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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린(吉林)성 지안(集安) 시의 고구려 고분인 삼실총(三室塚)과 장천 1호분의 고분 벽화가 도난당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올 여름 집안 여행의 여정을 떠올렸습니다.

비류수 줄기를 거슬러 비포장 길을 여덟 시간 달리자,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큰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큰 집이라는 그곳은 결코 화려한 현대식 도시가 아닙니다. 우리 나라의 군 소재지 정도 되는 작은 마을입니다.

회색이나 옅은 노란색의 회칠을 한 집들이 마음을 가라앉게 하는 곳, 때때로 북한 사람들을 마주치기도 하는 집안은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였습니다. 졸본성에서 옮겨와 다시 평양성으로 천도하기 전까지 약 425년 동안 고구려는 이 집안에서 삶의 뿌리를 내렸습니다.

그래서인지, 집안에서는 시간이 멈춰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광개토대왕비나 장군총 같은 고구려의 유적은 따가운 여름 햇살에 제 몸 말리며 서 있었고, 오회분 오호묘는 웃자란 풀을 머리에 이고 천년이 훨씬 넘는 시간을 견뎌내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마치 시간을 쌓아올린 먼지처럼, 세월의 더께를 고스란히 덮어쓰고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유물들보다도 집안을 더 시간의 도시로 만드는 것은 도시의 분위기입니다. 호텔의 온수도 시간제로 급수되고, 일급 호텔이라는 곳에 바퀴벌레가 기어다니며, 휴지도 우리 나라 7,80년대처럼 분홍색에 거친 것들뿐입니다. 아침이면 시 정부 청사 앞으로 모여들어 느릿느릿한 춤을 추는 사람들, 사람들이 있거나 말거나 강력한 물을 도로에 내쏟으며 달려가는 살수차, 없는 손님을 새벽부터 기다리는 인력거 아저씨들이 그 도시를 더욱 가라앉게 만듭니다.

나를 안내해준 인력거꾼인 조선족 아저씨는 새벽 시장에서 삶은 땅콩을 사주기도 했고, 시장 곳곳을 이웃집 아저씨처럼 안내해 주었습니다. 그에게 주기로 한 인력거 삯이 2원. 나는 그에게 10원을 주었습니다. 그래도 미안했습니다.

그리고 집안에는 국내성이 있습니다. 밑둥만 남은 그 쓸쓸한 성. 해자는 메워지고, 그 위에 아파트가 서 있습니다.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아랫부분을 안쪽으로 휘어지게 만들었던 성은, 이제 아랫부분은 다 땅 속에 묻히고, 그저 서너 단의 돌만 남아 있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국내성의 돌을 만져보았습니다. 성 위에는 잡풀만 남아 바람에 나부끼는 곳, 그러나 세월의 더께를 흠씬 덮어쓴 채로 남아있는 그 고구려의 돌들은 의외로 따뜻했습니다. 나는 그 돌을 만지면서, 그토록 오랜 세월을 거슬러 고구려인들의 체온이 내게로 전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가졌습니다. 아, 국내성의 그 쓸쓸함이여! 집안의 외로움이여! 고구려의, 아니 역사의 허망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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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 <물골, 그 집>, <람풍>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 <무지개 너머 1,230마일>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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