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미국 정부가 걸프전 이후 이라크의 상수도 시설을 고의적으로 파괴해오고 있다는 물증이 미국 정보기관으로부터 나왔다. 조지타운 경영대학원 교수인 토마스 나기가 지난 2년간 미 정부 문서를 추적해온 결과, "미국 정부는 상수도 파괴 공작이 이라크 민간인, 특히 어린이들에게 어떤 결과를 낳을지 잘 알면서도, 이 공작을 계속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진보적인 잡지인 <더 프로그레시브>(http://www.progressive.org) 최근호에 기고한 글에서 나기 교수는, 국방정보기관(DIA)이 1991년 1월 22일 작성한 '이라크 상수도 처리의 취약성'이라는 문서를 찾아내, 미국 정부가 어떻게 고의적으로 이라크의 상수도 시설을 파괴해왔는지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이 문서에는 이라크의 상수도 인프라, 특히 정화처리의 경우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있다며, "이러한 물품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면, 이라크 인구의 상당수가 식수 부족과 이에 따른 질병으로 고통을 겪을 것"이라고 적혀 있다.

또한 이라크의 하천에는 생물학 물질, 오염물질이 포함되어 있고 박테리아가 득실거리기 때문에, "이 물을 '염소'로 정화하지 않고 마실 경우, 설사, 복통은 물론, 콜레라, 간염, 장티푸스 등 전염병이 창궐할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염소는 미국이 주도하는 대이라크 경제제재로 이라크가 들여올 수 없는 품목이다.

상수도 파괴에 따른 고통은 정화되지 않은 식수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DIA 문서에서도 "음식 처리, 전기 발전, 특히 제약 공장에서는 생물학 오염 물질이 포함되지 않은 깨끗한 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적고 있어, 미국의 고의적인 이라크 상수도 파괴로 이라크 주민들이 겪어왔을 고통을 가늠하게 한다.

DIA 문서에서도 이라크는 정화된 물의 부족으로 고통을 겪을 것이라며 "이라크 주민들이 물을 끓여 먹지 않으면, 전염병 등의 질병이 만연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하고 있어, 미국의 경제제재로 이라크가 어떤 고통을 겪을지 잘 알고 있음을 내비치고 있다.

"6개월이면, 이라크 상수도 시설은 파괴될 것"

놀라운 것은 DIA 문서에서 이라크 상수도 정화를 위해 필요한 물품이 공급되지 않을 경우 "적어도 6개월이면 이라크의 상수도 시설이 사실상 완전히 파괴될 것"이라는 일종의 상수도 파괴 시간표까지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제재전부터 물부족을 겪어온 이라크에 경제제재를 가할 경우 어떤 결과를 낳을지 미국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기 교수는 "이 문서가 1995년에 비밀해제됐으나, 일반에게는 공개되지 않았다"고 밝히면서, 자신은 이 문서를 작년 가을에 미 국방부가 운영하는 걸프전 관련 웹사이트인 'www.gulflink.osd.mil'에서 찾았다고 밝히고 있다.

나기 교수는 이 문서 외에도 상수도 시설이 파괴될 경우 이라크에서 발생할 질병 분석을 담은 '질병 정보', 이라크 폭격으로 야기될 질병 문제를 담은 '이라크에서의 질병 발생', '이라크의 의약품 부족', '난민 캠프의 질병 현황', '1991년 6월 이라크의 보건 상태', '이라크의 보건 위기 및 능력에 대한 평가' 등의 문서를 찾아내, 미국이 알면서도 이라크의 인도주의적 위기를 어떻게 조장해왔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이러한 명백한 인도주의적 범죄의 책임을 사담 후세인에 돌려왔다. 후세인 정권이 생필품을 은폐, 차별적인 분배, 긴급구호 물품의 전용 등을 일삼아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문서들은 경제제재가 가해지기 전과 후의 의약 시설과 상수도 시설이 어떻게 달라질지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상세히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제네바 협약에서도 "어떠한 목적으로도 민간인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음식, 작물, 가축, 식수, 관개, 의약 시설을 파괴하거나 쓸모없게 만드는 것을 금지한다"고 명시하고 있어, 미국의 대이라크 경제제재가 명백한 국제법 위반임을 말해주고 있다.

지난 6월 7일 미 하원 청문회에서 신씨아 맥킨니 민주당 의원은 "이라크의 상수도 시설을 공격하는 것은 민간인을 겨냥한 극악무도한 행위이며, 제네바 협약과 문명화된 국가의 기본법을 위반하는 것이다"고 주장하면서, 즉각적인 경제제재 해제를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지난 10년간 상수도 정화에 필요한 화학 약품과 장비를 경제제재 목록에서 제외시킬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철저하게 외면하면서 무고한 이라크 주민들의 사망자 수를 늘리고 있다. UN은 경제제재의 결과 약 50만명의 어린이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고, 현재에도 매달 5천명의 어린이가 죽어가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이러한 이라크의 인도주의적 참사를 계속 조장하면서 벌이고 있는 부시 행정부의 '테러와의 전쟁'이 전세계인들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지지를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덧붙이는 글 | 대이라크 경제제재의 참상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평화네트워크 홈페이지(http://www.peacekorea.org/dispute/intro.htm)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