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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마트라 섬에서 가장 크고 인도네시아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인 메단에서 만난 한 인도네시아 사람은 아체 지역의 상황을 묻는 내게 반다아체는 가도 괜찮지만 룩스마웨는 가지 말라고 했다.

룩스마웨는 자유아체운동(GAM)의 활동이 활발한 지역이기 때문에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룩스마웨에 반드시 가야 했다. 왜냐하면 룩스마웨에는 아체인들이 인도네시아에 맞서 독립투쟁을 벌이는 주된 이유가 되고 있는 세계 최대의 액화천연가스(LNG) 회사인 '아룬'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 9월 9일 밤 룩스마웨에 도착해 만 하루 동안 '아룬'을 비롯해 룩스마웨 곳곳을 다니며 아체인들을 만났다. 이 곳에서 만난 아체인들을 통해 나는 평소 가지고 있던 궁금증 하나를 풀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궁금증은 아체인들은 과연 '아룬' 때문에 싸우는 것인가 였다. 다시 말하면 그들이 독립을 위해 싸우는 가장 주된 이유가 경제적 이해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인가가 궁금했던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이다. 내가 만나 본 아체인들 대부분이 왜 독립을 원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자연자원을 중앙정부가 독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한 아체인은 약 420만 명의 아체인 중에서 약 1백만 명 이상이 실업상태라고 말하면서 "이렇게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의 자원을 중앙정부가 약탈해 가고 있는데 안싸울 수 있느냐"라고 주장했다. 그는 독립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 병원 앞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무하마드 씨는 "독립이든 자치든 빨리 평화가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하면서도 "아룬에서 창출되는 부를 아체인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여러번 언급했지만 이 기사를 처음 읽는 독자들을 위해 밝히자면 '아룬'은 인도네시아 국가예산의 총 13%를 담당하고 있을 정도로 엄청난 경제적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아체인들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비율은 1%에서 5% 사이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많은 아체인들이 '우리 땅에서 나는 자원을 인도네시아 중앙정부가 약탈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반다아체에서 만난 한 아체인은 "우리 땅에서 나는 자원을 우리가 우리를 위해 사용할 수 있다면 우리도 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말은 그들의 심정을 잘 대변해주는 말이다. 많은 아체인들이 일본이나 한국처럼 잘 살고 싶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만약 그들이 독립해 빼앗긴 자원을 되찾는다면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체인들이 독립투쟁을 벌이는 이유를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만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것이 첫번째 이유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도네시아 정부가 아체인들에게 '아룬'에서 창출되는 이익을 지금보다 훨씬 많이 나눠주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나는 이런 질문을 지난 기사에서 소개했던 압둘 씨에게 했다가 어리석은 질문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압둘 씨가 "우리 것을 가지고 자바인들이 조금 더 주고 말고 할 것이 뭐가 있느냐? 당연히 우리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대답했기 때문이다. 듣고 보니 그의 말이 맞았다.

그런데 더 문제인 것은 인도네시아 정부가 그나마 분배구조를 조금 개선하는 일조차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아체에 대해 그런 정책을 폈다가는 다른 수많은 소수민족들이 같은 요구를 해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이같은 입장을 바꾸지 않는 한 아체에 평화가 깃들기는 매우 어려워 보인다.

나는 아체를 방문하기 전 '아룬'의 수십 층 빌딩 높이의 굴뚝에서는 하루 24시간 활활 불길이 솟는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지난 9월 9일 밤에 갔을 때 그리고 그 다음 날 낮에 다시 찾아갔을 때 보니까 정말 그랬다.

그 불길을 바라보고 서 있다가 만난 아체인 하산 씨의 도움으로 나는 '아룬' 직원들을 위해 조성된 대규모 주택단지를 둘러봤다. 나는 이 주택단지를 둘러보며 아체인들이 느끼고 있는 소외감에 공감할 수 있었다.

대규모 스타디움, 병원, 도서관, 골프장이 구비된 조용하고 깔끔한 주택단지의 모습은 대다수 아체인들의 삶과는 너무 거리가 멀어 보였다. 보통 아체인들은 좀처럼 누릴 수 없는 좋은 환경에서 '아룬' 직원들은 살고 있었다. 하산 씨는 '아룬'에 아체인이 취업하기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아체인들의 땅에 지어진 이 훌륭한 주택단지에 정착 아체인들은 살기 힘들다는 말이다. 하산 씨는 내게 한국에 가서 일할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아룬'에 대한 해법을 찾지 못한다면 아마도 아체 문제는 쉽사리 풀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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