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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행정부가 탄도미사일방어(ABM) 조약의 수정에 러시아가 11월까지 동의하지 않을 경우 일방적으로 조약에서 탈퇴하겠다는 뜻을 러시아에 통보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러시아가 미국의 일방적인 탈퇴는 반대하지만 ABM 조약을 부분적으로 수정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협의할 의사가 있다고 밝힘으로써 ABM 조약의 향방에 전세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논란의 발단은 뉴욕타임즈의 보도에서 시작됐다. 이 신문은 모스크바를 방문 중인 존 볼튼 국무부 군비통제 및 국제안보담당 차관이 오는 11월까지 ABM 조약 수정에 러시아가 동의하지 않으면 미국은 일방적으로 협정에서 탈퇴하겠다고 러시아 쪽에 비공식적으로 통보했다고 밝힌 것으로 22일 보도했다.

뉴욕타임즈는 볼튼 차관이 러시아 관리들과의 이틀에 걸친 협의 뒤 러시아 라디오방송과의 회견에서 이처럼 밝히고 미국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번 가을 미국을 방문하기 전에 ABM 조약에서 탈퇴하는 문제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했다. 미 행정부가 러시아가 ABM 조약의 수정이나 대체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ABM 조약에서 탈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적은 있으나, 이 문제와 관련해 러시아에 '데드라인'을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왜 11월인가?

부시 행정부가 비공식적으로 러시아에 '시한'을 11월로 제시한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이는 일단 푸틴의 방러에 앞서 러시아의 입장을 확실히 밝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ABM 조약 수정, 혹은 대체와 이에 따라 MD문제가 최대 쟁점이 될 올 가을 미러정상회담에서 러시아가 '선물'을 들고 오지 않을 경우 미러정상회담은 필요없다는 것이 부시 행정부의 분위기이다.

또한 예정대로 알래스카 포트 그릴리에 미사일 격납고와 지휘센터를 내년 4월부터 건설하기 위해서는 11월까지 ABM 조약 탈퇴 여부를 명확히 해야 한다. ABM 조약에서는 한 당사자가 조약 위반 6개월 전에 통보를 할 경우 ABM 조약을 무효화한다고 돼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미 국방부 탄도미사일방어기구(BMDO) 대변인은 이번 주에 포트 그릴리 MD기지 부지 정리 공사에 들어갈 것이라고 발표했다.

ABM 조약과 상충되는 상당수의 미사일 요격실험이 내년 초 실시될 예정이기 때문에 시한을 11월로 못박은 점도 고려됐을 것이다. 이들 실험에는 함정에 설치된 레이더 시스템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추적하는 실험도 포함돼 있다. 이 실험은 이동식 요격체제 건설을 금지한 ABM 조약을 위반하게 된다.

미 백악관 '모호한' 부인

이러한 언론보도에 대해 백악관과 국무부는 미국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미-러정상회담이 열리는 11월까지 러시아가 ABM협정 수정이나 대체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ABM협정에서 탈퇴할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은 22일 부시 대통령이 휴가중인 텍사스주 크로포드목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ABM 조약 탈퇴 관련 보도와 관련, "존 볼튼 국무 차관이 미국의 ABM협정 탈퇴가능성에 대해 러시아측에 비공식이든 아니든 최종 시한에 관해 통보한 적이 없다"며 "최종시한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플라이셔 대변인은 그같은 입장이 미국이 금년내 ABM 조약에서 탈퇴하지 않을 것으로 받아들여도 좋으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렇지는 않다"며 "그에 대해서는 그와 같은 확실한 언질을 할 수 없다"고 답변해 강한 여운을 남겼다.

필립 리커 국무부 대변인도 "볼튼 차관은 11월 미-러정상회담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이를 `인위적 최종시한'으로 간주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지적, "미국의 ABM 조약 탈퇴관련 보도는 잘못된 것"이라며 "볼튼 차관은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어떠한 최종시한이 있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리커 대변인은 그러나 "물론 미국은 ABM 조약 탈퇴라는 선택권을 갖고 있다"며 "우리가 탈퇴를 필요로 한다면 그것은 별도의 문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ABM 조약 탈퇴 보도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입장은 한마디로 '오보이지만, 탈퇴할 가능성은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상의 긍정도 부정도 아닌 입장표명으로 정리할 수 있다.

러시아 "탈퇴는 반대, 수정은 가능"

부시 행정부이 ABM 조약 탈퇴 가능성을 강하게 제기한 것에 대해 러시아는 "ABM 조약을 미러가 함께 탈퇴하는 것은 반대하지만, 조약의 일부분을 수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협의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23일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러시아는 볼튼의 방러기간에 ABM 조약 수정 협상에 대해 강경한 자세를 상당히 누그러뜨린 것으로 보인다. 또한 러시아에 협의시한을 제시해 파문을 일으킨 당사자인 볼튼은 ABM 조약에 대해 푸틴이 미국을 방문하는 11월전에 양국간의 합의가 성사되기를 희망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11월이 "엄격한 시한(hard deadline)"은 아니라고 말한 것으로 워싱턴 포스트는 전했다.

이와 관련해서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러시아 외교부의 고위 관리는 "우리는 미국과의 협의 때 ABM 조약을 보존해야 한다는 명확한 입장을 표명했다"고 밝히면서도 "(그러나) 우리는 (ABM 조약이 체결된 때와는 다른) 탈냉전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한 전략적 안정에 대해 현재의 체제에 약간의 수정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 미국에 동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혀 주목을 끌고 있다.

ABM 조약에 대해 부시 행정부는 냉전시대의 낡은 틀이라며 새로운 전략적 합의틀의 마련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여왔고, 러시아는 ABM 조약은 미러간은 물론 전세계의 전략적 안정에 기여해왔고, 핵무기 감축의 시금석이 된 조약이라며 '보존'을 주장해왔다. 특히 러시아는 미국이 일방적으로 ABM 조약을 파기할 경우 핵무기 감축을 중단하고 미국과의 군비통제 약속을 전면 파기하겠다고 경고해왔다.

이것은 곧 부시 행정부가 정력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미사일방어체제(MD)에 대한 양국간의 시각 차이를 반영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지상은 물론, 해상, 공중, 우주 등에서 미사일요격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ABM 조약의 수정만으로는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러시아는 이러한 미국의 MD 구상이 현실화될 경우 자국의 핵무기 전력이 약화됨으로써 미국과의 전략적 균형이 무너질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미러간의 타협 종착점은?

표면적으로는 ABM 조약, 본질적으로 MD를 놓고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러시아 관계가 파국으로 흐를 것인가, 아니면 합의를 이룰 것인가는 양국간의 관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의 안보지형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수밖에 없다. 그 동안 중국과 북한은 물론 대부분의 국가들은 군비통제의 시금석이 되었던 ABM 조약을 내세워 미국의 MD 구상에 반대하거나 우려를 표명해왔다. 한국 정부 역시 지난 2월 말 한러공동성명을 통해 "ABM 조약을 보존하고 강화"하는 데 합의해 한미간의 갈등을 야기시킨 바 있다.

부시 행정부가 결국 강력하고 대규모의 MD를 구축하기 위해 ABM 조약 '탈퇴'라는 극약 처방을 내릴지, 그리고 푸틴 정부가 미국이 여기까지 가도록 내버려둘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부시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ABM 조약을 탈퇴할 경우 국제사회는 물론 미국 민주당과 대다수 언론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설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엄청난 정치적인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반면 러시아 역시 미국과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원치 않고 있기 때문에 부시 행정부의 요구를 계속 외면할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결국 현재로서는 ABM 조약 '파기'가 아닌 '수정'으로 가닥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부시 행정부가 탈퇴를 경고한 것은 본격적인 협상에 앞서 기선을 제압하려고 하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예상 가능한 수정 방향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현재 100기 이내로 제한하고 있는 요격미사일 수를 늘리는 것 △한 곳으로 제한된 MD 기지를 늘리는 것 △전국토 방어용 요격 체제 건설 허용 △해상 및 공중 등 이동식 요격체제 건설 부분적인 허용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수정 방향은 러시아의 전략적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부시 행정부의 MD 구상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골자로 하는 것이다.

현재에도 약 6000기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고, 미국과의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에 따라 약 1500-2000기로 핵탄두를 감축하기를 희망하고 있는 러시아는 위와 같은 ABM 조약 수정에도 자국의 핵전력이 크게 약화될 것이라고 판단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결국 미국이 러시아의 양보 대가로 얼마를 지불할 것인지, 그리고 제한적인 MD 구축으로도 막대한 전략적 손실이 불가피한 중국의 반발을 어떻게 달랠 것인지에 초점이 모아진다.

또한 MD의 1차 목표물로 북한을 삼고 있고, 이에 따라 한국 및 그 인근에 MD무기체계를 배치하려고 하는 부시 행정부 시대의 한반도에도 ABM 조약 수정과 이에 따른 MD 구축 가속화는 한반도의 상황을 더욱 예측 불허로 몰고 갈 것이다.

ABM 조약이란?

ABM 조약은 미국과 구소련이 1972년 체결한 군비통제 조약으로서 이후 군비경쟁을 완화하는데 시금석이 된 대표적인 조약으로 평가받고 있다. ABM 조약에서는 탄도미사일요격(ABM) 시스템을 비행중인 전략 탄도 미사일 또는 그 구성요소에 대항하는 시스템으로 규정하고 있고, ABM 요격미사일, ABM 발사대, ABM 레이더 등을 그 구성요소로 정의하고 있다.

ABM 조약은 탄도미사일방어체제(ABM=MD)에 대해 수도와 대륙간탄도탄 기지 중심 반경 150km 이내에 각각 하나의 ABM 체계만 배치 가능, 100기 이상의 요격미사일/발사대 배치 금지, 요격시스템 구축 한 지역으로 제한, 영토 전역 방어용 요격시스템 구축 금지, 이동식 요격시스템 구축 금지, 해상, 공중, 우주 또는 이동식 지상발사 ABM체계/구성요소의 개발, 시험, 배치를 금지, ABM 체계/구성품의 타국 이전 또는 국외 배치를 금지 등을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클린턴 행정부가 추진한 지상 NMD는 250기의 요격미사일 배치, 알래스카와 노스 다코타 등 두 곳에 시스템 구축, 미국 본토 방어용 등을 내용으로 추진된 것이기 때문에 ABM 조약을 위반하게 된다. 부시 행정부는 클린턴 행정부 때보다 훨씬 강력하고 대규모의 미사일방어망 구축을 밝히고 있어, 이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ABM 조약을 사실상 파기해야 되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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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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