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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은 우리 조상이 아니고, 고조선 역시 한국사의 시원이 아니다." 충격이다. 우리는 그 동안 이 역사적 사실에 대해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은 바로 그 동안 우리가 통설로 믿고 있던 우리 역사의 최대 쟁점에 대해 정면으로 비판의 메스를 들이댄다.

'화해와 협력'이라는 두 단어로 요약되며 잘나가던(?)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최근 들어 서로 대립각을 첨예하게 세우게 만든 것은 아무래도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일 터이다.

바로 그 문제의 후소샤판 중학교 역사교과서에서 왜곡한 문제 중 첫 번째로 등장하는 것이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이다. 당신도 알다시피 이 임나일본부설은 일본이 4세기 중엽에 가야 지역을 군사정벌하여 '임나일본부'라는 통치기관을 설치하고 6세기 중엽까지 한반도 남부를 경영했다는 주장이다.

임나일본부설의 허와 실

그런데 이 주장은 이미 일본에서조차 거의 용도폐기 되고, 대신 임나일본부가 가야지역에 있던 왜국계 주민의 자치기관이라거나 가야와 왜의 교섭을 맡는 기관이라느니, 왜가 설치한 상업적 목적의 교역기관이라느니 하는 등 다양하게 가지를 뻗고 있다.

얼핏 보기에 이같은 흐름은 애초의 주장에서 크게 후퇴한 듯 보이지만 '통치했다'는 단어만 안 썼을 뿐 한반도 남부에 대한 정치 군사적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우리 학계의 반론 수준은?

일단 한심하다는 것이 여기서 리뷰하는 책 '한국사는 없다'(사람과사람 펴냄)의 글쓴이 이희근의 주장이다.

임나일본부는 왜의 가야 통치기관이 아닌 '백제군사령부'라는 학설이 거의 유일하다는 것. 더욱 가관인 것은 이 설의 결정적인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제기된 추론적 수준에 불과해 우리 학계에서조차 거의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

이 책은 바로 이같이 우리가 사실로 철썩 믿고 있던 한국사의 통설에 대해 통쾌한 비판과 반론을 제기한다.

책제목이 한때 베스트셀러의 대명사로(?)로 통하기도 했다가 요즘 다시 세를 얻기 시작하는 '…없다'류를 채택하고 있어 다소 선정적인 느낌이 앞서긴 하지만 책 안으로 들어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대중에게 친숙한 역사학자, 이희근

그렇다고 예의 역사를 다룬 책들이 갖는 일반적 분위기인 딱딱하고 지루한 느낌을 예상했다면 일단 안심해도 된다.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1, 2」나 「한국사-그 끝나지 않은 의문들」, 「유물로 읽는 우리 역사」 등 전작을 통해 대중에게 친숙하고 편견이 없은 역사학을 보여준 이희근의 글힘이 이 책에도 여지없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의 출발점인 단군 문제부터 짚어 보는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고조선상부터 깨부순다. 고려 중기까지만 해도 단군은 평양 지역 일대의 시조에 불과했고, 단군신화는 평양지역에 거주하는 일부 고조선 유민들의 전승설화였다는 것.

그러던 것이 고려 후기에 이르러 이 설화가 <삼국유사>나 <제왕운기> 등에 실리면서 비로소 단군이 민족의 시조이며 그가 건국한 고조선이 한국사의 시원이라는 지금의 고조선상이 성립되었다는 것.

그러면 고려 중기까지는 누가 한국사의 출발점이었을까. 여기에 대해서 이 책은 사료상으로 보면 기자조선이었다고 말한다. 민족의 시조 또한 단군이 아닌 기자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

왜, 이렇게 됐을까에 대해 이 책은 당시 원나라와의 잘못된 사대관계를 정상적인 사대관계로 바로잡기 위한 소중화의식의 산물이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믿는, 그러나 바로잡아야 할 통설들

때문에 이 책은 한민족 전체가 아닌 평양지역 일부 주민들의 전승기록을 토대로 만들어진 고조선상이 과연 역사적 실체에 부합할 수 있는가고 반문한다.

이렇게 이 책은 이것말고도 아홉 가지나 더 우리가 역사적 사실로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그 아홉 가지를 살펴 보면, △광개토왕비문의 왜는 한반도 남부 세력 △한일 기마민족설은 역사적 상상력의 산물 △신라는 삼국통일할 뜻도 능력도 없었다 △훈요십조는 조작되지 않았다 △전근대시대엔 지역차별이 없었다 △미륵사상은 체제변혁사상이 아니다 △실학은 조선 왕조체제 유지 위한 보수개혁사상 △조선 후기에 신분제는 해체되지 않았다 △동학농민봉기는 반봉건 근대적 운동이 아니다 등.

어쨌든 이 책이 엄숙주의로 팽배한 기존 역사학계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들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역사 해석의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논쟁이나 연구의 성과물로 나타나길 기대한다.

다만 내가 여기서 덧붙이고 싶은 것은 내가 일단 이 책의 주장을 최대한 받아들여 보면 그 동안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지식이 얼마나 허구였는가 하는 충격보다도 내 안의 파시즘처럼 자리잡은 고정관념의 무서움이다.

한 가지 다행은 열린 가슴으로 우리 역사를 새로이 들여다보도록 아주 쉽고 친절하게 이 책이 안내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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