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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에도 영국상원(귀족원) ‘의원선임위’는 종신의 상원의원직을 겸하는 15명의 새 귀족을 선임했다.

이들 신임 귀족상원의원들은 각자의 삶을 공인받아 순수한 스스로의 업적에 의해 ‘귀족’이 되었으며 앞으로 종신토록 상원의원의 직위를 누리게 되는데, 이들은 각자의 형편이 다 달라도 선발자격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선발된 신임 귀족 모두가 각자의 전문분야, 예컨대 학자 의사 스포츠계 기업가 농민 교육가 법조인 언론인 근로자 등등 사회 각계층에서 객관화된 최고의 업적을 세운 사람이라는 점이다.

둘째는 모두가 각자의 생업적 활동뿐만 아니고 직접적으로 자선활동의 능동적인 주체로서 입증된 실적이 최소 수십년간에 걸쳐 객관화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선활동에 이름만 걸어놓고 금전만 내놓는다든지 이름만 홍보하는 케이스는 전혀 없다.

자신의 본분에 충실해서 사회의 각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사람은 사실 부지기수로 많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귀족’의 선발에는 ‘사회적 봉사와 책임’이라는 둘째 요건이 첫째 이유 못지않게 더욱 중요했음이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렇다면 왜 그럴까. 고귀한 신분에는 그에 합당한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Noblesse Oblige). 원래는 프랑스어에서 유래된 영어 ‘노블리스’는 귀족계급 혹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나 계층을 지칭하는 말이다. ‘오블리제’는 도덕적인 의무감과 책임을 말한다. 따라서 ‘노블리스 오블리제’란 사회적 지위가 높은 계층에 부과되는 도덕적 의무를 강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런던의 선데이 타임즈가 집권 노동당의 자금동원책임을 맡고있는 천만장자 리바이경이 98/99회계연도에 개인납세액으로 5천파운드(약 1천만원)의 세금만을 납부했고 이 액수는 국민소득 평균치에도 미달하는 연 2만1천파운드 소득자의 납세금액과 같은 것이라는 폭로성 기사를 실어 관계자들을 곤혹하게 만드는 사건이 있었다.

이에 대해 집권노동당과 리바이경측은 당시 세금납부액은 신규투자의 과다로 인한 수익부진에 의한 것으로 해당 납세연도중 소득이 별로 발생하지 않은 합법적 결과임을 입증하였고 동시에 신문과 불법적으로 개인의 세무내용을 유출한 책임자에게까지 법적조치를 공언했었다.

그러나 대중여론이 합법 비합법을 떠나 집권당 소속의 천만장자 사업가 정치인에 대해 발표대로 납득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가 ‘노블레스’에 해당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리바이경측이 발표한 것이 사실이고 합법적이라 할지라도 사회적으로 특혜를 받는 노블리스가 ‘오블리제’를 행하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한편 영국을 얘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립고등학교’(public school)는 분명 이들 ‘노블리스’들의 산실이다. 그러나 이곳 사립학교는 단순히 ‘돈이 많은’ 사람들을 위한 곳은 아니다. 영국은 더 이상 징병제가 아니고 지원모병제여서 누구에게도 병역의 의무가 없지만 ‘조국의 지도자를 양성한다’는 모토아래 이들은 재학중 학교가 미리 선택한 육해공군의 학군단에 자원입대하여 군의 초급간부로서의 군사교육을 마치게 된다.

또한, 이들은 유사시 몇 주간의 보충교육 후 사관 또는 부사관으로 임관하여 바로 최전선으로 가서 초급지휘자로서 ‘나를 따르라’의 전사율이 높은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분명한 것은 이들이 기꺼이 이러한 길을 택하는 것은 명백한 장애자 이외에는 도저히 빠질 수 없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사회적 본분 때문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역사상 사립학교의 졸업생들은 유사시 생명을 바치는 군의 최일선 초급지휘자로서 많은 이들이 전사했으며 모교내에는 그들의 명복을 비는 ‘포충탑’과 같은 기념물이 모두 있을 정도로 중요시 된다.

‘퍼블릭’(공공)이라는 용어가 사립학교에 쓰이는 연유도 여기에 기인한다. 즉, 나라와 공공의 이익을 위해 멸사봉공하는 정신과 육체를 가르치는 학교라는 의미.

왕족도 예외가 아니어서 80년대초 포크랜드전쟁이 발발했을 때 왕자도 최일선에서 목숨을 내놓고 싸웠다. 다만 시대적 변화가 있다면 현재의 ‘노블리스’는 왕족 귀족 등의 구개념보다는 유명 사립학교와 일류의 대학출신을 의미하는 것으로 변한 것.

결국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혜택받은 층의 솔선수범을 통한 책임을 묻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지키지 못하는 사회 따라서 지도층을 비난하는 '높은 놈' '가진 놈'이라는 비어가 보편적으로 쓰이기도 하는 한국, 그 중에서도 최근 유난히도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든지 군복무자를 신판’팔불출’로 부르기도 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지켜지지 않는 고국소식을 접하면서 무엇인가 국가사회로부터 혜택받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의 솔선수범과 책임을 기대해본다.

“당신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점수는?”

현대 영국의 지도층인 사립학교와 명문대졸업자는 직업의 종류에 관계없이 대개 다음과 같은 신사도의 공통점을 가진다.

◆ 실력이 있다. 겸손하고 프라이드가 있다.
◆ 영어의 악센트가 특이하다.(소위 퀸스 잉글리쉬)
◆ 복장이 어두운 색의 정장이다.
◆ 행동이 점잖다. 언어가 순화되어 있고 욕설이 없다.
◆ 주차와 속도 등 사소한 부문까지도 준법정신이 투철하다.
◆ 군주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하다.
◆ 뇌물을 주지도 받지도 않고 선물을 받으면 내역을 명시하여 감사의 편지를 보낸다.(영수증인 셈으로 뇌물방지결과가 된다)
◆ 자선활동이 생활의 일부가 되어있다.
◆ 공정무사(Fair)를 절대 존중한다.
◆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특히 선서를 철저히 지키고 위반하지 않는다.
◆ 어디서나 주인같은 의식으로 일한다.
◆ 화장실 소변기에 정조준하고 바지 앞지퍼를 그 자리에서 닫는다.
◆ 바지 옆호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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