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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언제 한번 내설악을 거쳐 대청봉에 올라 외설악으로 내려가면서 설악의 비경을 구경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는데 토요일(10월 6일) 일과 후 갑자기 실천에 옮기기로 결심하였다. 부산 시민회관 앞에서 밤 10시에 출발한 버스는 7시간 운행 끝에 다음날 새벽 5시 해발 450미터의 오색온천에 도착했다.
오색온천은 원래 오색약수터 유명세로 온천 숙박지구가 개발되었는데 온천의 개발로 약수의 수량이 많이 줄었다고 주민들은 아쉬워한다. 오색약수는 철분과 탄산이 다량 함유된 최고의 약수로 선전하고 있으나 몇 년 전 30여분을 기다린 끝에 맛 본 약수는 설탕을 첨가하지 않은 사이다 맛으로 기억하고 있다. 머뭇거릴 시간 없이 배낭을 메고 매표소를 통과하니 먼저 도착한 등산객들의 손전등 불빛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어두운 새벽길을 30분 가량 오르니 하산하는 등산객들이 점점 늘어만 갔다. 벌써 정상에 갔다 오느냐 물으니 "한시간 반이나 추위에 떨었다"며 "대청봉까지 사람들이 밀렸는데 하루 종일 기다려도 못 올라 갈 것"이라고 했다. 온천에서 목욕이나 하고 가야겠다며 투덜대며 하산을 했다. 전국에서 모여든 여러 산악회 소속 등산객들이 등산을 포기하고 하산을 했다. 이날 새벽 이곳에서 길이 막혀 등산을 포기한 등산객은 수백 명이나 되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내가 속한 산악회 리드를 만나 계속 올라 갈 거냐고 하니 "계획대로 산행은 하면 된다"고 하면서 등산객 무리 속으로 사라졌다. 등산객이 얼마나 많았던지 12시간의 긴 산행 중에 동행한 40여 명의 일행을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등산로가 갑자기 좁아지는 병목 지점에는 출퇴근 길 만원 지하철을 연상케 하였다. 도심의 체증 현상이 깊은 설악의 산중에도 빚어지고 있었다.
설악폭포까지 지체를 거듭하였고 병목 구간을 벗어나 내리막길 옆에 아줌마가 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어 보호대로 응급조치를 하고 추위에 떨고 있었다. 남편인 듯한 일행이 구조를 요청하는 것을 보고 별 도움이 되지 못할 것 같아 발걸음을 옮겼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떠밀리다 보니 어느새 병목 구간을 통과했다. 이때쯤 어둠이 엷어지며 동해로부터 아침이 열리고 있었다.
병목 구간을 지나 가파른 오르막을 한 시간 넘게 쉬지 않고 오르니 "위치번호 06-07"지점에 도착하였다.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표지판을 훑어보니 대청봉 0.5㎞, 오색온천 4.5㎞라는 안내 문구 표시가 있다. 설악산에는 등산로 구간마다 위치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 곳을 지날 때 위치번호를 잘 기억해 두면 조난이나 부상자 발생 시 또는 목적지 이동간 좌표로도 요긴하게 쓰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오색온천에서 대청봉 오름 길은 가파른 경사의 연속으로 볼거리가 별로 없는 단조로움의 연속이다. 이 코스를 많이 택하는 이유는 대청봉에 오르는 여러 개의 코스 중 가장 짧은 코스이기 때문이다. 단 시간에 대청봉 정상에 올라 하산 길에 내설악이나 외설악의 절경을 당일 코스로 즐기기 위함이다.
5시에 오색온천 매표소를 출발하여 지체와 오름을 거듭하다가 3시간 50분만에 해발 1708 미터의 정상에 섰다. 대청봉을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향로봉과 금강산을, 남쪽으로는 점봉산과 오대산을 끼고 있다. 설악산은 눈(雪)과 바위(嶽)산으로 한라산과 지리산에 이어 남한에서 세 번째로 높다. 바위가 눈과 같이 하얗다고 하여 설악(雪嶽)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도 전해진다.
대청봉 정상 표지석 주변에는 기념 촬영을 하는 사람들이 뒤섞여 내가 찍히는지 남을 찍는지 분간하기 어렵다. 화채능선 너머 멀리 동해 바다는 해무 때문에 희미하고 꿈틀거리는 공룡능선 끝자락 저편에는 울산 바위가 하얗게 솟아 있다.
중청을 잇는 능선의 남쪽 사면에는 솜이불 안개 속에서 울긋불긋한 가을 산이 드러났다가 사라지고 동해쪽의 우측 능선에는 매서운 바람 때문에 난쟁이가 되어버린 잣나무 군락이 엎드린 채 숨죽이고 있다. 대피소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중청봉으로 오르는 병목 구간을 지나 소청봉으로 내려섰다.
10시 20분 소청봉 삼거리 갈림길에 도착했다. 설악을 대표하는 용아릉, 공룡능선, 화채능선이 하늘을 떠받들며 산꾼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곳은 3개 능선 모두를 굽어볼 수 있는 곳으로 내. 외설악으로 가는 갈림길이 된다. 우측 길은 공룡능선과 천불동 계곡의 외설악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좌측은 봉정암을 거쳐 백담사로 내려가는 길이다.
설악산을 내설악과 외설악으로 구분하는데 대청봉-공룡릉-마등령능선을 기준으로 동쪽 바닷가 쪽을 외설악, 서쪽 내륙지역을 내설악이라 부른다. 동해 쪽 외설악지역은 경사가 가파르며 암봉과 폭포가 발달한 반면에, 내설악은 비교적 산세가 완만하고 부드럽다.
11시, 소청산장을 지나 봉정암에 도착했다. 소청봉 기슭(1244m)에 자리한 봉정암은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뒤편에 지장봉, 나한봉, 석가봉 등이 지키고 있고, 오른쪽으로는 기린봉, 할미봉, 범바위가 병풍처럼 펼쳐져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봉정암은 오대산 상원사와 양산 영취산의 통도사와 함께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 중 하나로 5층의 사리탑에는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져 온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다고 전해온다.
"봉정암에서 기도하면 한가지 소원은 이룬다"는 소문이 불자들 사이에 널리 퍼져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여기 저기 공사현장에는 기계 소리가 요란하고 사세(寺勢)를 확장하기 위해 기와에 이름을 올려주고 불사 받는 장면도 눈에 띄었다. 이젠 높고 깊은 산중의 이 암자에도 호젓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등산객의 출입과 숙박을 금한다는 표시가 여러 곳에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밀려드는 등산객을 맞아 줄 여유가 없어 보였다.
설악의 단풍은 붉은 색은 단풍나무, 벚나무, 박달, 개박달 등이 만들어 내고, 노란색은 물푸레나무, 피나무, 엄나무, 층층나무가, 주황색은 옻나무, 신갈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 등이 엮어내고 있다. 여기에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절경을 만들어낸다. 중청봉의 정상 부근에는 벌써 앙상한 가지만 남았고 단풍은 외설악의 회운각과 내설악의 봉정암을 지나 점점 내려가고 있었다. 다음 주말쯤에는 천불동과 수렴동 계곡이 타오를 것 같다.
봉정암을 출발하여 깔딱 고개로 내려섰다. 길목에 띄엄띄엄 서 있는 단풍나무 잎은 빨간 물감에 담근 듯 농도가 짙고 낙엽 속을 뒤지며 가을을 줍는 다람쥐는 사람 오는 줄도 모르고 열심이다. 한 스님과 소녀가 고개를 오르다가 힘이 들었는지 퍼져 앉아 있다. 소녀는 눈물을 찔끔거리며 매우 힘들어했다. 스님이 "이 고통을 이겨내야만 성숙해진다"며 갈 길을 재촉하자 소녀는 "성숙 안 해도 좋으니 더 이상 못 가겠다"면서 되받았다. 머쓱해진 스님이 빙그레 웃으며 소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구곡담계곡(九曲潭溪谷)의 비탈길을 1시간 가량 내려가니 Y자 모양의 폭포가 나타났다. 구곡담 계곡 상류에서 흘러내리는 폭포와 쌍폭골에서 흘러내리는 폭포가 Y자 모양으로 합쳐져 쏟아진다. 쌍룡폭포(쌍폭)인데 두 마리의 흰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상상하여 이름지었다고 전한다. 하얗게 쏟아져 내리는 양쪽의 두 물줄기는 눈이 부시고 암담(巖潭)에 담긴 녹색 빛 물은 밑바닥이 훤하도록 투명하다. 누군가 운 좋으면 열목어가 띄어 오르는 장면을 볼 수가 있다고 했지만 운이 없었는지 그런 장면은 보지 못했다.
구곡담계곡의 우측은 하늘을 치받고 선 용아릉이 장쾌하다. 그 밑을 감고 도는 계곡 물은 폭포수를 이루고 담(潭)과 소(沼)를 만들어낸다. 장구한 세월에 닳은 흰 암반에는 미끄러지는 옥수가 거침이 없다. 옥수에 땀을 씻으니 상쾌함이 가슴속까지 파고든다. 좌우로 이어지는 비경을 간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오후 1시 30분, 대청봉에서 5.9㎞ 거리에 있는 수렴동 대피소에 도착했다. 대청봉에서 4시간 반, 봉정암에서 2시간 20분이 소요되었다. 정체 구간이 있었던 관계로 평균 산행 시간과는 다소 차이가 날 수 있다. 수렴동대피소에서 해가 지기 4시간 전에 출발해야 봉정암이나 소청산장에 도착할 수 있다고 하니 이 곳을 통과하는 초행자들은 산행에 소요되는 시간에 유의해야 한다.
수렴동계곡(水簾洞溪谷)은 내설악의 백담계곡 상류인 백담산장 위쪽에서부터 구곡담계곡과 가야동계곡이 갈라지는 수렴동대피소까지의 약 6km구간의 계곡을 가리키는데 등산로가 완만하여 어려움은 없었다. 매점에서 산더덕 막걸리 한 병을 사서 점심으로 대신하고 백담사로 향했다.
유순한 계곡의 흐름을 따라 산더덕 막걸리 취기로 힘을 얻어 경보에 가까울 정도로 탄력을 붙이다 보니 수렴동계곡의 비경을 놓치고 말았다. 이따금씩 널따란 바위에 가을볕을 받으며 삼삼오오 둘러앉아 정담을 나누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아직 이 곳은 푸르름이 더하지만 며칠이 지나면 울긋불긋 타오르리라.
오후 3시에 백담사에 도착했다. 수렴동 대피소에서 1시 50분에 출발했으니 1시간 10분이 소요되었다. 만해 한용운의 "백담사 사적"에 의하면 신라 진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한계리에 처음 절을 지어 한계사라고 하였는데 이후 거듭된 화재로 소실되어 운흥사-심원사-선구사-영취사로 이어져 오다가 조선 세조(1456년)때 20리 상류 지점에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전한다.
설화에 의하면 어느 날 밤 주지 스님의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청봉(지금의 대청봉)에서부터 절까지 계곡에 있는 웅덩이(潭)의 수를 세어 보라"는 말을 듣고 다음날 아침 청봉에 올라 계곡을 내려오면서 웅덩이를 세어 봤더니 100개였다고 한다. 그 후 100개의 웅덩이(潭)가 있는 곳이라는 의미로 절 이름을 백담사(百潭寺)로 짓게 되었다고 한다.
이 곳 백담사도 등산객들로 붐볐고 차를 기다리느라 늘어선 행렬은 끝이 없다. 백담 계곡을 따라 셔틀버스 정류장까지 3km 구간을 걷기로 마음먹고 사찰을 들러보던 중 만해 한용운의 흉상을 발견했다. 옆에는 "나룻배와 行人" 시비가 세워져 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行人)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얕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만해 한용운은 동학혁명 등 근대사의 격랑 속에서 "인생이란 무엇인가? 명예인가 부귀인가? 생명이 가면 결국 모든 것이 공(空)이 되고, 무색(無色)하고 무형(無形)한 것이 되어 버리지 않는가? 모두가 덧없는 것이 아닌가?"라고 인생을 고뇌하며 설악산으로 들어와 27세 때인 1905년 이곳 백담사에서 출가를 하였다고 한다.
만해 흉상 옆 농암실의 열려진 문짝에 "산사의 찻간"이라는 묵 글씨에 이끌려 들어섰다. 모락모락 김이 솟는 항아리에서는 진한 차 향이 펴져 나고 곳곳엔 중광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 씁쓰레한 산약차 한잔에 잠깐이나마 여유를 갖고 여정을 되돌아보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가 기거를 전후하여 놓여졌다는 수심교(修心橋)를 건너니 무슨 소망이 그렇게 많은지? 넓은 계곡에 돌탑들이 빼곡하다.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40여분 걸어 셔틀버스 주차장에 도착했다. 여기도 버스를 기다리는 줄은 끝이 없다. 1시간 여 기다린 끝에 셔틀버스를 탈 수 있었다.
오색온천-대청봉(5.1Km)-소청봉-봉정암-구곡담계곡-수렴동대피소(5.9Km)-수렴동계곡-백담사(7Km)-백담계곡-용대리(7Km)간의 25㎞구간을 05:00에 출발하여 17:15에 도착했으니 12시간이 넘게 소요되었다.
덧붙이는 글 | 설악의 기암괴석은 변함이 없었으나 사람과 단풍이 설악을 뒤덮고 있었다. 만해 한용운이 "님의 침묵"을 탈고했다는 오세암과 만해 기념관을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덧붙여 단풍 절정기에는 새벽 시간대 오색온천-대청봉 코스를 가급적 피하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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