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MBC라디오의 한 아침프로에서 '전인권 8.15콘서트' 티켓을 준다는 소리에 사연을 보냈는데 운좋게도 당첨이 되었다. 그 공연은 남편이 매우 좋아하는 가수인 전인권 씨의 공연이었기 때문에 사실 무료티켓을 받지 않아도 가보려고 맘 먹었던 공연이었다. 그런데 마침 그런 기회가 생겨 무료로 공연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는 회사 업무를 한 시간 일찍 마치고 기분좋게 공연장을 찾아갔다.
공연시작때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근처에서 오붓하게 식사를 했다. 생각해보니 둘이서만 영화를 보거나 공연을 본 지가 꽤 된 것 같다.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느라 둘만의 시간을 가질 생각을 하지 못한 까닭이다.
충분히 열광할 수 있도록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공연을 볼 마음의 준비를 마친 후에 공연장으로 다시 찾아갔다. 공연장은 사람들로 가득했는데 지정된 좌석은 이미 꽉 차고, 보조석까지도 거의 매진인 듯싶었다.
그 많은 사람들 중 내가 예상한 것처럼 다른 가수의 공연과는 달리 넥타이를 맨 아저씨(?)들도 여기저기 많이 보였다. 바로 우리 앞자리도 넥타이를 맨 아저씨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물론, 남편도 넥타이를 맨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지만 말이다.
시끄럽고 환했던 공연장이 어두워지고, 침묵이 몰려들며 사람들이 다들 제자리를 찾아 앉았을 때쯤, 드디어 그가 무대에 나타났다. 포스터에서 혹은 다른 매체에서 보던 그 모습 그대로 부시시한 긴 머리에 검정색 양복을 입고 검정색 선그라스를 쓴 모습이었다.
손꼽히는 락커답게 그는 처음부터 폭발적인 가창력을 앞세운 노래들로 금세 공연장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평소에 함께 콘서트장엘 가면 나의 성화에 못이겨 마지못해 호응을 하던 남편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열광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아무도 열광하지 않던 객석을 주도하면서 말이다.
여기저기 머뭇거리던 사람들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공연장은 틀어놓은 에어컨이 무색하리만치 땀을 흘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특히, '돌고, 돌고, 돌고'라는 노래를 부를 때는 모든 관객이 하나가 된것처럼 함께 노래를 불렀는데 나도 그때 어찌나 크게 노래를 불렀던지 목이 다 아플 지경이었다.
우리 앞좌석의 넥타이를 맨 아저씨들도 처음엔 꼼짝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시간이 조금 흐르니 어색한 듯 엉거주춤 일어나 그 열기에 동참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흐르니 내가 언제 앉아 있었냐는 듯이 누구보다 힘차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난 옆에서 열광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남편이 나에게 참 많은 것을 양보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사실 난 안치환, 김광석, 꽃다지의 공연밖에 구경한 적이 없다. 공연장을 찾아 다니는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나마 그 가수들의 공연은 꼭 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남편은 함께 공연장을 찾았지만, 지금의 이 공연처럼 열광을 한 적은 없다. 남편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음악,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안치환이나 김광석 혹은 꽃다지의 공연대신에 다른 공연을 구경가자고 한 적이 없다. 아마도 내가 좋아하는 공연을 보게 해주려는 배려였을 것이다.
오늘 그렇게 즐거워하며 목이 터져라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활짝 웃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오랫동안 만나오면서 한번도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고 한다면 과장일까?
전과 4범이고 50이 넘은 그의 멋스러운 공연을 보았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차지만 사실 남편이 그토록 즐거워하며 열광하는 모습을 본 것 만으로도 나에게는 의미있고 즐거운 공연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부터는 남편의 새로운 모습을 보기 위해서라도 종종 남편이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장을 꼭 찾아가야 겠다.
[전인권 8.15콘서트 공연안내]
●공연날짜 : 8월 15일(수) - 8월 24일(금)
●공연시간 : 월-토 7:30 / 일,공휴일 6시
●공연장소 : 학전그린 소극장
●관람료 : 35,000원
●문의/예매 : 학 전 02-763-8233 (www.hakchon.co.kr)
덧붙이는 글 | 공연이 시작되어 다들 제자리를 찾아 앉아 보고 있는데, 늦게 도착해서 많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물론 피치못할 사정이 있어서 늦었겠지요. 하지만, 공연 중간중간에 문 여닫는 소리와 불빛은 정말 신경쓰입니다. 공연장을 찾게 되면 꼭 시간을 지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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