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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원래 고향은 부산이다. 대학 들어오기 전에는 부산에서 20년 가까이 살면서 버스를 거의 타본 적이 없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혼자서' 타본 적은 딱 두 번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나에게 버스 타는 것은 안전 장치 없는 번지점프 하기와 매한가지이다.

왜냐하면 나는 목발을 애인삼아 다리삼아 세상을 휘젖고 다니는 이른바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장애등급 2급 2호 뇌성마비라고 명시된 장애인 카드를 가지고 다니면서 작지만 우리나라의 부의 편중을 막으며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꿈꾸며 장애인 할인 제도를 마구마구 이용하고 다니는 '나쁜 장애인'이다.

그러나 장애인이 무료인 지하철보다, 서울에 유학 온 지금은 버스를 더 자주 이용한다. 그것도 혼자서 말이다.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생각해 보라. 끈 묶지 않는 번지점프를 하는 기분을...)

더군다나 터전을 신촌에서 신림동으로 옮기면서 더욱 많이 버스를 탄다. 지금은 홍대 앞으로 옮겼다. 심지어는 다른 친구들에게 한 블록까지 정확하게 버스, 노선을 가르쳐 주면서 감격하고 스스로 대견스러워하는 내 자신을 종종 발견하곤 한다.


경찰, 장애인 버스타기 원천 봉쇄


물론 지금처럼 훌륭하게 버스의 착지점을 포착하기까지, 약간은 나를 의심쩍은 눈빛으로 바라보는 운전기사 아저씨를 보고 씨익 웃으며 버스 카드를 긋고, 제2 베이스 캠프인, 내리는 문 바로 앞의 좌석까지 무사히 도착하기까지는 모르긴 몰라도 올림픽 대표선수들에 버금가는 시행착오와 피나는 훈련을 했다고 자부한다.

내가 대학 들어와서 완벽하게 혼자서 버스를 타는 데 2년이 걸렸다.
먼저 정거장에서 정확하게 버스의 착지점을 알아내거나 막 출발하려는 버스를 욕먹지 않고 쫓아가 세우기까지 1년, 넘어지는 실수 없이 카드를 긋고 내리기 쉬운 자리를 확보하는 데 6개월. 그리고 안전하게 내리는 데 6개월, 그래서 합쳐서 2년이다.

하기야 이런 2년이란 시간은 나에게 있어서는 그리 긴 세월은 아니다. 어릴 때 혼자서 아침에 일어나 옷 입는 데 한 3년(단추를 끼는 데만 2년이 걸렸다. 요즘도 내 옷은 지퍼 달린 옷이 거의 없다), 신발을 갈아 신는 데 족히 4년, 다른 곳보다 장애가 심한 오른손으로 쓴 글씨를 남들이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쓰는 데는 제법 오래 걸려 9년이나 걸렸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내 인생에 함부로 불굴의 의지니 인간 승리니 그런 역겨운 간판은 절대 달지 마시라.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고 느린 것이 내 인생의 특징이고 나는 내 인생을 사랑하고 그건 그저 다른 사람과 하등 다를 바 없는 내 삶일 뿐이니까.(사실 이런 말 하는 것 자체가 마음에 썩 내키지 않는다.)

어쨌든 요즘은 새로운 번지 점프에 도전하고 있다. 바로 "출퇴근 시간에 버스타기"다.

짐작할 수 있겠지만 서울 출퇴근 시간에 버스나 지하철이나 할 것이 없이 사람들로 미어터질 지경이다. 또한 사람들의 발걸음은 좀이나 빠르나? 처음에 서울 와서 서울역에서 처음 지하철 탈려고 했을 때 나는 무슨 전쟁이 터진 줄 알았다.

말그대로 번지 점프의 높이를 상당히 높인 것이다. 나에게 있어 러시아워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버스 타기는 히말라야 번지점프와 한강대교 번지점프 딱 그 차이이다.

우선 버스 카드를 빨리 그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한테 떠밀려 다치거나 압사할 위험이 있다. 그리고 안전한 좌석 즉 베이스 캠프를 절대 확보할 수 없다. 등산이나 등정을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베이스 캠프 미확보는 바로 죽음이란 것을...

그런데 나의 장애 특성상 빨리 카드를 댄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어렵다. 버스 요금이 토큰제에서 카드제로 바뀌어 궁극적으로 나의 버스 타기를 가능케 했지만 목발을 한 손에 들고 한 손은 버스지지대를 잡고 입에 문 지갑으로 순간 손으로 바꾸어 그 찰나의 순간으로 카드를 긋는 나로서는 정말 진땀나는 일이다.

무엇보다 참기 어려운 것은 때때로 날아오는 아저씨들의 짜증스럽고 불안해 하는 눈빛이다. 백분 이해는 간다. 내가 만약 넘어져서 다치기라도 하면 그건 전적으로 운전 아저씨들의 책임이거니와 내가 나쁜 마음을 먹기라도 하면 난폭운전으로 5만원 이상의 과태료도 물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과거와 달리 고마운 기사 아저씨들도 많다. 사람들에게 말해서 자리를 양보케 하는 무지 막지 돈키호테형 아저씨에서부터 급정거 급출발을 자제하는 햄릿형 아저씨... 내가 자리에 앉거나 일어서서 내릴 때까지 출발하지 않는 아저씨까지 정말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그렇다고 난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내가 타는 의사 표시를 했어도 그냥 지나가거나 장애인이 타면 재수가 없다고 하는 아저씨, 그리고 거리의 노점상이나 거리의 개인 벤처 사업가(소위 앵벌이)님들이 싹쓸이 단속을 당하실 때는 상대적으로 단속히 덜한 버스로 몰려 기사 아저씨들이 자주 오해하곤 했다.

다른 사람들이나 친구들이나 그렇게 늘 짜릿한 모험을 즐기는 나에게 걱정스럽게 차를 몰고 다니라는 충고를 해주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별로 그럴 생각이 없다. 안그래도 버스 타는 장애인은 나조차 거의 본 적이 없는데 나까지 버스를 안타면 우리나라에는 언제 장애인용 버스를 만들겠는가?

가까운 일본 교토에도 장애인이 탈 수 있는 버스가 운행되고 있고 우리보다 지하철 편의 시설이 떨어지는 영국 프랑스에서도 장애인 버스는 의무조항으로 돌아다니고 있다. 나의 목숨걸고 버스타기는 미약하지만 우리나라 교통혁명에 일조할 수 있지 않을까?

올해 들어설 연휴에 일어난 지하철 안산선 오이도역 장애인 수직형 리프트 추락참사로 야기된 장애인들의 이동권 문제가 연이은 장애인들의 강도 높은 투쟁으로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사회적 합의를 요청하고 있다.

혹자는 그러한 장애인들의 요구는 우리나라에서는 과도한 주장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하기야 장애인을 강간하거나 살해를 해도 죄를 묻지 않은 사회에서 장애인도 편히 버스를 타자는 주장은 다분히 역차별적이다.

그러나 이제 장애인들도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나도 안전하고 편리하게 버스를 타고 다닐 권리를 가진다고 말이다.

누군가 말했던가?

"혁명과 투쟁은 우연이나 사상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완성되고 시작되어지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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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eduable.jinbo.net) 사무국장을 맡아 장애인들의 고등교육기회확대와 무장애배움터 실현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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