그림자는 가시지 않았다
이 사고는 어민들은 물론이고 '세계적인 청정해역을 가진 나라'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해안가와 바다 밑바닥에는 기름성분이 스며들어 조개류 양식장이 황폐화됐으며 그 많던 고기들도 사라졌다. 수중생물도 고사했다. 생활의 터전을 일순간에 잃어버린 어민들은 신음했다.
이후 학계와 환경단체들은 이 지역 생태계에 변화에 주목하며 씨프린스호 사고가 어떠한 재앙이 되어 되돌아올 것인가에 대해 촉각을 세웠다.
사고 2년 후, 한국해양연구소와 서울대 등 5개 기관 조사팀은 '여수여천 유류오염지역 환경현황'이란 공개발표회를 통해 '조개류 전멸, 수질 약간 회복'이라는 예상했던 충격적인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여수수산대 이규형 교수는 "(사고로 인해)전복의 최적 서식지였던 여천군 남면과 남해군 앵강만에는 자연산 전복도 전무한 실정"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조개류가 전멸한 것에 대해서는 대전대 박충화 교수가 원인을 설명했다.
박 교수는 "금오도 연목과 여천 소치마을 갯벌 지하 5∼50㎝ 퇴적층에서 기름성분이 발견됐으며 일부는 지하암반에까지 침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하며 "바다 밑바닥에서도 기름성분을 분해하는 세균이 다른 지역에 비해 2배나 많아 상당량의 유류가 이미 해저에 스며든 것으로 분석됐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회수·수거되지 못한 기름성분들이 바다 밑으로 스며들어 오랜 기간 동안 오염이 계속될 것이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부도덕한 사고회사 LG, 죽어가는 환경
| | ▲기름과 모래가 뒤범벅이된 상태다. ⓒ 김종호 | 결국 사고 이후, 많은 환경단체와 학자들이 기름잔존분 퇴적에 따른 오염장기화를 예견했지만 LG측이 사고 이후, 해양생태계 복원을 위한 지속적인 방제작업에 소극적이었다는 결론이다.
씨프린스호 사건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어민들이고, 그 다음은 우리 모두이며 후손에 물려줄 자연을 잃어버린 셈이다. 죽어가는 환경이 언젠가 커다란 재앙이 되어 되돌아올 것이라는 불안감.
정작 LG정유는 이러한 것을 뒤로 하고, 제 살찌우기에만 급급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린훼밀리운동연합 박종언 지부장은 "LG정유는 환경복원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보여왔는가"라고 말하며 "기껏해야 일 년에 한 번 '어린이환경글짓기대회'나 개최하는 것으로 씨프린스호의 아픈 상처를 달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여수시의회 최채곤 의원도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름이 나온다는 것은 LG정유가 지역민과 환경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기만한 것이다"고 말하며 "LG정유가 여수시민을 가지고 놀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성토했다.
생태복원 위해 지속적인 방제작업 이뤄져야
앞서 설명했듯이 씨프린스호 사고의 피해는 수개월 내에 집중적으로 일어났지만 기름잔존분과 유처리제로 인한 2차 오염으로 현재도 많은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보통 암석해안의 경우, 2차 오염이 발생하지 않으면 약 5년 이후부터 생태계가 복원되기 시작하고, 10년 정도 지나면 완전히 회복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하지만 2차 오염을 막지 못하면 생태계의 기반과 구조에 따라 수십 년에 걸쳐 피해가 장기화될 수 있다.
박 지부장은 "방제와 복원에 기울이는 노력은 생태복원과 정비례한다"고 말하며 "생태복원을 위해서는 시급히 기름잔존분 제거 방안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의원도 "현장조사를 통해 해안 및 바다 밑의 기름잔존분 오염실태를 정확히 파악해 즉각 제거에 나서야 한다"며 같은 의견을 내놨다.
더불어 LG정유 측의 무성의한 복원노력도 함께 지적했다.
최 의원은 "환경영향보고도 1, 2차 밖에 나오지 않고, 3차보고는 기약도 없는 상태다"고 말하며 "현장에 와보니 주민들은 조사활동을 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용역을 맡은 조사원들이 현장조사활동을 정상적으로 하고 있는지조차 의심이 간다"고 말했다.
추가보상은 당연하다
씨프린스호 사고는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빼앗아 갔다. 해삼, 소라, 전복, 갈치, 조기, 톳 등으로 한해 수십 억원의 수입을 올리던 어민들의 생활터전은 물론이고, 여수를 비롯한 남해안에서 생산되는 수산물의 시장신뢰도가 급격히 추락했다.
사고 6년이 지난 현재, 연도마을 주민들은 한결같이 "우리는 망했다"고 말한다. 주민들은 "사고 전에는 수십척의 경상도 배들이 이곳에서의 어로활동을 위해 연도에 기거하며 소비를 했으나 지금은 마을배들도 조업공간을 잃을 정도로 어족자원이 고갈됐다"고 주장하며 "앞으로 이런 피해가 언제까지 갈지 예측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씨프린스호 사고 전에는 연도마을에만 여름철 피서객이 2천명 이상이 몰렸고, 평소 주말에도 3백명 이상의 낚시객들이 이곳을 찾았으나 현재는 발길이 거의 끊긴 상태"라고 말한다.
손덕원 씨는 "당시 한 가구당 약 백여만원의 보상을 받긴 했으나 이는 피해액에 1/10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보상받을 길이 있다면 당연히 추가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의원도 "용역조사에는 십억원 이상을 써가면서 막상 최대 피해자인 주민들에 대한 피해보상액은 겨우 몇 억원에 불과했으며 그나마 영국 보험사에서 지급한 보상액이 거의 전부였다"고 말했다.
피해액 보상 당시 어민들의 청구액과 보험사의 지급액이 너무 차이가나 사회문제로 대두되기도 했으나 노년층의 마을 주민들이 사고사나 보험사, 국가를 상대로 지속적인 보상투쟁을 전개하기가 힘들어 별로 여론화되지 못하고 사장됐던 게 사실이다.
어떤 사고였나?
씨프린스호 침몰사고는 청정해역 남해바다를 한순간에 죽음의 바다로 바꿔버린 대형해양오염사고로 아직도 우리 기억에 생생하다.
1995년 7월 23일 오후 5시경, 여수시 남면 연도(일명 소리도) 남쪽 끝단 남방암초에 싸이프러스선적 14만4567톤급 유조선 Sea Prince호의 선미 좌현 기관실 부위가 충돌하면서 기관이 정지되고, 기관실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선박이 좌초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선박 내에 실려 있던 원유 5035톤이 유출되어 여수와 남해, 거제, 해운대, 태종대, 기장군, 울주군, 경주시에 달하는 총 73.3km에 달하는 해안과 여수, 남해, 거제, 부산, 울산, 포항에 이르는 약 127마일의 해상을 뒤덮었다.
사고방제에 동원된 인력만도 16만6900여명. 거기에 8295척의 선박, 45대의 헬기, 1만3766m의 오일펜스, 126대의 유회수기, 23만9천여kg의 유흡착제, 7백여㎘의 유처리제가 투입돼 그해 12월 말까지 5개월 동안 1390㎘(해수포함)를 회수하고 3364톤(유흡착물 포함)을 수거했다.
당시 산정된 어민피해액이 약 443억여원에 달할 정도로 이 사고는 전무후무한 대형해안오염사고로 기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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