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들 현이 세 돌이 지나도록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해 걱정했었는데, 이제는 제법 하나 둘 말을 하고 있다. 그 전에는 문장 전체를 하기보다는 몇 개의 단어를 나열하는 데 그쳤었다. 근데 이제는 단어 나열 수준을 넘어 조금씩 한 문장 전체를 이어서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문장이라고 해 봐야 여전히 고작 몇 개의 단어로 이루어진 것에 불과하다.
최근 이 녀석에게 들었던 말들 중에 한참 동안 나를 황당하게 만들었던 말은, "아빠, 미안해!" "아빠, 식사하자!" 등이었다.
녀석이 장난감을 들고 가다가 장난감이 내게 떨어지자 대뜸 "아빠, 미안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저녁에 퇴근해서 엄마가 저녁식사를 다 준비하고서 "현아, 아빠에게 식사하시라고 해라"라고 얘기했더니, 녀석은 내게 "아빠, 식사하자!"라고 얘기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황당하기도 했지만 '어느새 녀석이 이만큼 자랐구나'라는 생각에 대견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얼마나 극성스러운지 아무리 타일러도 소용이 없다. 정말 말그대로 '소 귀에 경 읽기'이다.
간혹 큰녀석은 이제 갓 9개월이 된 둘째녀석을 '툭' 건드려 기어이 둘째의 대성통곡을 듣게 만든다. 또 장난감 놀이를 하다가 아무 것도 모르는 동생이 자신의 장난감에 손이라도 댈라치면 매몰차게 뿌리치는 것이다.
그 때마다 "그러지 말아라, 그러면 동생이 넘어져 다친다"라고 몇 번 말로 타일러 보지만 이 녀석은 아예 들은 체도 하지 않는다. 그러면 결국 다음에는 큰 소리를 치거나 한 단계 나아가 매를 들게 되는데, 어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 때 큰 녀석이 하는 말, "아빠는 미워. 엄마가 더 예뻐!"
예전에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상대방이 누구든지 관계없이 "바보"라고 해서 한동안 큰 녀석에게 바보 취급을 당했었는데, 이제는 수시로 미운 아빠가 되고 있다. 하지만 다행히 이 녀석이 꿍한 성격이 아니라 눈물을 뚝뚝 흘리다가도 뒤돌아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바로 '헤헤'거리며 달려든다.
그리고 이 녀석에게는 한 가지 신기한 점이 있다. 아빠가 엄마를 또는 엄마가 아빠에게 장난으로 때리는 시늉을 하면 반드시 때리려는 사람에게 가서 양 허리에 양손을 얹고는 '씩씩'거리면서 가해자(?)를 발로 찬다. '왜 그러냐?'는 셈이다.
이제 엄마나 아빠도 이 녀석이 있는 자리에서는 함부로 상대방을 때리거나 꼬집는 장난을 치지 못한다. 더욱이 첫째가 없는 자리에서도 자신이 불리한 처지에 몰리게 되면 큰 소리로 첫째를 부른다.
그러면, 이 녀석은 마치 정의의 사도처럼 재빠르게 뛰어 와서는 그 때의 상황을 자기 나름대로 판단한 후, 해(害)를 가했다고 생각되는 사람 앞에 가서 위의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누구 한 사람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공평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아직까지 이 녀석에게 있어 아빠는 모든 것을 알고 있고, 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능력의 소유자인데,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게 사실이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고 또 하나 둘 자신의 의견을 먼저 내세우기 시작할 것이다. 어른의 틀 안에서 어른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기 보다는 가능한 녀석의 입장을 생각해줄 수 있는 어른(부모)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어느때보다 절실해진다.
덧붙이는 글 | 기자 등록을 한 후 처음으로 쓴 글입니다. 앞으로 두 아들을 키우는 아빠로서 겪게 되는 일상생활과 보다 나은 부모의 역할에 대해 열심히 생각하고 실천해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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